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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1막1장] 오페라 <카르멘> 치명적 그녀는 요부인가, 자유를 갈망한 여인인가
입력 : 2019.09.04 10: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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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애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로 손꼽히는 <카르멘>의 대중성은 예술성만큼 폭발적이다. 오페라 <카르멘>은 작곡가 조르주 비제(1838~1875)에게 돈방석을 안겨주었을 것 같지만 비제는 사상 최악의 혹평으로 실의에 빠져 초연 3개월 후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그가 일생의 역작으로 몰두했던 <카르멘>은 행운의 여신이 아니라 불행의 씨앗이 된 셈이다. 역사는 반전을 거듭하는 법. <카르멘> 덕분에 역사는 비제를 불세출의 거장으로 기억한다. ▶고고학자인 원작 작가의 풍부한 이국적 색채
19세기 프랑스 정치는 피로 얼룩진 혁명과 정권교체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극심한 불안과 혼돈 속에서 프랑스는 이성적 질서와 절제보다 감정적 선동과 자극이 익숙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거울로 비추듯 프랑스 예술계는 열정과 감성을 중시하는 낭만주의가 꽃피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귀족들의 전유물이자 반혁명세력으로 간주되던 프랑스 궁중예술은 왕궁을 넘어 파리 시내에서 융성해졌다. 프랑스 부르주아들이 유럽예술을 선도하며 그들의 입맛에 따라 전 유럽으로 퍼지는 예술조류가 결정되었다.
<카르멘>의 원작자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1803~1870)도 대표적인 관료형 부르주아였다. 그는 고고학자이자 문화재감독관으로 유럽 방방곡곡을 누비며 답사했다.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까지 능통했던 그는 언어처럼 다른 각 지방의 색다른 정서와 초자연적인 문화의 신선함에 푹 빠졌으며 이를 환상소설로 승화시켰다. 그의 소설은 박진감 넘치고 빠르게 전개되지만 고고학자다운 치밀하고 견고한 기-승-전-결 구성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반면 간결하고 냉정한 문체를 사용해 그는 사실주의 작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는 근엄하고 회의적인 학자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연인의 남편에게 결투요청을 받을 정도로 수많은 로맨스를 뿌리고 다녔다. 사회적 지위 때문에 대놓고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의 들끓는 격렬한 열정과 타오르는 야성이 고스란히 그의 소설에는 담겨있다. 소설 <카르멘>의 아우라는 작곡가 비제에게 전해져 단순하지만 고혹적인 선율을 강렬하게 선사한다.
성악가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를 둔 조르주 비제는 일찍이 음악적 재능을 보여 파리음악원에서도 남다른 두각을 보였다. 이어 로마대상에 입상하여 3년간의 로마 유학생활을 하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이를 통해 비제는 작곡가로서의 탄탄대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베를리오즈, 구노, 마스네, 드뷔시 등이 모두 로마대상 출신일 정도로 로마대상은 프랑스 오페라작곡계의 등용문이었다. 그의 귀국 데뷔작 <진주조개잡이>가 평단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 파리 코미크 극장에서는 그에게 신작을 의뢰한다. 고무된 비제는 소재를 찾다가 작가 메르메의 다른 작품 <카르멘>을 기억해 낸다. 그는 파리 센강가의 자택에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프랑스 국민 오페라를 확립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칭송을 받는 <카르멘>을 완성하였다. ‘하바네라’, ‘세귀딜리아’, ‘카드의 아리아’ 등의 카르멘이 부르는 아리아와 돈 호세가 사랑을 고백하는 ‘꽃의 노래’, 3막에서 위험한 산속까지 약혼자를 찾아간 연약하지만 강인한 여인 미카엘라가 부르는 아리아, 투우사 에스카밀로의 흥겨우면서도 위엄 있는 ‘투우사의 노래’등 주옥같은 아리아의 선율은 효과적으로 적절하게 텍스트와 함께 잘 융합되어져 있다.
프랑스 국경과 인접한 스페인 나바라지방 태생의 순진한 청년 돈 호세 하사는 스페인의 남쪽 세비야지방으로 전출되어 담배공장 위병소에서 보초를 선다. 담배공장 여공인 집시 카르멘의 치명적 마력에 빠진 돈 호세는 그녀로 인해 부대를 이탈하고 살인까지 저질러 도망자 신세가 된다. 나락으로 떨어져 모든 것을 잃은 돈 호세에게 카르멘마저 등을 돌려 투우사 에스카밀로에게 호감을 표한다. 분노로 절망한 돈 호세는 비극적 결단을 내린다.
첫 막이 오른 코미크 극장은 당시 모든 오페라극장들이 그러듯, 단순한 공연장이 아닌 상류층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부유층의 비즈니스 미팅과 사교장의 역할이던 오페라극장에서 관객은 우아하고 고상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이 관례였다. 사회에서 멸시받는 인물이던 집시, 밀수업자, 공장직공들이 배신, 밀수, 살인하는 사건구조에 여흥을 즐기려던 관객들은 경악해 야유를 퍼부었다. 혹자는 주인공 카르멘이 품어내는 야성, 변덕, 관능, 생명경시 때문에 정념(情念)만을 앞세운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작곡자 비제는 그녀를 천박하고 개념 없는 여인이 아닌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으로 환생시킨다. 수려하고 찬연한 멜로디는 그녀를 요부로 한정시키지 않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서 떠나는 자아로 펼쳐놓는다. 또한 그윽하고 오묘한 화음은 자유 이면의 덧없는 무상과 깊은 절망을 다룬다.
얼마 전 타계한 영화감독 겸 오페라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가 카르멘 그 자체라고 극찬한 메조소프라노 나디아 크라스테바를 비롯한 세계정상급의 연주자가 총출동하는 오페라 <카르멘> 갈라가 공연된다. 주요장면만 공연하는 갈라 공연이지만 조명, 의상, 동선은 그대로 연출되어 실제 오페라를 방불케 한다. 웅장한 합창단과 화려하고 과감한 플라멩코 무용단이 스페인의 정열과 낭만을 가을밤에 만끽하게 해준다. 수지오페라단 2019 오페라 <카르멘> 갈라 120분(인터미션 20분 포함)
·공연일시 : 2019년 9월 24일(화) 오후 8시
·공연장소 : 롯데콘서트홀
·출연 : 마크 깁슨(지휘), 나디아 크라스테바(카르멘),
빅토르 안티 펜코(돈 호세) 등
[황승경 국제오페라단장 사진제공 수지오페라단]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8호 (2019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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