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현덕의 한국기업 탈각의 순간들] 코스맥스 | ① 판교 R&I 센터에 새긴 코스맥스 DNA

    입력 : 2025.03.27 17:23:21

  • ▶ 손현덕의 <한국기업 탈각(脫殼)의 순간들>
    성공한 기업들은 보면 결코 우연이란 건 없습니다. 운이 따랐다 한들 그 운을 기회로 만든 결정적 순간이 있습니다. 마치 뱀이나 매미가 껍질을 벗듯, 탈각(脫殼) 이전의 기업과 이후의 기업은 전혀 다릅니다. 담대한 변신으로 위대한 성공을 이끈 기업가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사진 류준희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한여름 무더위를 내몰 듯 내리던 장맛비는 밤새 잦아들더니 아침엔 뽀얀 운무로 가득했다.

    “드디어 남방한계선까지 진출했나?”

    이경수 코스맥스 대표는 이날 아침 검은색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집을 나섰다. 회사를 향하는 승용차는 조심스럽게 도로를 미끄러졌다. 이날따라 기사가 차를 천천히 운전했다. 그는 승용차 안에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그려봤다. 오전 11시 새로운 사옥을 마련하고 여기에 회사의 모든 연구 역량을 집어넣는 R&I(Research & Innovation) 센터를 오픈하는 날이다. 기념사진도 찍고 주요 내빈들과 테이프커팅도 해야 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메시지 전달, 인사말이었다. 잠을 좀 설쳐서인지 평소와는 달리 얼굴이 좀 거칠게 느껴졌다.

    “화장품 회사 오너는 피부가 좋아야 하는데…”

    판교는 남방한계선
    사진설명

    그는 2011년 6월 30일 이전의 코스맥스와 2011년 6월 30일 이후의 코스맥스는 완전히 다른 회사가 돼야 한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전직원들의 가슴 한복판에 코스맥스의 DNA를 확실히 새겨야만 했다. 잠을 설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왜 우리가 경기도 남쪽 화성에서 판교로 올라왔는지”, “연구와 혁신이 왜 중요한지”, “여기서 어떤 연구와 혁신을 할 것인지” 등등. 그 의미를 전직원이 공유해야지만 코스맥스의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고 생각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인지라 남 앞에 나서길 주저하는 그였다. 폼 잡고 연설하는 건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이날 행사에도 외부 손님 초청을 최소화했다. 아닌 게 아니라 코스맥스 외부에서 보기엔 별 게 아닐 수도 있다. 화성 본사에 있던 스킨케어 및 메이크업 연구소, 그리고 기반기술연구소 일부를 판교 이노밸리 사옥으로 옮기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여길 법도 했다. 그냥 물리적 변환인데. 내부에서도 그렇게 보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경수 회장에겐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적어도 판교에는 와야 우수한 연구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기술은 사람에서 나온다는 걸 뼈저리게 아는 그였다. 17년 전의 일이다. 2008년 중국 상하이에 있는 로레알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연구소 이름이 ‘R&I 센터’였다. 로레알에게 물어봤다. 왜 R&D가 아니라 R&I이냐고. 로레알은 혁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그 때 그는 우리도 번듯한 연구소를 만들면 이름을 R&I라고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화성에서는 ‘중앙연구소’라는 간판을 달았다. 이제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질 때가 된 것이다. 연구소는 인재가 없으면 무용지물. 그에게 판교는 남방한계선이었다. 다른 하나는 연구소 옆에 마케팅본부를 같이 두게 된 것. 연구와 영업이 한 몸이 돼야 그가 강조하는 경영의 핵심인 ‘유연성’과 ‘스피드’가 생긴다는 것.

    “화장품 산업에 있어 기술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기술 잡으려고 연구와 혁신을 회사의 중심으로 끌어왔는데 일반 상식으로는 오히려 트렌드, 디자인 등을 중시할 것 같아서였다.

