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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3000억원 뮤지컬 시장의 빛과 그림자
입력 : 2013.03.07 15: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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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문화산업의 기둥으로 성장한 뮤지컬의 위세는 뮤지컬 전문공연장의 설립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2011년 하반기 개관한 디큐브아트센터와 블루스퀘어는 대형 흥행작들의 무대가 됐다. 전용극장의 설립으로 대형 뮤지컬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든든한 보금자리가 마련됐다. 특히 1760석 초대형 뮤지컬 전용관을 갖춘 블루스퀘어는 <위키드> <엘리자벳> 등 굵직굵직한 국내 초연작들을 올렸고 개관 후 약 1년간 평균 유료객석점유율 89.7%, 입장객 65만명이라는 우수한 성적표를 남겼다. 디큐브아트센터 역시 <맘마미아> <시카고> <아이다> 등을 수개월동안 무대에 올리며 성공신화를 써나가고 있다. 약 50년의 역사를 지닌 국내 뮤지컬은 불과 10여년 전까지 공연계에서도 손꼽히게 ‘배고픈’ 분야였다. ‘무대예술은 모두 순수예술이다’라는 인식을 깨며 뮤지컬의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은 다름 아닌 <오페라의 유령>이다. 2001년 당시 대형 뮤지컬이 20~30억원의 제작비를 들이던 시기에 14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들여 약 7개월간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오페라의 유령>은 약 1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 이후 ‘뮤지컬도 잘만 만들면 돈이 되겠다’라는 인식이 퍼졌다”며 “이는 다양한 제작사들이 상업적인 관점에서 뮤지컬을 해외로부터 들여오거나 창작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10여년 남짓한 시간동안 보여준 눈부신 성장의 뒷면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급격한 성장으로 인한 일종의 ‘성장통’이라 보고 있다.
원 교수는 “뮤지컬 산업은 급속하게 자라는 와중에 다양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며 “성숙기에 들어서기 이전 과도기적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입 VS 창작’ 공정할 수 없는 경쟁 앞선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을 목격한 제작사들에 의해 우후죽순처럼 다양한 수입 뮤지컬은 국내에 쏟아졌다. 이들은 국내 뮤지컬 산업의 외형적인 성장에 크게 기여하는 첨병노릇을 했다. 단적으로 지난해 국내에 처음 선보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는 3개월 만에 관객 20만명을 돌파했고 총 4개월간 2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객석 점유율은 96%에 달했다. 라이선스 뮤지컬 역시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상반기 돌풍을 몰고 온 <엘리자벳>에 이어 <시카고> <맨오브라만차>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황태자 루돌프> <아이다> 등의 라이선스 뮤지컬들 역시 높은 티켓점유율을 통해 뮤지컬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수입뮤지컬이 흥행보증수표라는 인식이 강해지자 국내에 새로운 작품을 들여오려는 경쟁은 치열해졌다. 자연스레 원작자에 지불하는 로열티는 증가하는 추세다. 뮤지컬 제작사인 HJ컬쳐 한승원 대표는 “수입뮤지컬의 강세와 함께 제작사들 간의 경쟁으로 로열티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일부 수익의 30%가 넘는 금액이 지불되고 있다”고 밝혔다.
수입뮤지컬의 강세에 비해 국내 창작뮤지컬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하다. 국내에서 작년 한 해 흥행에 성공을 거둔 작품은 <번지점프를 하다> <완득이> <모비딕> 등으로 다섯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들다. 그나마 몇몇 작품이 한류바람을 타고 해외시장 진출을 통해 활로를 찾고 있는 형국이다. 관객들이 국내 창작 뮤지컬을 외면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공연의 ‘수준’이다. 원 교수는 “수입 뮤지컬과 국내 창작뮤지컬 간의 경쟁은 사실상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라며 “오랜 기간 수없이 많은 검증을 받은 명작과 이제 막 만들어진 창작물이 같은 링에서 맞붙었을 때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라 지적했다.
창작뮤지컬 <셜록홈즈>를 제작한 한승원 HJ컬쳐 대표는 “창작뮤지컬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제작비 지원도 좋지만 극장 대관 역시 중요하다. 주요 극장들은 대관신청 시 라이선스가 서류심사에서 창작뮤지컬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다 보니 좋은 극장에서 창작뮤지컬을 올리는 게 어렵다. 이 구조가 깨지지 않으면 창작뮤지컬의 성장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국내 창작뮤지컬 역시 오랜 기간을 가지고 해외 뮤지컬과 경쟁할 수 있을 만한 완성도를 가질 때까지 크고 작은 무대를 통해 갈고 닦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은 물론 제작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정부 역시 창작뮤지컬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지원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작년 처음으로 창작뮤지컬의 수출 지원을 위해 창작뮤지컬 육성지원 사업을 펼치며 9억원을 투입했고 올해 예산에도 포함시켰다. 그러나 의지만큼 깨어야 할 부분은 정책결정자들의 후진적인 인식이다.
