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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트럼프가 돌아왔다”
입력 : 2025.01.24 16: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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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확장주의’ 국제질서 변화 예고
기후협약 탈퇴하고 관세부과 시동도널드 트럼프가 1월 20일(현지시간)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2020년 대선 패배 부정과 2021년 1·6 의사당 폭동 사태 등에 따른 초대형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4년 만에 역사적인 ‘징검다리’ 재집권에 성공, 트럼프 2.0 시대의 문을 연 것이다. 동맹국을 포함해 사실상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미국 이익 중심의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한반도를 비롯한 글로벌 안보와 국제 무역 질서가 다시 한번 대변혁의 시기를 맞게 됐다.
특히 ‘돈로(Donro·트럼프의 도널드와 몬로 전 대통령의 합성어) 독트린’ 등으로까지 불리는 취임 전 영토 확장 공세에서 보듯이 미국 유권자의 재신임을 받은 트럼프 2기 정부는 단순히 1기의 연장이 아니라 더 독해진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트럼프의 선거 구호) 정부’를 예고하면서 전 세계를 긴장 상태로 몰아넣을 공산이 크다.
나아가 미국과 전략 경쟁을 벌이는 중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롯해 북한, 이란 등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도전하면서 밀착 행보를 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자유 무역을 두 축으로 구축된 전후 국제 질서의 변화도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미국의 황금시대는 이제 시작된다”고 선언한 뒤 “나는 트럼프 행정부 임기 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우 단순히, 미국을 최우선시할 것”이라며 집권 1기 취임사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국정의 모토로 내세웠다.
데이원 행정명령 살펴보니트럼프 대통령은 제일 먼저 행정 명령을 비롯해 바이든 정부 때의 조치 78개를 철회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어 트럼프 2기 정부가 행정부를 완전히 통제할 때까지 추가 규제나 인력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부 규제 및 고용 동결에 대한 행정명령에 사인했다.
또한 정부 기관의 물가 총력 대응 지시,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및 유엔(UN)에 보낼 탈퇴 서한, 정부 검열 금지 및 언론의 자유 복구, 정적에 대한 정부의 무기화 종료 등에도 서명했다.
통상 및 국내 정책 면에서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대거 뒤집었다. 무역 시스템 재점검 및 외국에 대한 관세부과(확대) 방침을 밝히고, 전기차 우대정책을 포함한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산업정책인 ‘그린 뉴딜’의 종료를 선언했다.
다만 지난해 11월 대선 후 ‘취임 첫날’에 하겠다고 예고한 관세 부과도 시동을 걸었지만, 보편관세에 대해서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초 트럼프는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 및 캐나다에는 25%를, 전세계 모든 수입 품목에 10~20%의 보편관세 부과를 선언한 바 있다. 트럼프는 이 중 캐나다, 멕시코에 2월 1일부터 25%의 관세를 부과할 뜻을 내비쳤다.
남부 국경에 대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남부 국경에 군대를 배치하는 한편, 서류 없이 입국한 사람들의 심사 대기기간 중 미국 내 체류를 불허하기로 하는 등 강경한 불법 이민자 차단책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추방 정책이 시행될 것을 예고했다.
또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석유 등에 대한 시추를 확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우리는 물가를 내리고, 전략비축유를 채우고, 미국 에너지를 세계에 수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지난 임기에 이어 두번째 탈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재임 때도 협약에서 탈퇴한 바 있다. 2019년 11월 UN에 협약 탈퇴를 통보했고 이듬해 공식적으로 탈퇴 처리가 완료됐다.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후 지난 2021년 1월 협약에 재가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 정부의 공식 정책은 남녀 2개의 성별만 있게 될 것”이라며 과거 민주당 정부 때 강화된 성소수자 권익 증진 정책을 대대적으로 폐기할 것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 같은 정책 기조를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순차 서명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는 “이제 그는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보유세력)다. 우리는 잘 지냈다. 그가 내가 돌아온 것을 반기리라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을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 대신 핵 동결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을 전망이다.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2017년 백악관을 떠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당시 첫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요 안보 위협으로 북한을 지목한 것처럼 이 날 퇴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어떤 위협을 지목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을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 대신 핵 동결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을 전망이다.
“에너지 강조 한국엔 기회요인”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기 취임사보다 미국의 희망 비전을 제시하는 데 주력한 것 같다. 번영, 평화, 자유 등 긍정적인 용어도 많이 등장했다. 트럼프 2기 정책 방향성을 미국 우선주의 강화, 힘의 외교 실현, 미국 제조업 기반 활성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한국 압박을 시사하는 구체적 언급은 없었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향후 실제 행정명령이 하나씩 나올 것이다. IRA나 반도체과학법으로 대표되는 해외기업 유치 보조금 지급 수정은 불가피하지 않을까 한다“고 우려했다. 허 교수는 ”미국은 경제통상을 안보화하려는 경향을 보이니 우리도 미국 공급 제품이 미국의 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미국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취임식에서 즉각적인 관세 조치는 발표되지 않았다. 확실히 트럼프 2기 정부는 1기 때와는 달리 준비되지 않은 행동·조치에 나서기보다는 정제되고 준비된 정책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임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에 대해서도 트럼프 2기는 확실히 축소 내지는 폐지로 정책 방향을 잡은 것 같다”면서 “취임식에서 석유·가스 시추 등 화석연료 패권을 강조한 것은 한국에는 기회요인이기도 하다. 미국의 천연가스와 원유 수출이 많이 늘어나면 초대형 원유운반선이나 액화천연가스(LNG)선에 강점이 있는 한국에 확실히 기회가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취임사로 본 아메리카 퍼스트 2.0최다 사용 단어는 ‘국가’
제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 로툰다(중앙 원형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약 30분 동안 취임사를 발표했다. 취임사에 사용된 단어는 총 2879단어로, 1457단어로 구성된 1기 취임사보다 더 많은 표현이 사용됐다.
취임사에 사용된 최다 단어는 ‘국가’였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취임사에 국가를 뜻하는 ‘Nation’이 20번, ‘Country’가 17번, 총 37번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내내 국가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위대한 국가” “우리나라(미국)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야심찬 나라” “우리나라와 같은 나라는 없다” “미국이 다시 안전한 국가가 될 것” 등 비슷한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다음으로 가장 많았던 단어는 21번 등장한 ‘미국인(American)’이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인들에게 다시 희망을, 번영을, 평화를” “2025년 1월 20일이야말로 미국인들에게 해방의 날”이라며 자신과 미국인을 엮은 문장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1기 연설 때도 미국인이 16번, 국가는 23번 등장했지만 2기 때 더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임 대통령의 취임사와도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국가를 14번 언급하긴 했으나, 민주주의가 11번, 통합이 11번으로 다른 단어와 비슷하게 사용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국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People)’을 사용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취임사보다 더 분명하게 자신의 정책을 드러냈다. 1기 취임사에는 ‘이민’ ‘관세’와 같은 정책과 관련된 단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국경을 되찾을 것이다” “미국이 먼저다”라는 선언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1기 취임사 표현이 그대로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 우선주의나 미국사회를 구원할 사람이 자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표현이 상당히 유사했다. 1기 취임사 초반에 등장한 “오늘부터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될 것”이라는 표현은 “매우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 우선주의를 하겠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연설 초반에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 의지를 밝히는 취임사 전개 방식도 유사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3호 (2024년 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