    그의 답변은 명쾌하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새로운 카테고리가 트렌드를 주도합니다. 지금은 K뷰티의 대명사가 된 쿠션 파운데이션이나 립 틴트와 같은 제품들은 모두 전에 없던 새로운 연구와 기술력이 탄생시킨 카테고리입니다 .”

    첫 질문부터 전문용어를 사용해 당황해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좀 더 쉬운 표현으로 바꾼다.

    “그렇죠. 흔히 트렌드를 읽고 마케팅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패키지 디자인 바꾸고 눈에 띄는 광고 만들고 가격정책 잘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화장품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사용감’입니다. 소비자들은 화장품을 쓰면서 그 사용감의 미묘한 차이와 기능을 체감합니다. 그건 아무리 뭐라 해도 기술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기술과 감각.

    그는 화장품 제조를 그림 그리는 화가에 비유한다.

    “화가가 쓰는 물감에 무슨 특별한 차이가 있나요. 그 화가가 그리는 기술에 그의 영혼이 더해지면 그 실력에 따라 그림값이 차이 나는 것 아닌가요.”

    일반인들은 모르나 업계 사람들은 모두 안다. 화장품은 기술의 집합체이다. 무수한 기술이 적용된다. 흔히들 기능성 화장품이란 말을 한다. 주름 개선, 미백 효과, 자외선 차단 등. 그러나 화장품의 흡수성을 결정하는 것, 내용물의 변질 없이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것, 색조 화장품이 좀 더 미세하게 발리고 오래 지속되도록 하는 것. 그런 것들은 기술이고 화장품 제조사의 영혼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회사를 방문했을 때 1층 로비에 커다랗게 쓴 슬로건이 기억났다.

    “The science of beauty(아름다움의 과학)” 원래 슬로건에는 Korean이 들어갔다. 창립 25주년을 맞은 지난 2017년.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 붐이 일던 시기였다. 이 회장은 첨단과학을 화장품에 연결시켜 코스맥스가 중심 역할을 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그리고 작년 Korean을 뗐다. 한국을 넘어 전세계 뷰티 시장에서 중심 역할의 하자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그는 직원들로부터 “세계를 품 안에 넘버원 코스맥스”라고 쓰여진 글 밑에 회사의 상징인 빨간 사과 3개가 그려진 액자를 선물 받고 포디움으로 나갔다.

    따로 원고를 준비하지는 않았다.

    “우리 회사의 두 개의 핵심 경쟁력은 스피드와 유연성입니다. 스피드가 경쟁력이고, 유연성이 경쟁력이 된 지금과 같은 치열한 상황에서 5개의 연구소를 이곳 판교에 뒀습니다. 두뇌로 치자면 연구와 혁신은 뉴런이고, 마케팅은 시냅스입니다. 이를 연결해 세계 최고 수준의 화장품 브랜드 개발을 위한 역사를 이곳에서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 코스맥스는 물론 고객사에게도 커다란 경쟁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연구와 마케팅 그리고 개발이 서로 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글로벌 기업화를 추진하는데 판교 사옥은 그 중심이 될 것입니다.”

    화장품산업의 근본은 기술
    사무공간과 연구공간이 함께 배치된 코스맥스 판교 R&I 센터 전경
    사무공간과 연구공간이 함께 배치된 코스맥스 판교 R&I 센터 전경

    사실 이경수 회장은 말보다 행동이 먼저고, 벙벙한 개념보다는 디테일에 강점을 지닌 경영자다.

    연구소 투어를 하다 보면 일반인들은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 그건 사무실의 레이아웃이다. 4개의 책상을 정사각형 형태로 붙이고 그 옆에 실험장비를 뒀다. 사무공간 옆에 연구설비를 배치한 것이다.

    이경수 회장은 연구소 설계 작업 때부터 고민을 했다며 이렇게 설명한다.

