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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명화극장] 영화 `킬링 디어` 한 순간에 깨지기 쉬운 중산층의 삶, 당신은?
입력 : 2018.07.31 16: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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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디어'는 '더 랍스터'란 영화로 2015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2017년에 만든 작품이다. 우리에게는 (상업성이 없다, 혹은 어렵다는 이유로) 고민 끝에 1년 만에 개봉된 것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별종의 감독이고 ‘요령부득의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스 출신인데 요즘 그의 영화를 두고 그리스 뉴웨이브를 대표한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이름을 얻었다. 요르고스의 영화는 상업적이고 매끄러운 척, 그리고 남들이 다 아는 얘기를 하는 척, 사실은 그 안에 매우 심오하면서도 철학적인 사유를 담아내는 데 주력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작인 <더 랍스터>는 45일이라는 정해진 시간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돼야 하는데, 그렇게 될 경우 어떤 동물이 될 건지도 미리 정해야 한다는 식의, 웃어야 하는 건지 울어야 하는 건지, 이게 진짜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게 만드는 내용이다. 주인공 역의 콜린 파렐은 생물학적으로 섹스를 할 상대, 사랑할 대상을 찾지 못해 랍스터가 될 운명에 처해진다. 그리고 그는 탈출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이한 것은 랍스터라는 오브제(Object)에 대한 상상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왜 하필 많고 많은 생물 중에 갑각류를 선택했을까.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하려고 하는 얘기는 무엇이었을까. (새우의 딱딱한 껍질처럼) 욕망조차 통제된 사회에 대한 우화(偶話)를 그리려 했던 것일까.
아가멤논은 트로이 정벌을 나가던 중 전쟁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죽인 탓에 저주에 걸린 것을 알게 된다. 순풍을 얻지 못한 그의 전함들은 한 발짝도 꼼짝 못하는 신세로 항구에 발이 묶인다. 전쟁은 코앞이고 저주는 풀 길이 없는데 예언자 칼가스는 아가멤논에게 딸인 에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라고 한다. 아가멤논은 주저 없이 딸을 죽인다. 아내이자 에피게니아의 엄마는 그런 남편에게 앙심을 품고 트로이 정벌에서 돌아온 그를 정부(情夫)와 짜고 살해한다. 그 과정에서 어린 아들 오레스테스는 간신히 타우리스로 몸을 피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죽은 줄 알았던 에피게니아가 사제로 살아가고 있다. 오레스테스는 또 다시 이방인으로 몰려 제물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되고 그 의식을 에피게니아가 진행을 하게 된다. 에피게니아는 오레스테스가 자신의 동생인 줄 모르고 그를 죽일 위기에 처하게 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왜 이런 얘기를 현대화한 것일까. 인간은 죄를 짓기 마련이고 그렇다면 결국 참회하고 용서를 구함으로써 구원받아야 하는데 그러기까지는 누군가가 대속(代贖)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런 이야기의 정점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의 원리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내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는 그래서, 매우 신화적이고 기독교적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모든 것에 회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영화는 무엇보다 우리가 얼마나 한순간에 깨지기 쉬운 ‘중산층의 안전망’ 속에서 허덕이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우리가 지키려는 것, 곧 가정의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금의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얇은 유리창 같은 허상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영화는 그래서 관념적으로 파괴적이고 매우 위험하지만 역설적으로 보수적인 경계, 곧 자신의 울타리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강화시킨다. 영화의 주인공 스티븐처럼 한 치의 일탈을 허용하면 어떻게 되는가를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양가적(兩價的)이고, 중의적으로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어쨌든 인생을 고찰한다는 것은 오묘한 일이다. 그런 삶의 단면을 담아내려는 영화 역시 늘 기묘하고 난해하기 마련이다. '킬링 디어'가 그렇다. 세상의 삶은 종종 직시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해법 없이 방황하게 된다. '킬링 디어'는 그렇게, 직시(直視)하게 하는 영화다. 비록 어렵다 한들 이 영화를 피해 가지 말라고 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5호 (2018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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