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현덕의 한국기업 탈각의 순간들] 비츠로셀 | ④ 대우그룹이 헐값에 넘긴 회사

    입력 : 2026.09.09 14:45:31

  • 당진 스마트팩토리 비츠로셀 쇼룸 전경.
    당진 스마트팩토리 비츠로셀 쇼룸 전경.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기 5년 전쯤인 1994년. 주력 계열사인 대우전자의 베네룩스 판매법인 대표로 있던 장승국 씨는 유럽 및 중부 지역의 10개 판매법인과 6개 생산법인을 총괄하는 유럽사업단장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는다. 강제 사항은 아니었으니 지시라기보다는 권유였다. 런던에서 열리는 전자 부품 전시회에 테크라프가 참가하니 현장 분위기를 살펴보라는 것. 테크라프는 1987년 설립된 리튬전지 업체로, 1993년 대우전자가 지분 참여 방식으로 리튬전지 사업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대우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대우그룹 계열사로 분류돼 군용 리튬일차전지를 전담했다. 장승국 대표는 완제품 위주의 대우전자가 배터리라는 부품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해 런던으로 출장을 간다. 공문을 받은 16개 법인 대표 중 전시회가 열리는 런던에서 주재원 두 명이 참석했을 뿐 법인 대표로는 장 대표가 유일했다. 당시 대우그룹은 해외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한국 경제도 호황 국면에 있었으며 국내 재계 서열 3위인 대우가 좌초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때였다. 대부분 법인장이 이 전시회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다른 해외 비즈니스가 숱하게 널려 있어 군수용 배터리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장 대표와 비츠로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비츠로셀의 전신이 바로 테크라프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테크라프의 사업 아이템이 비전은 있어 보였으나 당시 대우전자가 전략적으로 이곳에 자원을 투입할 계획은 없었다”라면서 “개인적으로 이 기업과 엮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라고 말한다. 장 대표가 대우전자에 입사한 건 1987년. 테크라프가 설립된 해와 일치한다. 이 회사는 모 그룹인 대우의 몰락과 함께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된다.

    장 대표도 떠돌이 신세였다. 대우가 망하자 그는 한단 브로드컴이란 셋톱박스를 만드는 기업에 몸을 담는다. 대우에서 나온 직원들 몇몇이 이 기업에 들어갔다.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고 이레전자로 옮긴다. 그는 이레전자서 부사장을 맡으면서 매출액 200억원 미만 모니터 제조기업을 2년 만에 1000억원 이상 PDP LCD TV기업으로 키웠다. 그러나 성장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TV 시장 가격은 하락 추세에 접어들었고 국내와 대만의 대기업에서 구매했던 패널 가격은 급상승하는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발생했다. 결국 이레전자 에서도 오래 있을 운명은 못 됐나 보다.

    그때 그에게 다시 손길을 내민 기업이 바로 비츠로셀이다. 비츠로그룹은 2002년 29억원을 투자해 테크라프 지분 50.11%를 인수하고, 계열사로 편입했다. 이 때 회사명이 비츠로셀로 바뀐다. ‘빛으로’를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비츠로, 그 뒤에 배터리의 셀(cell)을 붙여 작명했다. 비츠로그룹은 사실 꽤나 오래된 역사를 지닌 기업이다. 이 회사를 소개하는 설명자료를 보면 첫 장에 비츠로그룹이라고 한가운데 크게 쓰고 그 밑에 ‘Since 1955’라고 적었다. 1955년부터 시작한 기업이라는 얘기인데 모체는 고(故) 장순명 회장이 세운 광명 전기제작소다. 1989년 광명기전, 2000년 비츠로테크로 사명을 바꿨다. 이 사이 장순명 회장의 동생인 장순상 회장이 회사에 합류해 1986년 대표이사에 올랐다. 장승국 대표가 오너인 장순상 회장을 처음 만난 건 2002년 12월이었다. 한단브로드컴을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장순상 회장은 비츠로셀을 맡길 경영자를 찾고 있었다. 당시 대표는 대우전자에 근무했던 김동연 씨였다. 장 대표가 유럽 판매법인 대표로 있을 때 본사 오디오 사업본부장으로 서로 업무 협력을 한 인연이 있는 인물이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에서 전무이사까지 한 엔지니어였다. 비츠로 셀에서 공장과 연구소 부문의 대표를 맡고 있었던 그는 책임지고 회사를 이끌 만한 인재를 구하던 중 장승국씨를 찾게 된다. 그렇게 세 사람이 첫 만남을 갖게 된 것이다.

    장 씨는 나름 이 회사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면담은 큰 실망으로 끝났다.

    장 씨의 회고.

    “면담 전 회사 상황을 살펴보니 많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즈니스 아이템은 괜찮았고 경영을 잘만하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인재를 영입하겠다는 의지를 읽지 못했습니다. 비츠로셀 경영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이 대우그룹이 망한 얘기만 하는 거였습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지요.”

    그가 베네룩스 현지법인 대표로 있었던 시절 처음 접했던 기업(당시 테크라프)과의 인연은 그렇게 영원히 물건너간 것 같았다.

