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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교수의 인간과 신] ⑩ 황금률
입력 : 2012.11.12 10: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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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 간의 갈등의 원인은 보통 인간의 욕심, 질투, 야망이지만 이것들을 위장하기 위해 종종 종교적인 어법을 사용한다. 종교 근본주의자들은 극악무도한 테러를 행하면서도 자신들의 종교를 도용하며 미움을 조장한다. 유대 근본주의자들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신이 유프라테스 강까지 주겠다’는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웨스트 뱅크에서 지난 3000년 동안 거주했던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려고 하고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하던 자신들의 수상 이츠하크 라빈마저 암살한다.
스스로를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자로 지칭한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은 노르웨이에서 100명가량을 무참히 사살하면서 유럽에서 무슬림을 몰아내겠다는 ‘유럽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코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국제적인 테러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사마 빈 라덴은 자신이 조직한 알카에다의 막강한 자금으로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와 9·11 미국대폭발테러를 감행한다. 이들은 모두 신의 이름을 빌려 살인, 폭력, 미움을 조장한다.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들과 주교들은 자신들 관할 아래 있는 성직자들이 저지른 성 학대 스캔들을 못 본 채함으로써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의 고통을 무시해왔다. 몇몇 종교 지도자들은 마치 세속적 정치가들처럼 자신들의 종파를 찬양하고 상대 종교에 대해 험담과 비하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이 근본주의 종교집단의 공개적인 신앙고백에서 ‘자비’를 찾아 볼 수도 없으며, 대신 성직자의 성적 취향, 여성 사제/목사 안수 혹은 난해한 교리적 규정들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 종교에 속한 신앙인들을 종교공동체로부터 발을 돌리게 만들다.
이들은 황금률보다는 이 부차적인 문제에 대한 구차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기준이라고 착각한다. 심지어 한국의 몇몇 대형 개신교회들은 자신들의 세습이 성서에 근거한 것이라며 북한이나 재벌처럼 세습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버티고 있다.
오늘날처럼 종교의 핵심인 황금률이 이토록 간절히 요구되는 시대는 없었다. 세상은 점점 위태롭게 양극화되어 있고 사람들은 남녀노소 모두 몇몇 거대 이익집단의 전자기계와 게임이 정해주는 가상세계의 늪에 서서히 빠져들어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간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권력과 돈이 염려스러울 정도로 소수에게 편중되어 있고 그 결과 분노, 불안, 소외, 굴욕이 점점 커져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소외자들의 정신분열적인 무차별적 폭력과 미움이 분출되어 모두를 슬프게 한다. 우리는 끝낼 수도 이길 수도 없어 보이는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을 하고 있다.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세속적인 분쟁이다. 그러나 이들이 각각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근본주의로 무장해 ‘종교적인 문제’로 변질되어 신성시되면 이들의 왜곡된 신념은 고착화되어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은 사라지게 된다. 신문이나 미디어를 통해 사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에서 보도를 하기 때문에 근본주의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주장들은 한 순간에 고착화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한 순간에 지구 저편 아프리카의 고통과 빈곤을 공감할 수 있다. 유럽발 경제위기가 바로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치며 한 나라의 주식이 폭락할 때 전 세계의 주식 시장에서 도미노 효과가 일어난다. 북경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늘 일어나는 일이 이제 내일 서울이나 뉴욕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환경 재앙의 무서운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소수의 권력들이 과거에는 국가단위에 부여된 절대 권력을 점점 더 갖게 되어 전능한 존재가 됐다. 우리 시대만큼 황금률이 필요한 적이 없었다. 우리의 종교와 도덕적 전통은 이 난제를 풀어야 하는 어려운 시험에 직면해 있다.
기원후 70년 유대인들은 다시 한 번 국가적인 재난에 직면했다. 기원전 586년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 2세는 예루살렘을 부수고, 유대인들을 포로도 잡아간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소위 디아스포라를 시작한다. 성전이 기원전 515년에 재건됐다. 그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의 유대 점령에 대항한 유대인 봉기는 기원후 70년 로마 군대의 예루살렘과 성전 파괴로 이어졌다. 유대인들은 신이 거주한다고 믿었던 예루살렘이 두 번째 파괴되자 망연자실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유대인들에게 창의적인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유대교 랍비들은 자신들이 간직해온 경전연구를 통해 다시는 파괴할 수 없는 ‘마음의 예루살렘’을 짓기 시작했다. 기원후 200년경 등장한 유대교 경전 <미쉬나>, 그리고 5-6세기 등장한 <탈무드>가 그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경전들을 공부하는 행위가 천상의 예루살렘을 위한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것이라 생각했다. 예수와 동시대인인 위대한 랍비 힐렐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힐렐에게 한 이교도가 다가와 “당신이 한 다리로 서 있는 동안 토라 전체를 암송할 수 있다면, 나는 유대교로 개종할 것이요”라고 말했다. 힐렐은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 스스로에게 혐오스러운 일을 이웃에게 하지 마시오. 이것이 토라의 전부이며 나머지는 그저 각주일 뿐이니, 가서 이것을 공부하시오”라고. 그는 여기에서 신의 유일성, 천지창조, 출애굽 혹은 613 계명과 같은 교리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힐렐에게 그저 황금률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 다른 유일신 전통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헌신의 행위와 믿음 체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들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이기심 없는 배려이다.
그리고 배려를 장려하지 않는 종교는 가짜라는 주장이다. 남을 배려하는 행위가 바로 종교다.
배철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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