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의 브라보 클래식] ⑭ 내년 탄생 200주년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삶은 농담 인간은 최고 광대라네
입력 : 2012.11.12 10:56:20
아이다
1838년에 딸을 가슴에 묻었다. 이듬해 아들을 잃었다. 그 다음해에는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다. 이 비극적 인생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작곡가 베르디(1813∼1901). 가정이 무너진 후 그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갔다. 실의에 빠져 일할 의욕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 지배인 바르톨로메오 메렐리와 약속한 오페라 마감이 그를 압박해왔다. 웃음을 잃었는데 오페라 부파(희극)를 써야 했다. 억지로 오페라 <하루만의 임금님>(1840)을 작곡했지만 결과는 흥행 참패였다.
망가진 삶을 일으켜 세워준 오페라 <나부코>
베르디의 자존심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방황하던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대본이 바로 구약성서를 소재로 쓴 <나부코>. 교만과 폭정으로 신에게 버림받은 바빌로니아 국왕 나부코도노소르의 일생을 각색한 작품이었다. 그는 구약성서 ‘예레미야서’ ‘열왕기’ ‘다니엘서’에 나오는 인물. 기원전 605년~562년 집권했으며 이집트와 시리아를 격파했다. 하지만 예루살렘 신전을 파괴한 벌로 실성했다. 소처럼 풀을 뜯어먹고 살았으며 털은 독수리의 날개처럼 자랐다.
가족과 의욕을 상실한 베르디는 모든 것을 잃은 나부코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는 “대본을 받아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서글픔이 엄습해왔다. 너무나 괴로워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밤새 자꾸 읽다보니 대본을 다 외워버렸다”고 말했다.
오페라 <나부코>는 1843년 2월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됐다. 오만과 독선 때문에 철저하게 망가진 왕 나부코가 신에게 용서를 빌고 다시 부활하는 내용과 강렬하고 웅장한 음악이 관객을 사로잡았다.
줄거리는 이렇다. 나부코는 인질로 잡혀 있는 딸 페레나를 구하기 위해 히브리 신전에 침입했다. 히브리 군인들을 물리치고 승리한 나부코는 말을 타고 신전에 들어선다. 분노한 제사장이 페레나를 찌르려고 하자 유대왕의 조카 이스마엘레가 단도를 뺏는다. 이스마엘레는 바빌로니아에 사자(使者)로 갔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페레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페레나를 구해주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분노한 나부코는 신전을 불태운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나부코는 노예의 몸에서 얻은 딸 아비가일레에게 배신당한다. 아비가일레는 아버지 나부코의 왕위를 빼앗고 배다른 동생 페레나를 죽이려 한다. 망상에 사로잡힌 나부코가 “히브리의 신은 멸망했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들의 왕이고 신이다”고 외치자 무시무시한 천둥소리가 울리고 벼락에 맞아 쓰러진다. 아비가일레는 정신을 잃은 나부코를 감금한다.
통일 희망 심어준 노예들의 합창
작곡가 베르디
그 후 세상은 암흑으로 변한다. 나부코 대신 왕위에 오른 아비가일레는 히브리인들을 핍박한다. 노예로 끌려온 히브리인들은 고된 노역에 시달린다. 그들이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잃어버린 조국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합창 ‘날아가라 꿈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는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다.
유폐된 나부코는 딸이 사형장에 끌려가기 직전 긴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무릎을 굻고 히브리 신에게 용서를 빈다. 제정신이 돌아오자 사형을 중지시킨다. 히브리 제사장은 “여호와를 섬기는 당신이 바로 왕 중의 왕이십니다”라고 나부코를 찬양하고 막이 내린다.
나부코가 신의 용서를 받고 반전을 이룬 것처럼 이 오페라를 작곡한 베르디의 삶도 역전된다. 베르디가 “이 오페라는 행운의 별 아래 태어났다”고 말했을 정도로 얻은 게 많았다. 우선 흥행 성공으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새로운 사랑도 얻었다. 아비가일레 역을 맡은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는 두 번째 아내가 된다. 음악적 도약도 이룬다. 기존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율의 벨칸토 오페라와는 달리 거칠고 대담한 음악으로 리얼리즘 오페라의 새 역사를 열었다. 유년 시절 지독한 가난을 겪었기 때문에 돈 욕심도 많았다. 그의 부모는 작은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는데 문맹이었다. 정신박약아 동생은 어린 나이에 죽었다. 베르디는 9세에 성당 미사에서 오르간 연주를 맡았을 정도로 뛰어난 음악성을 보였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부유한 상인의 후원으로 부모 곁을 떠나 중학교에 진학했다. 18세에는 밀라노로 유학을 떠나 견문을 넓혔다.
