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N 여성스포츠대상’ 4월 MVP 손연재…8월 세계선수권 첫 메달 예감 좋아요
입력 : 2013.06.07 14:27:21
-
지옥 훈련과 신기술 개발까지 음악은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에 나비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고 나와 볼과 한 몸이 되어 날갯짓을 했다. 무결점 연기를 펼친 후 20점 만점에 17.400점을 받아 올해 첫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어진 이탈리아 페사로 월드컵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맞춰 흑조로 변신해 리본 종목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서 월드컵 최고의 성적을 낸 것이다.
MBN이 선정해 시상하는 2013년 4월 여성스포츠대상 월간 MVP의 주인공은 단연 손연재였다. 캠퍼스의 낭만과 알콩달콩한 연인과의 사랑 대신 리듬체조를 택한 그녀는 “리듬체조 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수상하게 되어 기쁘다”며 “고된 훈련으로 체력적인 한계를 느낄 때도 있지만 리듬체조를 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활짝 웃어보였다.
손연재가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하기까지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있었다. 항상 아름다운 연기로 우아한 백조 같지만 영광의 상처도 많다. 엄청난 훈련 탓에 발은 성한 데가 없고 올해 초에는 발가락 미세 골절로 적잖이 고생하기도 했다. 쉴 새 없이 바닥을 뛰니 마찰이 생겨 발바닥은 굳은살로 가득하다. 벌써 4년째 리듬체조의 본고장 러시아에서 홀로 외롭게 훈련하며 고난도 기술을 연마하면서 강행군을 걸어오고 있다. 런던올림픽을 준비할 때는 무려 1년 반 동안 하루 8시간의 지옥 훈련을 했다. 훈련이 끝나면 그야말로 녹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올해 겨울에는 고강도 훈련을 많이 했다. 지난해 30점 만점에서 올해부터 20점 만점으로 채점방식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총점이 줄어들다보니 실수로 인한 감점은 상대적으로 타격이 클 수밖에 없어 좀 더 정확하고 세밀한 기술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손연재의 강점인 표현력 점수가 강조돼 이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연기 중 손연재의 표정이 한층 여유로워지고 다채로워진 것은 이런 영향 때문이다.
볼과 리본, 후프, 곤봉 등 4종목 프로그램을 변경된 채점 규정에 맞춰 전면 교체해 더욱 힘든 겨울을 보냈다. 특히 리본 종목에서는 한 다리로 연속 17회전 하는 포에테 피봇 기술을 완벽하게 마스터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또한 힘든 시간 속에서 손연재만의 신기술도 개발했다. 볼과 곤봉 종목에서다. 볼 종목의 경우 볼을 높이 던진 뒤 뒤로 돌아 팔과 등 사이에 끼운 뒤, 곧바로 뒤로 한 바퀴 도는 연속 동작을 만들었다. 손연재는 국제체조연맹(FIG)에 이 두 가지 독창성(Originality) 기술에 대한 공인 신청을 했다. FIG가 심사 후 공인하고 손연재가 오는 8월 세계선수권에서 신기술을 연기해 성공시키면 보너스 점수를 받게 된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알리나 카바예바(러시아)의 ‘카바예바 피봇’처럼 ‘손연재 기술’이 생기는 셈이다. 손연재는 “아직 등재될 수 있을지 모른다”면서 “만일 올해 신기술이 등록된다면 자신감도 더 생기고 기분도 좋을 것 같다”며 생긋 웃어보였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이제 값진 열매를 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리듬체조 관계자들은 손연재가 영리하고 똑똑한 선수라고 입을 모은다. 뭐든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내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얘기다. 손연재는 러시아어는 물론 영어, 일본어 구사 능력이 수준급이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본인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러시아어는 러시아인 코치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일본어는 국제대회에 나가 일본 선수들과의 소통을 위해 중학교 시절 독학으로 익혔다.
악바리 같은 무서운 정신력
4월 초 리스본 월드컵을 앞두고 급격한 체중 감량으로 구토와 발열 증세를 보였다. 모두 참아내고 동메달을 따낸 손연재는 “예전과 달리 요즘은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찐다”며 “체중 조절과 훈련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특유의 악바리 기질과 긍정적 마인드가 극복의 비결이다. “리듬체조는 음악에 맞춰 표현해야 하는 종목이라 당일 컨디션과 기분에 좌우되는 측면이 많아요. 큰 무대에서는 긴장이 많이 되니까 강하게 마음먹는 것,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됐어요.”
6월 김연아와 ‘보이지 않는 경쟁’ 손연재는 6월 15~16일 양일에 걸쳐 고양체육관에서 갈라쇼를 개최한다. 공식 명칭은 ‘LG휘센 리드믹 올스타즈 : 사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감’. 단순한 리듬체조 갈라쇼가 아닌 다양한 문화요소들과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색다른 내용을 채운다는 계획이다. 손연재는 지난해에 이어 재기발랄한 댄스와 숨겨둔 끼를 발산할 예정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손연재 갈라쇼 일주일 뒤 ‘피겨여왕’ 김연아가 아이스쇼를 연다는 점. ‘삼성 갤럭시 ★스마트에어컨 올댓스케이트 2013’이다. 여성 스포츠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해온 김연아와 혜성처럼 등장한 손연재의 대결, 여기에 각각 두 선수의 후원 기업인 삼성과 LG의 한판 대결 성격까지 여러모로 흥미롭다.
한편 손연재는 4월 3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3년 한국 파워 셀러브리티(대중에 알려진 유명인) 베스트 10’에서 김연아를 9위로 밀어내고 3위를 차지했다. 그 뒤 여론조사기관 리스피아르조사연구소가 발표한 ‘2013 상반기 연예인 인기도 조사’에서는 김연아가 여성 선수 가운데 1위, 손연재가 2위에 올랐다. 손연재는 우리 나이로 이제 스무 살이다. 전성기도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김연아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 최고를 향해 무섭게 치고 올라가고 있다. 그게 올해일 수 있다. 손연재는 조심스럽게 올해 목표를 이야기했다. “올해 8월 세계선수권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어요. 체력과 집중력을 보완하면 첫 메달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2013년 손연재를 주목해보자.
[국영호 MBN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3호(2013년 06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