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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인문학산책 ⑧ 월터 리프먼이 SNS시대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입력 : 2019.09.03 11: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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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 1889~1974) 생각이 많이 난다.
여론에 관한 한 그 만한 탁견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그가 거의 100년 전에 쓴 책 <여론(Public Opinion)>(1922)은 지금 그대로 가지고 와서 현실에 대입해도 충분한 명저다. 월터 리프먼은 여론을 사회심리학적 현상으로 보고 그 비합리성을 탐구해 대중 사회이론의 초석을 닦은 선구자다. SNS(Social Networking Service)가 가장 영향력 있는 여론 플랫폼으로 등극한 지금 우리는 월터 리프먼의 이론을 다시 꺼내 볼 필요가 있다. 그의 책 <여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무엇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먼저 내린 다음에 읽는다.”
무시무시한 말이다. 순간 섬뜩해진다.
사실 SNS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확증편향에 의한 사실 왜곡이다. 확증편향이 무엇인가. 객관적 사실과 관계없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아닌가.
SNS는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아 주거나,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기보다는 대중들이 이미 내린 판결을 강화시켜 주는 데 더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그 판결이 옳은지 그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SNS는 대중들이 믿고 싶은 걸 강화시켜주고, 대중들이 믿고 싶지 않은 건 도태시키는 기능을 한다.
월터 리프먼
“이 음악의 실제 연주시간을 맞춰 보세요.”
질문에 답변을 하는 방법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한 그룹은 서면으로 답변을 하게 하고, 한 그룹은 차례대로 일어나서 구두로 답변을 하게 한다.
두 그룹의 답변은 충격적일 정도로 다르다.
우선 서면으로 답변을 한 쪽의 시간은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 만약 실제 연주시간이 3분이었다면 답변은 30초부터 5분 정도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온다.
하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 구두답변을 하게 한 그룹의 답은 특정 시간에 집중되어 나타났다. 사람들의 답변은 맨 처음 사람이 말한 답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그 시간이 틀린 답이든 아니든 중요치 않았다.
맨 처음 누군가가 ‘1분 30초’라고 답변을 했다면 그 이후 모든 답변은 ‘1분 30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심리실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뭘까. 인간의 부정확한 시간측정 능력? 아니다.
이 실험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인간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외로운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현대인들은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남들에게 비치는 나’를 더 중시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기도 하고 남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기준이 바뀌는 나약함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월터 리프먼이 ‘스테레오타입(stereo type)’이라는 말의 발명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리프먼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가장 큰 폐해를 설명하기 위해 ‘스테레오타입’이라는 말을 발명했다.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만든 단순한 이미지를 전체인 것처럼 일반화시킨 것이 바로 ‘스테레오타입’이다. 사람들은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는 걸 힘들어한다.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른바 ‘정보 왜곡’은 이런 대중들의 심리적 허점 때문에 생겨난다. SNS는 왜곡된 정보들을 모아 여론으로 만들어내는 나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쉽게 악마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엄청난 속도의 확산성과 검색기능은 SNS를 천하무적의 악마로 만든다.
월터 리프먼은 여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여론이 건전해지기 위해서는 그것(여론)이 미디어를 위해서 조성돼야지, 미디어에 의해서 여론이 조성돼서는 안 된다.”
데이비드 리스먼
시카고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던 데이비드 리스먼은 ‘타인지향형’ 사회를 가장 먼저 예측한 학자다.
그는 매스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의 ‘타인지향’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역시 SNS시대를 예견한 듯하다. 그는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에서 이렇게 말했다. “타인지향형 사회에서 인간은 일정한 가치관을 갖지 않고 타인이나 세상의 흐름에 자기를 맞춰서 살아간다. 타인지향형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의 생각이다. 그 타인이란 자기가 아는 사람일 수도 있고, 매스미디어를 매개로 하여 간접적으로 접하게 된 사람일 수도 있다.”
타인지향형 사회 형성은 미디어가 발달하는 것과 때를 같이한다. 자기가 속한 사회 전체의 흐름을 시시각각으로 관찰하게 되고, 자신의 모습이 노출되면서 커다란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 구조 안에서 안정을 찾고자 한다.
게다가 미디어 도구가 많아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완충지대까지 점점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타인에 의해 구속되고 상처받을 확률은 점점 더 높아진다. 데이비드 리스먼의 눈으로 본다면 SNS시대가 바로 타인지향 사회다.
이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고독이다. 자기 내부에서 행복을 찾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인간은 늘 불안하고 고독하다. 타인들의 의견에 기대면서 자아는 점점 사라져간다.
SNS가 만들어내는 여론은 막강하다. 일부대중들이 SNS상에서 만들어낸 집단적 의견이 전체 사회 정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결국에는 정책까지 바꾼다. 이 혁명적 미디어는 상상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면서 공동의제를 만들고 여론을 탄생시킨다.
SNS에서는 신중하고 균형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 무시되기 쉽다. 해당 이슈의 전문가들조차 힘을 쓰지 못한다. 이들의 의견은 자극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설령 올린다 하더라도 확산속도는 더디다.
이런 이유 때문에 SNS상의 여론을 실제 여론과 동일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팩트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물론 SNS는 국가나 집단이 하지 못한 민주적 발언대 역할을 한다.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고,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놀라운 민주적 평등성 이면에는 의외의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요즈음 한국사회를 보면 그 어두운 면이 분석되어야 할 듯싶다. SNS가 가진 양면성을 인식하고 분석하는 일은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시대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의 하나다.
SNS는 우리에게 많은 걸 가져다 줬다. 낮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렸고, 부당함을 폭로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SNS가 가진 부작용을 분석하는 작업이 있어야 SNS의 순기능도 빛을 낼 수 있다.
SNS는 이 시대 지식인들로 하여금 여론의 본질에 대해, 여론과 미디어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월터 리프먼이나 데이비드 리스먼이 SNS시대를 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다.
[허연 매일경제 문화전문기자·시인 ]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8호 (2019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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