인생의 축소판 같은 오페라
가면무도회
부잣집에 얹혀 눈칫밥을 먹던 기억 때문에 베르디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나부코> 이후 16년 동안 오페라 <맥베스>(1847) <리골레토>
(1851) <일 트로바토레>(1853) <라 트라비아타>(1853) <시몬 보카네그라>(1857) 등 20여편을 작곡했다. 특히 ‘맥베스’는 증오와 몽상 등 인간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한 명작 오페라로 평가받는다.
베르디는 탐욕과 갈등을 담은 작품으로 세상의 본질을 탐구했다. 1859년 로마 아폴로극장에서 초연된 <가면 무도회>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왕의 암살을 소재로 치정과 사랑, 배신을 담았다. 왕이 충복인 레나토의 아내 아멜리아를 사랑하자 분노한 레나토가 왕을 죽인다.
그런데 시대적 배경이 이 작품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당시 베르디의 조국 이탈리아는 프랑스 나폴레옹 3세(1808~1873)의 폭압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탈리아인 세 명이 나폴레옹 3세를 암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친 사건도 있었다. 그 이유 때문에 프랑스 당국은 ‘가면 무도회’ 공연을 막았다. 결국 배경을 스웨덴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옮기고 국왕을 총독으로 바꿔 공연했다.
살벌한 검열을 뚫고 오페라 무대에 오르자 로마 관객들은 “비바 베르디(Viva Verdi)”를 외쳤다. 그 속에는 이탈리아 왕 만세라는 뜻이 숨겨져 있다. 16년 동안 절필했던 그의 창작열을 다시 지핀 사람이 바로 작가 아리고 보이토. 그의 뛰어난 대본에 매혹된 베르디는 1887년 <오텔로>를 탄생시킨다.
장난 같은 인생 담은 마지막 오페라 ‘팔스타프’
1. 나부코 2. 가면무도회
보이토의 기발한 대본은 50년 만에 희극에도 다시 도전하게 만든다. 우여곡절 끝에 희극 <팔스타프>(1893)를 완성한 후 그는 오페라 주인공인 뚱보 기사 존 팔스타프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모든 것은 끝났다. 가게, 정든 존. 언제까지나 자네의 길을 가게. 장난스러운 악당이여, 때와 장소가 바뀔 때마다 쓰는 가면 밑에서 영원히 진실이기를 바라는 네 길을 가게, 안녕히.”
오페라 <팔스타프>는 허탈한 웃음만 남는 인생살이를 담았다. 여자 치맛자락만 쫓다 망신당하는 주정뱅이 팔스타프를 내세운 코미디이지만 서로 속고 속이며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을 풍자해 씁쓸한 맛을 남긴다.
거동이 불편한 80세 베르디가 하루 8시간 리허설에 참여하며 완성한 ‘팔스타프’는 인간의 위선과 탐욕을 이야기한다. 팔스타프는 돈 많은 유부녀들에게 눈독을 들였다가 복수를 당한다. 그는 남편이 없는 오후에 만나자는 포드 부인의 연락을 받은 후 약속 장소로 간다. 부인을 끌어안으려는 순간 포드가 들이닥친다는 전갈을 받는다. 급히 숨은 곳이 세탁물 바구니. 여인들은 이 바구니를 시냇가로 버린다.
죽다가 살아났지만 팔스타프는 반성의 기미가 없다. 또 다시 부인에게 밀회 약속을 전해 듣고 신이 난다. 욕망에 부풀어 한밤중에 숲으로 나가지만 요정들의 방해로 물거품이 된다. 그때 등장인물들이 모두 부르는 합창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농담이고, 인간은 최고의 광대라네…”. 베르디는 마지막 오페라를 통해 ‘인생은 결국 코미디’라는 암시를 주고 생을 마쳤다.
그는 1901년 뇌졸중으로 쓰려져 숨을 거뒀다. 장례식에서는 오페라 <나부코> 주제곡이 울려 퍼졌다. 전 세계에서 20만명이 몰려왔으며 이탈리아 일간지 1면에는 그를 애도하는 검은 리본이 인쇄됐다. 내년에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를 추모하는 오페라 대작들이 관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전지현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사진제공 국립오페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