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맞벌이 가구 증가에 생활폐기물 수거 서비스 인기 “버리는 것도 구독하세요!”

    입력 : 2025.09.17 14: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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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선민(31) 씨는 요즘 가장 고민했던 집안일에서 해방됐다. 밤늦게 퇴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그의 고충 중 하나는 배출하는 날이 정해져 있는 쓰레기 분리수거. 특히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부분의 생활용품을 구입하는 그에게 택배 박스나 스티로폼 등의 부산물은 2~3일만 지나도 원룸 공간 한쪽을 차지하며 쌓이기 일쑤였다. 그는 “쓰레기는 바로 처리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일상에 집중하다 보면 늘 뒷전일 때가 많았다”며 “대행 서비스를 구독하고선 이런 고민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두어 달 전부터 매달 3만원 남짓의 구독료를 내고 쓰레기 수거 대행 서비스를 이용한다. 업체가 제공한 전용 봉투에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구분 없이 담아 문 앞에 두면, 정해진 요일에 방문한 수거 매니저가 처리해 주는 방식이다. 김 씨는 “쓰레기 때문에 고민이라면 고려해 볼만하다”며 “한 끼 식대와 비교하면 아깝지 않은 금액”이라고 전했다.
    1년 전 구도심의 오래된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한 윤선옥(43) 씨는 당시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 가슴이 철렁했다. “인부들이 내부의 자재들을 다 부수고 들어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양의 폐기물이 발생했다”며 “이전 분들이 쓰던 장롱까지 더해지면서 집 앞에 세워둘 수밖에 없었는데, 이틀 여를 뒀더니 민원이 발생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마음이 급했던 그에게 지인이 소개해 준 건 휴대폰 앱 하나. 폐기물 신고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는 이후 몇 번의 손가락 터치로 집 앞 도로의 폐기물을 해결했다.

    쓰레기를 대신 버려드립니다!

    ‘쓰레기를 대신 버려준다?’ 말만으로도 신박한 이 서비스, 실제 어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시행 중인 ‘쓰레기 수거 대행 서비스’다. OTT, 가전제품, 자동차, 김치, AI의 공통점이라는 ‘구독경제’의 편리함이 쓰레기 분리수거로 영역을 넓힌 셈이다. 물론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이러한 유료 서비스의 등장에는 몇 가지 사회적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첫째,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의 폭발적인 증가세가 한 몫 단단히 했다. 특히 수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한 1인 가구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800만 명을 돌파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 스타트업 마케팅 담당자는 “일상이 바쁜 1인 가구 MZ세대에게 집안일은 또 하나의 번거로운 업무나 다름없다”며 “투자할 시간과 여유가 부족해 분리수거나 특히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전했다. 둘째, 팬데믹의 영향이다. 2019년 처음 발생한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이 제한되며 비대면 활동이 늘었고, 자연스레 배달 서비스가 확산됐다.

    배달앱 서비스가 성장하며 함께 증가한 게 바로 음식을 담은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배달 용기다. 환경부 자료를 살펴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일일 폐플라스틱 발생량이 38%나 늘었다. 2021년 하루 폐기물량은 54만 781t, 그 중 생활폐기물이 6만 2178t으로 집계됐다. 분리수거에 대한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된 순간이다. 셋째는 소비트렌드의 변화다. 이른바 ‘편리미엄(편리함+프리미엄)’을 추구하는 성향이 시간은 아끼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꺼이 지갑을 열게 했다. 쉽게 말해 쓰레기 처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남는 시간은 여가나 자기 계발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이다. 업계 관계자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에서 나에게 시간과 돈을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쓰레기 수거 대행 서비스 성장에 핵심 동력”이라며 “해외에선 이미 활발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미국은 대부분 각 주마다 재활용과 쓰레기 수거 서비스를 민간 폐기물 관리 업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OTT처럼 구독료로 월정액을 내면 해당 업체가 문 앞까지 찾아와 재활용품을 수거해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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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과 기업 내 쓰레기 수거, 번거로움 제로

    분리수거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스타트업들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웨이스트(Waste) 테크’라 불리는 폐기물 처리 기업이다. 국내 폐기물 처리 시장의 규모는 2023년 말 기준 약 24조원. 이거대한 시장에 뛰어든 스타트업 중 눈에 띄는 서비스는 ‘오늘수거’ ‘커버링’ ‘빼기’ 등이다.

