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 걷기 프로젝트] 수풀 우거진 길 따라 흠뻑 취한 여름 정취…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 살래길

    입력 : 2015.08.07 14: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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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 중 두 번째 계절… 6월부터 8월… 절기로는 입하부터 입추까지…. 사전 상에는 고작 서너 달 남짓이지만 여름은 오직 견뎌내야 하는 계절이다. 고온다습한 기류 따라 후텁지근한 기운이 밀려오면 턱 막히는 들숨과 날숨엔 특유의 땀내가 올라온다. 게다가 여름이 부려놓은 퀴퀴하고 끈적한 그물에 걸려들면 여간해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러니 어쩌겠나.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견딜 수밖에. 그런데… 그 여름을 한 꺼풀 벗겨 속내를 들여다보면 보고 느껴지는 모든 게 달라진다. 우선 축제 중의 축제는 여름축제요, 휴가 중의 휴가는 여름휴가다. 힘들게 견디다 한바탕 쏟아내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웬만해선 거부할 수 없는 즐거움이자 추억이다.

    시선을 돌려 밥벌이 터전으로 나서면 여름은 현실이자 가까운 미래가 된다.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던 조상님 말씀, 괜한 잔소리라기엔 너무도 명확한 진실이다. 그러니 그저 견뎌만 내기엔 뭔가 허전하다.

    “지금 대학생들하고 국토순례 중인데, 아스팔트에 있다가 나무가 많은 곳에 가면 분위기가 달라져요. 나무그늘이 얼마나 시원한지 숨소리가 달라진다니까. 땀 뻘뻘 흘리면서 힘들게 걷던 애들이 그럽디다. 이래서 여름에 걷는 게 최고라고. 그런데 걔들, 10분 전엔 더 이상 못가겠다고 죽을상이었거든.(웃음) … 1년 내내 즐거우면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그게 어디 쉬워야 말이지. 여름은 고비가 있어서 버틸 힘이 생기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이렇게 한여름이면 걷습니다.”

    히말라야에서 소식이 끊기기 전, 지방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산악인 박영석이 툭 내뱉은 여름 뙤약볕에 걷는 이유다. 버텨내기 위해 걷는다던 그는 매년 여름이면 대학생들과 500㎞를 걸었다. 함께 걷던 이들은 과연 어떤 힘이 생겼을까….

    경기도 파주로 차를 몰았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트레이닝 센터인 파주NFC 인근 ‘통일동산 살래길’이 목적지다. 늦은 오후의 볕은 뜨거웠다. 길 초입의 가파른 언덕을 넘어서니 새파란 기운 그득한 숲이 오솔길 하나를 품고 있었다.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려역사박물관 언덕에 핀 들꽃
    고려역사박물관 언덕에 핀 들꽃
    엉덩이가 살래살래, 아기자기한 길 엉덩이를 살래살래 흔들며 걷을 수 있어서 ‘살래길’이라니, 뭔가 그럴듯한 의미를 기대했다가 한방 먹었다. 길을 오르며 ‘살래살래’ 되뇌다보니 그것 참, 입에 착 붙어서 좀처럼 떠나질 않는다. 오를 때도 ‘살래’, 내릴 때도 ‘살래’, 가만히 서서 풍경에 취할 때도 입은 ‘살래살래’를 반복하고 섰다. 통일동산중앙공원의 능선을 따라 4.2㎞ 거리를 산책하듯 거닐 수 있는 이 길은 빠르면 1시간 반, 쉬엄쉬엄 나서면 2시간 반이 걸리는 순환형 코스다. 한 바퀴 돌아 다시 원점이니 걷기 시작한 곳이 곧 출발점이다.

    검단사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 옆으로 난 살래길 계단으로 올라섰다. 자유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사실 수도권에서 일몰, 일출 감상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검단사에서 조망할 수 있는 일출은 북한산 뒤에서 올라오는 해가 또렷하고, 통일전망대가 있는 오두산 너머 먼 산 뒤로 사그라드는 일몰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어우러진 경치가 일품이다.

    길을 오르다 탁 트인 공간에 서니 자유로 철책선 너머 한강 하구의 습지가 바다를 닮았다. 도로를 따라 스치듯 지난 탓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볼 수 없던 풍경이다. 이곳은 멸종 위기종과 보호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국내 최대의 하구습지다. 역사적인 이유로 원시 자연 생태가 유지된 덕에 장항습지, 산남습지, 시암리습지 등을 중심으로 야생의 생태계가 꽃을 피웠다. 여의도 면적의 약 20배에 달한다는데,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보호받아 마땅한 지역이다.