원 교수는 “가끔 몇몇 의원들은 한 뮤지컬 작품에 정부자금이 2번씩 들어가느냐고 비판한다”며 “이는 뮤지컬 산업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해외 명작들이 창작 이후 수많은 단계를 거쳐 명작으로 탄생하듯 국내 창작뮤지컬 역시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육성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뮤지컬도 영화처럼 ‘스테이지 쿼터’ 필요한가 국내 창작뮤지컬이 수입뮤지컬에 가려 고전을 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뮤지컬에도 영화처럼 스크린 쿼터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흘러나온다. 유인택 서울시뮤지컬 단장은 최근 “한국 영화가 지난해 누적 관객 1억명을 넘어선 데에는 스크린 쿼터의 힘이 크며, 창작 뮤지컬도 스테이지 쿼터로 부흥기를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공립 4개의 대형공연장인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충무아트홀에 라이선스 작품 하나를 올릴 때마다 창작 뮤지컬 역시 하나씩 올리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요지다. 대형공연장에 대관신청이 번번이 탈락을 하다 보니 일부 창작 뮤지컬 제작자들 사이에도 스테이지 쿼터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스테이지 쿼터가 과연 실효적으로 국내 창작 뮤지컬의 활성화를 이끌 수 있는 수단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진 측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원 교수는 “뮤지컬은 단순히 영화와 함께 바라볼 수 없고 현재 창작 뮤지컬이 부진한 이유가 공연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라며 “상업극장에 스테이지 쿼터를 도입했을 때는 WTO 조항에 위배될 가능성이 크고 공공공연장은 현재 뮤지컬 외에 다양한 공연을 올리고 있는데 스테이지 쿼터를 도입할 경우 뮤지컬 자체의 설 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내배우들이 출연하는 라이선스 뮤지컬의 티켓가격의 상승은 속칭 뮤지컬에 진출한 아이돌 가수들을 뜻하는 ‘뮤지컬돌’들의 높은 몸값이 가장 큰 원인이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에 주연을 꿰차고 들어가는 아이돌 가수의 몸값은 회당 수천만원에 달한다. 흥행을 위한 제작사의 선택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티켓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작자와 ‘뮤지컬돌’의 입장에서는 서로 손해 볼 것 없는 거래임에 분명하다. 제작자는 이들의 유명세를 활용해 흥행가능성을 높이고 ‘뮤지컬돌’은 돈은 물론 ‘배우’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뮤지컬돌’들이 국내 뮤지컬 시장의 성장에 일조한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막대한 ‘팬덤’을 지닌 이들은 국내를 넘어 해외 팬들까지 국내 뮤지컬 공연장을 찾게 만들었다. 지난해 외국인이 가장 많이 관람한 뮤지컬은 <위키드>도 <엘리자벳>도 아닌 <캐치 미 이프 유 캔>이었다. 이 뮤지컬은 슈퍼주니어의 규현, 비스트의 손동운, 제국의아이돌 김동준, 샤이니의 키, 소녀시대 써니,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의 다나 등 인기 아이돌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작품이었다. 이렇듯 ‘뮤지컬돌’은 국내 뮤지컬 시장의 흥행에 기여하며 티켓가격 상승을 이끌었으나 정작 공연의 질만큼은 높이지 못했다.
“(춤과 노래의) 기본이 부족한 것 같다. 많은 연습이 필요한데, 본인 스케줄을 다 소화하고 와서는 잠깐 연습하고 그러더라.”
뮤지컬 스타 남경주가 한 인터뷰에서 털어 논 속칭 ‘뮤지컬돌’에 대한 속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쁘다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동안 부족한 연습량은 작품의 주인공을 맡아 극을 이끌어가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몇몇 아이돌 가수가 등장한 작품은 관객들과 평단에 잔인하리만큼 격한 혹평을 받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제작자와 뮤지컬돌이 하나씩 주고받는 거래에 관객들은 높은 티켓값을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수준 낮은 공연을 지켜보게 되는 구조를 띄게 되는 것이다.
예외도 있다. 아이돌 그룹 핑클 출신인 옥주현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배우로 성장했다. 다양한 무대경험을 거치며 성장한 그녀는 현재 공연 중인 <레베카>에서는 만개한 모습을 보여주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차분히 작은 배역부터 갈고 닦여져 배우로서 성장하는 과정 없이 아이돌이 입문하자마자 주연으로 데뷔하는 현재의 구조는 분명 눈높이가 높아진 국내 관객들의 수준을 맞추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원 교수는 “뮤지컬을 갓 입문한 아이돌 가수가 작품의 주역을 차지하는 현재의 행태는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점차 관객들은 스타보다 공연 수준에 반응해 작품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 내다봤다.
인터파크 예매시장 독점… 사재기 통한 순위조작 시도도 예매가 필수인 뮤지컬을 관람하기 위해서 대중이 가장 많이 찾는 사이트는 인터파크다. 공연예매시장에서 7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인터파크의 ‘힘’은 상당하다.
한 달에 한 편 이상 뮤지컬을 관람한다는 박영세(32) 씨는 “공연을 선택할 때 주변사람들의 의견과 언론이나 블로거 리뷰 등에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인터파크의 예매율 순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 표본이 크고 여러 공연들을 간접 비교할 수 있는 툴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소셜커머스나 공연장을 통한 직접 예매비율도 늘어나고 있지만 다양한 할인혜택과 공연정보를 동시에 제공하는 인터파크의 지배력은 아직까지 절대적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제작사들은 비도덕적인 ‘꼼수’를 펼치기도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승원 HJ컬처 대표는 “워낙 파워가 막강하다 보니 (인터파크의) 예매율 순위를 높이는 것이 (제작사들 사이에) 다른 어떤 광고보다 좋은 마케팅 효과를 가져온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수수료가 나가더라도 표를 대량으로 구매해 순위를 높이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고 밝혔다.
뮤지컬 <여고괴담>을 준비 중인 강철웅 감독은 “평일 낮 공연 같은 경우 예매율이 90%에 육박하는데 막상 공연장을 찾으면 텅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 같은 경우가 제작사들의 표사재기를 통한 순위조작의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원 교수는 이에 대해 “최근 관객들이 공연을 선택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입소문”이라며 “특정 예매사이트의 예매율이나 랭킹은 선택에 있어 그리 중요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순위조작은 그리 의미가 크지 않은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0호(2013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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