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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묶인 시니어 자산 어떻게, 보험금으로 세금 내고 신탁으로 맞춤 승계까지
입력 : 2026.10.01 15: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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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거주하는 60대 A씨는 최근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 뒤 23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상속받았다. 적지 않은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내야 할 상속세가 1억8000만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물려받은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이어서 수개월 안에 억대 현금을 마련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A씨의 숨통을 틔워준 것은 배우자가 생전에 가입했던 종신보험이었다. 배우자를 피보험자로 두고 A씨가 계약자이자 수익자가 돼 자신의 자금으로 보험료를 납부해온 계약에서 사망보험금 2억원이 나왔다. A씨는 집을 급매하거나 새로 대출을 받는 대신 이 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었다.
부동산을 비롯해 자산은 적지 않지만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은 부족한 시니어가 늘면서 종신보험의 쓰임새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가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망보장’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상속세 납부 재원을 미리 마련하고, 자녀에게 재산을 넘기는 방식을 설계하고, 필요할 경우 사망보험금 일부를 생전에 노후 자금으로 활용하는 수단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시니어 머니 잡는 종신보험
65세 이상 가입 10년 새 4배종신보험 가입자의 세대 변화에서도이런 흐름이 드러난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65세 이상 종신보험 가입자는 2014년 45만2859명에서 2024년 184만7477명으로 10년 새 4.1배로 늘었다. 반면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주축인 15~39세 가입자는 같은 기간 359만9398명에서 290만4806명으로 약 20% 감소했다.
젊은 층이 종신보험에서 멀어지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1~2인 가구 비중이 높고 자산 형성 초기 단계인 이들에게 수십 년 뒤 사망 시 지급되는 보험금보다 당장의 저축과 투자가 우선순위다. 최근 국내 증시 투자 열풍에 따라 보험을 해지하고 주식 투자에 나서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종신보험은 매달 보험료를 장기간 부담해야 하고 중도 해지하면 시점에 따라 납입보험료보다 적은 해약환급금을 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시니어에게는 종신보험의 ‘사망하면 현금이 나온다’는 단순한 구조가 오히려 장점이 된다. 은퇴 이후 축적된 자산 상당 부분이 집이나 건물 등 부동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국내 가구의 평균 자산 5억6678만원 가운데 실물자산은 4억2988만원으로 75.8%를 차지했다. 금융자산 비중은 24.2%에 그쳤다.
사망보험금, 상속세 재원으로상속이 발생하면 이 같은 ‘부동산 부자, 현금 빈곤’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국세청에 따르면 상속세 신고 인원은 2022년 1만9506명에서 지난해 2만1741명으로 늘었고 결정세액도 8조원대에 달한다. 상속받은 집이 수십억원이라고 해도 세금을 집의 일부로 낼 수는 없다. 결국 보유 현금을 쓰거나 금융자산을 처분하고, 여의치 않으면 대출 또는 부동산 매각을 검토해야 한다.
종신보험이 주목받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이 ‘상속 유동성’ 문제를 보완할 수 있어서다. 사망 시점에 약정된 보험금이 현금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부동산이나 비상장주식처럼 매수자를 찾고 매각 가격을 협상할 필요가 없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때 자산을 서둘러 처분해야 하는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다만 종신보험에 가입했다고 사망보험금이 무조건 상속재산에서 빠지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은 피상속인이 보험계약자였거나, 명의상 계약자가 다른 사람이더라도 피상속인이 실제 보험료를 납부했다면 사망보험금을 간주상속재산으로 보고 과세한다. 반대로 A씨처럼 자녀나 배우자가 계약자와 수익자가 되고 실제 보험료도 부담한 경우, 피상속인 사망으로 받는 보험금은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아 온전히 사망보험금을 상속세 납부 재원으로 쓸 수 있다.
결국 계약자·피보험자·수익자의 명의뿐 아니라 누가 실제 보험료를 부담했느냐가 중요하다. 그 때문에 상속을 염두에 둔 고액 종신보험은 가입금액만 정해놓고 끝낼 일이 아니다. 보험료의 자금 출처와 계약 구조에 따라 상속세뿐 아니라 증여세 문제가 함께 발생할 수 있어 사전에 세무상 영향을 따져봐야 한다.
상속세 재원을 목적으로 한 고액 사망보장 수요도 커지고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사망보험금 5억원 이상 종신보험 가입자는 2014년 2만 3978명에서 2024년 3만5776명으로 10년 사이 1만 명 넘게 늘었다. 최근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망보험금이 증가하도록 설계한 ‘체증형 종신보험’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가입 후 수십 년 동안 물가와 부동산 가격 등이 올라 향후 필요한 상속 재원이 커질 가능성까지 고려한 상품이다.
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는 “은퇴한 시니어의 고민은 ‘재산이 얼마나 많느냐’에서 ‘상속 시점에 바로 쓸 현금이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며 “법인을 운영하는 고객들도 가업 승계 과정에서 비상장주식 등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급히 처분하지 않고 종신보험을 활용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고 말했다.
종신보험의 역할은 세금을 낼 현금을 만드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두 번째 활용법은 남은 보험금을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줄 것인지를 미리 정하는 것이다.
보험금신탁 맞춤형 승계
유동화해 노후 생활비까지2024년 11월 도입된 ‘보험금청구권신탁’이 대표적이다. 가입자가 생전에 사망보험금 청구권을 금융회사에 신탁하고 자신이 사망한 뒤 보험금을 받을 사람과 지급 시기·방식을 미리 설계하는 제도다. 보험금이 발생하면 유족에게 전액을 한꺼번에 지급하는 대신 가입자가 정해둔 계획에 따라 나눠 지급할 수 있다.
