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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성 기자의 나인틴 홀] ⑱ 오늘은 어떤 이유로 샷이 안되나요
입력 : 2013.06.07 14: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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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시죠?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이 있죠. 아마 골프에서는 ‘핑계 없는 미스샷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샷이 잘 안되는 날 골퍼들의 핑계는 헤아릴 수 없이 많죠. 보통 직장인들은 “전날 과음해서” “야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연습 할 시간이 없어서” 등 수많은 핑계거리를 갖고 있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직장인들 치고 술 약속 없는 날이 며칠이나 되고 야근 안 하는 직원이 얼마나 될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전날 과음으로 꼭 다음날 골프를 망치거나 연습은 안 하고 오랜만에 채를 잡았다고 꼭 이상하게 땅볼이나 뒤땅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다들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술 먹은 다음날 몸에 힘이 빠져서 굿샷을 날리고 간만에 라운드를 나갔는데 오히려 더 장타가 나올 때가 있죠. 하지만 진짜 고수라면 라운드 전날 술자리를 피하거나 최대한 적게 마시는 게 좋습니다. 대부분은 과음과 무리한 다음날 공이 잘 안 맞으니까요. 프로골퍼들은 좀 다를까요? 비슷합니다. 지난 5월 9일부터 12일까지 ‘한국의 마스터스’로 불리는 ‘GS칼텍스 매경오픈’ 취재를 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잘 안 맞는 선수들을 어찌나 핑계가 많은지 짜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공이 잘 안 맞는 날은 “페어웨이 잔디가 안 좋아서” “그린이 느리고 모래가 많아서” 등 코스와 관련된 핑계가 주를 이루죠. 가끔은 집안일이나 개인적인 걱정 때문에 샷에 집중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볼까요? 어떤 선수는 코스가 안 좋아서 스코어가 안 나왔다고 하는데 다른 선수는 그날 8언더파를 기록하며 1위에 이름을 올렸죠. 그럼 상위권에 포진한 선수들은 코스가 좋아서 잘 친 걸까요?
많은 톱 골퍼들은 조금 다릅니다. 핑계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거죠. “오늘 집중을 하지 못했다” “숏게임에서 정확하지 못했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톱 골퍼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골프는 정말 어렵다. 잘되는 날이 있지만 안되는 날도 있다. 그것을 막지는 못하지만 안되는 날 못 치는 폭을 최대한 줄이는 게 프로”라고요.
독자 여러분. 수많은 핑계들은 어느새 ‘마음의 병’인 징크스가 돼 골퍼들을 괴롭힐 수 있습니다. 사실 핑계가 많다는 것은 골프가 그만큼 예민한 운동이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뭘 먹었는지, 몇 시에 일어났는지에 따라서 샷이 달라질 수 있는 게 골프라는 것이죠.
그래도 가끔 핑계는 구찌나 내기처럼 골프의 재미를 높이는 존재임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핑계 없는 골프를 상상해 보세요. 재미도 느낄 수 없고, 상대방 놀리는 맛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너무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재미없는 라운드가 될 겁니다. 사실 동반자가 ‘핑계’를 대며 무너져 주면 여러분의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지어지잖아요.
[조효성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3호(2013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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