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화 약세 속 수십조 장착 외국계 사모펀드 … 국내 M&A 시장 독식에 토종 펀드 위축

    입력 : 2026.09.02 17: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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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대규모 인수·합병(M&A) 거래를 외국계 자본이 싹쓸이하고 있다. 달러 대비 원화 약세 흐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해외 운용사들이 거대 자본력을 앞세워 굵직한 매물을 속속 사들이고 있다.

    반면 국내 토종 PEF는 기관투자자(LP)들의 출자 한파와 회수 지연에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고강도 규제 움직임까지 겹치며 위축된 모습이다.

    자본의 체급 차이와 거시경제적 호재가 맞물리면서 국내 대형 M&A 시장이 외국계 자본의 독무대로 변모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 단위 대기업 카브아웃 딜부터
    알짜 중견기업까지 외국계 품에

    올해 들어 KKR, 칼라일, 블랙스톤을 비롯해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세계적인 운용사들이 대기업 카브아웃(사업부·자회사 분할) 매물부터 알짜 중견기업 경영권까지 차례로 쓸어 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곳은 KKR이다. KKR은 삼성SDS가 발행한 1조22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사들이며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의 전략적 파트너로 전면에 등장했다.

    삼성그룹은 자체 현금 창출력이 뛰어난 데다 지배구조 이슈 등으로 인해 외부 재무적투자자(FI) 유치에 그간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KKR 역시 주가 하락에 따른 리픽싱 조건과 풋옵션을 포기하는 대신 주가 상승 이익을 공유하는 구조를 설계해 삼성과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뒤이어 KKR은 SK그룹과 신재생에너지 통합법인을 출범시킨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통합법인엔 SK이노베이션·SK에코플랜트·SK디스커버리가 보유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한데 모을 예정이다.

    KKR이 해당 법인 지분 51%를, SK㈜가 49%를 갖는다. 사실상 SK그룹 신재생에너지 사업 절반을 KKR에 매각한다는 의미다. 다만 SK 측은 향후 협상으로 경영권을 한디확보할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입장이다.

    그 외 대기업 사업 재편 거래도 줄줄이 외국계 사모펀드(PEF)가 장악하는 모양새다. 밀크티 프랜차이즈 ‘공차’ 대주주인 미국계 TA어소시에이츠는 최근 대웅그룹 시지 바이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글로벌 사모펀드(PEF)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이 국내 렌터카 1위 기업인 롯데렌탈을 인수한다.
    글로벌 사모펀드(PEF)인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이 국내 렌터카 1위 기업인 롯데렌탈을 인수한다.

    미국계 텍사스퍼시픽그룹(TPG)는 최근 롯데렌탈 지분 61.18%를 인수하기 위한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거래 대금은 약 1조3000억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TPG는 경영권 인수 대금 전액을 대출 없이 자체 펀드로 조달하며 거래 종결에 사활을 걸었다. 업계에서는 잔여 유통주식에 대한 공개매수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렌탈은 렌터카 업계 1위이자 연간 3000억원대 영업이익을 따박따박 내는 롯데그룹 내 알짜 자회사로 꼽혔다. 이에 한국앤컴퍼니도 뒤늦게 인수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TPG가 연초부터 일찌감치 공을 들인 끝에 인수전 승기를 거머쥐는 데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블랙스톤이 국내 차량용 액추에이터 기업 퓨트로닉을 인수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PEF) 블랙스톤이 국내 차량용 액추에이터 기업 퓨트로닉을 인수했다.

    세계 최대 대체투자사 블랙스톤의 한국 내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블랙스톤은 최근 부산 기반 중견 자동차 전장부품 기업 퓨트로닉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퓨트로닉은 기업가치 약 1조원 수준을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1993년 설립된 퓨트로닉은 차량 구동력을 제어하는 자동차 전장·구동계 핵심 부품을 유수 자동차 OEM에 납품해왔다.

    기술 장벽을 바탕으로 20%대 높은 영업이익률을 보여왔다. 이번 지분 매각으로 퓨트로닉은 기존 창업주와 계속 협력하며 해외 로보틱스 시장 진출을 꾀한다는 방침이다. 블랙스톤은 앞서 헤어숍 프랜차이즈 준오헤어(8000억원)와 산업용 절삭공구 업체 제이제이툴스(3000억원대 후반)를 잇달아 인수하기도 했다.

    중견기업 매물이 외국계 PEF 운용사에 넘어간 건 이번 사례만이 아니다. 최근 청호나이스도 약 1조184억원에 칼라일 품에 안겼다.

    청호나이스는 2023년 창업주 고(故) 정휘동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유족의 수천억원대 상속세 부담 탓에 꾸준히 매물로 거론돼왔다.

    국내외 PEF 운용사가 인수를 검토해온 가운데 칼라일이 정 회장 전처 소생 아들 지분까지 여타 유족과 동일한 프리미엄으로 ‘통 큰’ 인수를 결정하면서 거래를 종결짓는 데 성공했다.