    비츠로셀과의 다섯 번의 면담

    그는 이레전자에서 새로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2003년 1월이었다. 이레전자에서 3년간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하면서 심신이 지쳐가던 중 비츠로셀 김동연 사장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장승국 대표는 “김동연 대표로부터는 첫 면담 이후 몇 차례 더 연락이 왔었다”라면서 “제 기억으로는 다섯 번째 오퍼였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

    당시 비츠로셀 역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LG화학에 회사를 넘기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마지막 카드로 새로운 경영자를 영입하려고 한 게 ‘또 다시 장승국’이었다. 그러나 2002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쉬운 쪽은 비츠로셀이었다.

    2005년 11월 세 사람이 다시 만났다. 그러나 장순상 회장 대신 창업자 장순명 회장의 아들인 장태수 부회장이 나왔다. 아무래도 3년 전 조우가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사실 장 대표와 인터뷰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그가 오너 장순상 회장에 대해서 말할 때였다.

    “장순상 회장은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나온 엔지니어로서 공부도 많이 하고 세상 돌아가는 데 대한 이해도 높습니다. 창업자 형님이 계실 때는 기업 내부 살림을 맡아 하면서 악역도 마다하지 않았던 경영자입니다. 그러나 저와는 소위 궁합이 잘 맞는 건 아닙니다. 저는 회사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스타일이거든요. 제가 대우에 있을 때 별명이 독일병정(German Soldier)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다면 밀어 붙입니다. 오너로서는 꽤 불편함을 느꼈을 겁니다. 그래도 2006년 전무로 들어와 2년 후 대표가 되고 그 후 18년이나 경영을 맡기는 걸 보면 저에 대한 믿음은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회사를 위해서는 제가 필요하다는 걸 아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20년 넘게 오너와 CEO가 불편한 동거 생활을 해왔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했다. “40년 가까이 경제기자 생활을 하면서 처음 보는 케이스”라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하자 이렇게 설명한다.

    “대표란 자리는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직원에게 책임을 지고 사회에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물론 주주에게도 책임을 지지요. 대주주가 저를 믿고 대표직을 준건데 어떻게 하면 대주주 개인적으로도 잘될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기본은 이익을 많이 내는 것입니다. 돈을 벌어 임직원들에게 월급 많이 주고, 주주들에게 배당 많이 하고…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간혹 충돌이 나는 부분은 이런 겁니다. 여러 계열사가 있는데 돈을 버는 곳은 비츠로셀입니다. 다른 계열사와 달라야 합니다. 우수한 직원들을 지켜야 하고 필요하면 인재 영입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다른 계열사와 동일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대주주와 논쟁을 벌였고 결국 제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지요. 어떤 건 5년 걸려, 또 어떤 건 10년 걸려 대주주를 설득했고 그렇게 20년이 지나 번듯한 기업으로 자리 잡은 겁니다.”

    이에 대해 오너인 장순상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CEO 역할을 잘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능력이 출중하고 현장을 잘 압니다. 중요한 투자 정도만 보고받고 나머지는 모두 맡깁니다. 오너와 CEO 간 충돌은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도 건강 잘 지키고 경영을 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장 회장에게는 아들 둘이 있다. 후계 구도에 대해 물어봤다.

    “그건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들은 다른 기업을 맡고 있습니다. 장 대표가 내년이면 만 65세인데 5~6년은 더 회사를 잘 이끌 것 같고요. 다만 CEO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후계자를 키우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다음 사장감을 잘 기르라는 말은 했습니다.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이유이기도 합니다.”

    화재가 발생하기 1년 전인 2016년 비츠로그룹이 비츠로셀을 중심에 두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한 건 이런 맥락에서다. 그전까지는 비츠로일렉트릭, 비츠로넥스텍, 비츠로테크가 한 묶음으로 비츠로셀을 지배하는 구조였다. 장 대표는 비츠로일렉트릭과 비츠로넥스텍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어 비츠로셀의 안정적 경영을 위협한다고 봤다. 그런 판단하에 비츠로테크와 나머지 2개 회사를 물적분할해 비츠로테크를 클린 컴퍼니로 만들어 비츠로셀을 지배하는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했다. 비츠로일렉트릭과 비츠로넥스텍은 비츠로셀과 같은 선상에 병렬로 위치한 계열사가 된 것.

    장 대표는 “이 과정에서 오너와의 마찰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장 회장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라고 말한다.

    오너와 CEO의 관계는 묘했다. 오너가 CEO를 좋아해서 믿은 것도, CEO가 오너에게 충성하기 위해 일한 것도 아니었다. 서로가 회사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각자의 역할을 해내면서 그 믿음을 20년간 이어왔다. 마치 비츠로셀에 대한 고객의 신뢰가 오랜 거래와 약속의 이행이 쌓이고 쌓여 화재라는 위기의 순간 그 실체가 드러났듯이 오너와 CEO도 회사의 이익이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서는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로 발전해 왔다. 어쩌면 신뢰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상대가 결정적인 순간 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인지도 모른다. 비츠로셀을 20년간 끌고 온 묘하게 불편한 동거도 그런 신뢰 위에 서 있었다.

    [손현덕 주필]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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