예컨대 고령인 배우자가 거액의 보험금을 한꺼번에 관리하기 부담스럽다면 매달 생활비처럼 일정액을 받도록 설계할 수 있다. 어린 자녀에게는 청소년기까지 교육비를 정기적으로 지급하고, 성인이 된 뒤에는 대학 등록금이나 결혼·독립자금 명목으로 나머지 보험금을 지급하는 식도 가능하다. 재혼가정이나 가족 구성원이 많은 경우에도 활용도가 높다. 단순히 “누구에게 얼마를 준다”를 넘어 돈이 필요한 시점에 맞춰 지급 방식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산관리 경험이 부족한 유족이 거액의 보험금을 한꺼번에 소진하거나 주변인이 이를 임의로 사용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모든 보험이 신탁 대상은 아니다. 현재는 3000만원 이상 일반사망 보장이 대상이고 재해·질병사망 등 특약 보험금은 제외된다.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 신탁 위탁자가 동일해야 하며 보험계약대출도 없어야 한다. 신탁 수익자는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으로 제한된다.
제도 시행 이후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 등 생명보험 3사의 보험금청구권신탁 누적 판매액은 2024년 1416억원에서 지난해 6014억원으로 늘었고 올해 6월에는 8500억원 까지 증가했다. 상속에서 중요한 것이 단순한 ‘금액’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물려주느냐’로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다. 상속을 위한 자산으로만 여겨졌던 종신보험은 이제 가입자 본인의 노후 현금흐름을 만드는 데도 쓰인다. 세 번째 활용법인 사망보험금 유동화다.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사망 후 유족이 받을 보험금의 일부를 줄이는 대신 그에 해당하는 계약상 가치를 가입자가 생전에 나눠 받는 제도다. 죽은 뒤 받을 돈의 일부를 살아 있을 때 생활비로 당겨 쓰는 개념이다. 금융당국은 국민연금 수령 전 은퇴자의 ‘소득 크레바스’를 보완할 수 있도록 유동화 가능 연령을 만 55세 이상으로 확대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사망보험금의 90%를 유동화하면 사망보험금 1억원 가운데 9000만원을 미리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입자는 사망보험금의 최대 90% 범위에서 유동화 비율을 정할 수 있지만 실제 생전에 받는 금액은 해당 계약의 해약환급금과 적용 이율, 가입 시점, 지급 기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유동화를 많이 할수록 사후 유족에게 돌아갈 보험금은 그만큼 줄어든다. 실제 60대 B씨는 1990년대 가입한 사망보험금 7000만원 규모 종신보험을 노후 생활비로 돌렸다. 총납입보험료가 2770만원인 계약의 유동화 비율을 90%, 지급기간을 7년으로 설정해 매달 약 41만원을 받고 있다. 보험료를 모두 낸 뒤 장롱 속에 묵혀뒀던 종신보험이 매달 들어오는 생활비로 바뀐 셈이다.
기존 종신보험의 연금전환 기능도 비슷한 노후자금 마련 수단이다. 다만 연금으로 전환할 경우 기존 사망 보장이 크게 줄거나 사라지는 상품도 있어 차이가 있다. 사망보험금 유동화는 필요한 만큼만 사망보장을 줄이고 나머지는 유족에게 남겨둘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결국 시니어 입장에서는 자신의 고민에 따라 종신보험의 쓰임을 달리할 수 있다. 재산 대부분이 집이나 건물에 묶여 있다면 사망 보험금을 ‘상속세용 현금’으로 준비할 수 있다. 자녀가 어리거나 배우자의 자산관리 능력이 걱정된다면 보험금청구권신탁을 통해 지급 시기와 방법까지 정할 수 있다. 반대로 자녀가 이미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본인의 생활비가 더 급하다면 기존 종신보험을 유동화해 노후 현금흐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그렇다고 상속이나 노후 준비를 위해 고령자가 무조건 새 종신보험부터 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같은 사망보험금을 확보하기 위한 보험료가 비싸지고 건강 상태에 따라 가입이 제한될 수 있다. 종신보험은 저축이나 투자상품과도 성격이 다르고 중도 해지 때 원금을 밑도는 환급금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이 시니어에게 먼저 권하는 것은 과거 가입해놓은 보험부터 꺼내보는 것이다. 1990년대나 2000년대 초 가입해 이미 보험료 납입을 끝낸 종신보험이 있다면 곧바로 해지하기보다 현재 사망보험금과 해약 환급금, 연금전환 가능 여부, 사망보험금 유동화 대상인지를 차례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새 보험을 활용해 상속을 준비한다면 순서도 중요하다. 먼저 예상 상속재산과 상속세를 계산하고 예금·현금 등 금융자산으로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을 따져본 뒤 부족한 ‘현금의 구멍’이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 부족분을 보험으로 보완해야 불필요하게 큰 보험에 가입해 장기간 고액 보험료를 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종신보험의 기본은 여전히 사망보장이다. 달라진 것은 고령화와 자산 축적이 그 사망보험금을 활용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집은 있지만 세금 낼 현금이 부족하면 상속재원이 되고, 유족에게 거액을 한꺼번에 남기는 것이 걱정된다면 신탁을 통해 ‘맞춤 승계’가 가능하다. 자신에게 노후 생활비가 더 필요하면 보험금의 일부를 생전에 활용할 수도 있다.
부동산에 묶여 있던 시니어의 자산을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으로 보완하고, 그 현금을 누구에게 언제 넘길지까지 설계하는 것. 종신보험이 단순한 ‘사후 보장’을 넘어 시니어 자산관리의 한 축으로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차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