    “보통 연구소들은 연구실과 사무용 책상을 떨어뜨려 별도의 공간에 배치하지만, 우리는 실험대와 사무용 책상을 같이 둬 아이디어가 나오면 바로 실험대에 가서 실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스피드인거죠. 구글의 CEO였던 래리 페이지가 그런 말을 했죠. ‘느리면서 좋은 의사결정은 없습니다. 빠르면서 좋은 의사결정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사무용 책상을 같이 마주 보며 붙여놓고 팀장, 랩장(상위직급)이 같이 근무함으로써 신입사원이 쉽게 물어보고 배울 수 있고 연구원끼리 수시로 의논하도록 하였습니다. 시너지를 극대화하자는 거죠.”

    입사 8년차인 LM(Lip & Mascara; 립앤마스카라)1팀의 장미정 책임은 이렇게 말한다.

    “코스맥스 연구소는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다른 화장품 기업 연구소는 연구공간과 사무공간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대죠. 이유가 있습니다. 물리적 거리의 단축은 연구원들의 아이디어를 즉각적으로 현실로 옮기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4명의 팀원이 따로 또 같이 사무공간에서 의논을 하다 바로 연구공간에서 이를 샘플화해보고 이에 대한 과정과 결과 보완점들을 즉각적으로 검토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물리적 거리를 허문 공간 속에서 멀티 립앤치크와 같은 혁신 제품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 그게 스피드고 유연성이었다. 그리고 4명의 연구원들은 등차수열 식으로 연차의 차이를 둬 자연스럽게 선배가 후배에게 경험을 전수하고 후배는 선배에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토스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이경수 회장은 내가 투어 과정에서 놓쳤을 것 같은 한 가지 사실을 더 귀뜸해준다. “연구소에서 서로 기능이 다른 파트를 하나로 합친 것 봤느냐”며 “CF랩이 뭔지 아느냐”고 묻는다.

    물론 알고 있었다. C는 쿠션, F는 파운데이션. 그런데 이걸 하나로 합쳐 하이브리드로 만든 게 한국화장품, K뷰티였다. 새로운 카테고리의 탄생. 전세계 누적 판매량 약 8억개. 이런 신제품의 탄생은 연구인력의 융합에서 나온다.

    CF랩장을 맡고 있는 이화영 상무는 “코스맥스가 전세계 1위 쿠션 명가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연구조직이 필요에 따라 서로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다양한 창의력을 서로 나눌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쿠션 파운데이션은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이지만, 자외선 차단, 보습 등의 효능을 추가하여 이제 전세계 여성들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색소 사용량에 따라 파운데이션의 분산력, 커버력 등이 천차만별이어서 다양한 사용감의 쿠션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런데 기초 화장품 연구원들과 함께 협업하게 되니 보습, 미백, 주름개선, 자외선 차단 등 기본적인 기능성은 물론 그 기능성을 전달하는 피부 전달체 분야에 있어서도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융합하는데 매우 유리한 연구 환경이 됐습니다.”

    입사 12년차인 박소현 LM1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스킨·로션, 립스틱 등 기초 화장품과 색조 화장품 등 서로 다른 영역을 수시로 넘나드는 융합형 연구가 진행됩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재료가 비슷하거나 상호 관계가 있는 화장품을 함께 연구해 시너지를 내는 일입니다.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색조 제품의 발색과 스킨케어 제품의 효능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그런 소비자들의 감각에 대응해야 합니다.” 이 회장에게 어떤 성과가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5가지의 하이브리드 제품을 예시한다.

    사진설명

    첫째, 쿠션파운데이션. 휴대가 간편하고 사용에 편리한 팩트(가루로 된 파우더를 압축시킨 제품)에 리퀴드 파운데이션을 결합했다.

    둘째, 젤 아이라이너. 젤 크림형태로 담긴 아이라이너를 브러시로 바르는 제품.

    셋째, 선 스프레이. 스프레이 타입의 자외선 차단제.

    넷째, 멀티밤. 스틱형태로 만든 다양한 기능의 화장품.

    다섯째, 멀티 립앤치크. 말 그대로 입술과 뺨에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제품.

    (다음 회차에서 이어집니다.)

    [손현덕 대표]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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