    ‘오늘수거’
    ‘오늘수거’

    우선 오늘수거는 2021년 8월에 설립된 ‘어글리랩’이 운영하는 구독 서비스다. 카투사 출신인 서호성 대표가 군복무 당시 미군들이 쓰레기를 버릴 때 봉투에 넣어 트럭에 싣고나면 누군가 와서 처리해 주는 걸 목격하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폐기물 처리의 효율성과 중요성을 실감했다는 어글리랩의 창업 스토리 중 한 토막이다. 오늘수거 서비스는 종량제 방식이다. 쓰레기와 음식물 폐기물, 재활용할 수 있는 폐지와 폐유리병 등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전용 비닐에 담아 문 앞에 두면, 수거해 분류하고 세척해 처리업체로 보낸다. 앱을 통해 당일 밤 10시 이전에 신청하면 당일 수거(오후 10시~오전 6시)가 가능하다. 수거가 완료되면 문앞에 새로운 수거 비닐과 함께 완료 사진도 전송한다. 선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수도권 최대 규모의 재활용업체와 수집 운반, 폐기물 처리 제휴도 맺었다. 가정과 사무실, 건물 등에서 이용할 수 있는 오늘수거는 정기구독과 1회 요금제 등으로 나눠서 사용할 수 있다. 1회 이용 비용은 수거비용(2500원)과 무게비용(100g 당 140원)을 합쳐 청구된다. 현재 서울과 경기도, 인천 등 수도권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7일간 무료 체험을 제공하는데 체험 후 유료 전환율은 95%, 재구독률은 98%나 된다.

    커버링
    커버링

    ‘쓰레기를 빼다. 시간을 더하다’란 슬로건을 내세운 커버링은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를 필요할 때마다 분리수거하는 ‘커버링 홈’, 단체 도시락 수거부터 처리까지 한 번에 해결 할 수 있는 ‘커버링 런치’, 사무실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정기적으로 수거하는 ‘커버링 오피스’, 건물에서 배출하는 쓰레기와 분리수거장 관리까지 진행하는 ‘커버링 빌딩’ 등 4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커버링 홈은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 재활용 구분할 것 없이 커버링 봉투에 담아 문 앞에 두고 앱을 통해 언제든 수거신청을 할 수 있다. 회사나 학원에서 주로 이용하는 커버링 런치는 도시락을 주문·배달하는 경우나 대규모 행사의 케이터링 이후 발생한 쓰레기를 깔끔하게 처리해준다. 식사 후 도시락과 잔반을 커버링 봉투에 담아 내놓으면 담당자가 방문해 수거하고 인증 사진을 전송한다. 기본 비용은 서울 2만 7000원, 그 외 지역 3만 1000원으로 처리한 도시락 개수당 500원씩 추가된다. 2022년 창업한 커버링은 현재 유료 서비스 이용자가 3000세대를 넘어섰다. 최근엔 SK텔레콤과 함께 비전 AI 기술을 활용해 폐기물 수거 및 재활용성을 향상시키는 서비스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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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기’는 ㈜같다가 운영하는 폐기물 처리 서비스다. 서울과 수도권, 전국 주요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대형폐기물 처리에 특화됐다. 주요 서비스는 집에서 1분 만에 대형폐기물을 배출 신고하는 ‘직접버림’과 무거운 대형폐기물(10개 이상)을 검증된 빼기 파트너가 대신 처리하는 ‘내려드림’, 버리기 아까운 대형 폐기물을 빼기 파트너에게 판매하는 ‘중고매입’ 등이다. 대형폐기물을 버릴 땐 온라인으로 스티커(필증)를 직접 프린트하거나 거주 중인 지역의 주민센터에 방문해 스티커를 발부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빼기는 이러한 불편함을 앱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빼기 앱을 설치하고 회원으로 가입한 후 처리할 폐기물 품목을 선택해 스티커 가격을 결제하면 마무리된다. 직접버림 서비스는 별도의 수수료 없이 거주하는 지자체의 대형 폐기물 배출신고 가격과 동일하게 이용할 수 있고, 내려드림 서비스를 신청하면 3가지 검증 시스템(PASS, eKYC, 성범죄 이력조회) 통과한 빼기 파트너가 직접 방문한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쓰레기 수거 구독 서비스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IoT(사물인터넷) 기술과 결합해 진화할 것”이라며 “쓰레기 배출량을 실시간 측정해 요금을 부과하거나, 쓰레기통이 가득 차면 자동으로 수거 요청을 보내는 스마트 쓰레기통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AI를 활용한 쓰레기 수거 서비스를 전망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0호 (2025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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