    오르고 내리는 아기자기한 길은 어느 곳은 구불하고 어느 곳은 반듯하다. 능선을 타고 오르다보면 멀지 않은 곳에 북한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곳곳에 땅을 파고 구축한 참호와 진지는 이곳에선 TV쇼가 아니라 현실이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이 보이면 아파트 단지가 훤한데, 인도를 따라 걷다보면 살래길 현판이 소박한 아치형 입구가 걷는 이들을 맞는다. 통일동산중앙공원 방향으로 오르는 길인데, 다시 숲으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검단산의 숲은 나무가 많고 색이 짙다. 서어나무, 소나무, 굴참나무가 무리를 이루고 섰는데, 그 사이로 제법 큰 산토끼가 뛰어다닌다. 집토끼처럼 포동포동 살찐 산토끼를 따라 시선을 옮기고 있자니 수풀을 헤치고 날아오르는 꿩 한 마리가 요란했다. 파주시에서 설치한 알림판을 보니 청딱따구리와 청설모, 고라니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단다. 무엇보다 자주 출몰한 건 역시… 모기떼. 여름 모기, 게다가 산 모기가 질기다더니 발걸음 옮기기 무섭게 따라붙는 품이 잡아놓은 먹이 옆에 웅크리듯 선 사자다. 고로 여름 산행의 필수품 중 하나는 모기 쫓는 패치나 스프레이다.

    파주NFC, 숲속을 누비는 산토끼
    파주NFC, 숲속을 누비는 산토끼
    날 맑을 땐 서해까지 조망 통일동산중앙공원에서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말이 전망대지 평평한 공간에 벤치 하나 놓인 게 전부인데, 이곳에 서면 파주의 관광명소인 헤이리 예술마을과 영어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근에 경기도 음식문화 특화거리로 지정된 파주맛고을도 있어 산행 후 이름난 맛집 중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이름 모를 풀꽃들이 널린 양지바른 언덕이 나오는데, 이 길 좌측은 고려역사박물관이요, 오른쪽은 한국 축구의 자랑이라는 트레이닝센터 파주NFC다. 지은 지 오래인 고려역사박물관은 거대하고 웅장한 규모에 비해 휘둘러 처진 철책이 폐쇄적이다.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그 앞에 서서 파주시청에 문의하니 “확실히 모르겠으나 비용이 만만치 않아 아직 공사 중”이란 답이 돌아왔다. 파주시청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의문점이 같은 한 시민의 질문에 파주시에서 아래와 같은 답변을 달았다.

    ‘귀하께서 관심을 가져주신 건축의 정식명칭은 <고려통일대전>으로, 고려역사선양회에서 고려 34대 왕위와 충, 공신 유현 357위를 모시고 문중의 의례를 지내기 위해 건립한 문중 재각입니다.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고 문중의 제례행사를 지내고 있으며, 매년 10월 첫째 주 토요일 ‘고려통일대전 대제’ 행사 시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습니다.’ 파주NFC의 축구경기장을 바라보다 시선을 멀리 두면 북한이요 서해다. 날이 맑을 땐 어렴풋이 서해바다가 눈에 들어오는, 앉아서 삼천리 서서 구만리를 볼 수 있는 전망이 대단하다. 아래로 난 길로 다시 살래살래 내려서면 검단사 주차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바퀴 다 돈 셈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두어 시간의 여름 산행에 입은 옷은 이미 젖었다. 올라간 입꼬리는 한참 동안 내려올 줄 몰랐다.

    방치됐던 시유지가 대표 관광지로 경기 파주시 법흥리 일대 시유지에 14만㎡의 대규모 장단콩 체험장이 조성된다. 경기도가 주관한 ‘경기북동부 경제특화발전사업’ 공모전에서 파주시의 ‘파주 장단콩 웰빙마루’가 대상을 차지하며 시상금 100억원, 민간투자금 100억원 등 총 20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파주시는 2017년 10월까지 탄현면 법흥리 일대에 장류 제조와 장단콩 체험이 가능한 장단콩 웰빙마루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메주가공시설(2300㎡)과 장 제조시설(1000㎡), 장류 및 콩 체험장(3300㎡)이 들어서며 체험 후 장류는 국민장독대 1만개에 분양 후 저장된다. 경기도 여주와 광주, 이천 등지에서 구입한 국민 장독대 1만개로 항아리길을 조성하거나 통일동산 살래길을 연결하고 장류 제조에서 얻은 수익금 일부는 통일지원 및 북한이탈주민 지원사업에 쓰일 방침이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9호 (2015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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