    토종 PEF는 펀드 결성 쩔쩔

    최근 국내 대체투자 업계 ‘젖줄’ 역할을 해오던 주요 기관 투자자(LP)는 신규 출자에 보수적인 기조를 보이고 있다. 최근 증시 급등에 따라 주요 공제회 회원들이 저축 성격의 공제회 급여를 해약하고 직접 주식투자로 갈아타려는 움직임이 늘면서다.

    회원들에게 돌려줘야 할 유동성을 마련하다 보니 공제회 입장에선 당장 신규 대체투자에 자금을 투입할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국내 자본시장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마저 홈플러스 회생 사태 이후 PEF 정기 출자 사업을 사실상 일시 중단한 상태다.

    실제로 최근 신생 국내 운용사들이 과감한 베팅으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서 최종 거래가 무산되는 사례가 이어졌다.

    한 국내 PEF 대표는 “현재 M&A 시장은 대형 블라인드 펀드(투자처가 정해지지 않은 펀드)를 보유해 추가 펀딩이 필요 없는 운용사만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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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외국계 PEF는 실탄이 넘쳐나고 있다. 수년간 조성한 역대급 아시아 전용 펀드 덕에 드라이파우더(미집행 자금) 소진 필요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스웨덴 발렌베리 계열 EQT파트너스는 지난 4월 아시아태평양 전용 사모펀드인 ‘BPEA 9호 펀드’를 156억 달러(약 23조원) 규모로 최종 결성했다. 이는 아태 지역 PEF 가운데 역대 가장 큰 규모다.

    블랙스톤 역시 지난 6월 131억달러(약 19조원) 규모 ‘블랙스톤 캐피탈 파트너스 아시아 3호 펀드’를 결성했다.

    이는 블랙스톤이 아시아에서 조성한 펀드 가운데 최대 규모다. 당초 목표였던 100억 달러를 넘겼을 뿐 아니라 이전 펀드 대비 2배 이상 커진 수준이다.

    베인캐피탈도 지난 5월 총 105억 달러(약 15조원) 규모 ‘베인캐피탈 아시아 6호 펀드’ 결성을 마무리지었다. 당초 목표액이 70억 달러였으나 실제 결성 규모는 이를 50% 웃돌았다.

    KKR은 올해 초 ‘아시아 크레딧 펀드 2호’(18억 달러)를 포함해 아태 지역 우량 크레딧 투자에 집중하는 25억 달러(약 4조원) 규모 펀드 조성을 마쳤다.

    운용사는 약정 기간 내 일정 금액을 집행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부과 받게 된다. 돈을 놀리는 만큼 기회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운용사 입장에선 자금 소진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탄은 풍족한데 아시아 투자 환경은 급변했다. 과거 아시아 드라이파우더 상당 부분을 흡수하던 중국 시장이 지정학적 불확실성으로 사실상 투자가 막히면서다.

    대안으로 꼽히던 일본 시장 역시 전 세계에서 자금이 밀려들며 기업 밸류에이션이 치솟았다. 이런 가운데 첨단 기술 생태계를 갖춘 한국은 대규모 자금을 안전하게 소진할 아시아 거점으로 부상했다.

    특히 원화 약세도 외국계에 유리하다는 관측이다.

    달러화를 기본으로 운용하는 해외 PEF 입장에서 한국 자산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국민성장펀드 마중물 기대 나오지만 한계도 여전

    벼랑 끝에 선 국내 PEF 업계가 반전을 기대할 부분은 국민성장펀드다. 국민성장펀드는 첨단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 주도로 5년 간 200조원 규모로 조성하는 정책 펀드다.

    연간 운용 목표만 40조원으로, 정부 정책자금과 민간자금을 결합해 첨단 투자하는 구조다. 간접투자의 경우 현재까지 2차 GP 선정까지 마친 상태다.

    1차 GP 대형 리그(5000억원)에선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이름을 올렸다. M&A 리그(3000억원)에는 웰투시인베스트먼트가 뽑혔다.

    2차 GP 스케일업 리그(5000억원)에는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중형 리그(2000억~4000억원)에선 도미누스에쿼티파트너스·우리벤처파트너스·한국투자파트너스가 선정됐다. 이때 국민성장펀드 출자분에 한해 금융당국이 위험가중자산(RWA) 산정 시 적용되는 위험가중치를 기존 400%에서 100%로 낮추고, 면책특례까지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GP로 선정된 운용사들에는 이례적으로 자금을 매칭 출자하려는 금융권 LP 러브콜이 쏟아지며 순식간에 하드캡(펀드 결성 총액 한도)를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체급 격차는 여전하다는 관측이다. 국민성장펀드에서 PEF 관련 GP당 펀드 결성 목표액이 3000억~5000억원 안팎으로, 이 정도 금액으론 메가 딜 참여에 여전히 한계가 있다.

    또한 국민성장펀드는 AI, 반도체, 바이오, 우주항공, 신재생을 비롯한 국가 10대 첨단전략산업과 소부장 생태계 육성에 우선 투자하도록 목적이 정해져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현금 창출형 기업이나 단순 소비재·서비스업 바이아웃 매물에 자금을 집행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있다.

    [우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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