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지현의 브라보 클래식] ⑫ 따뜻한 휴머니즘 ‘파파 하이든’…음악으로 인생을 즐긴 천재

    입력 : 2012.09.07 17: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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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가을이 왔다. 그러나 직장 일에 매여 아직도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불합리한 상황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게 월급쟁이의 비애다. 하지만 기발한 방법으로 휴가를 관철시킨 음악가가 있다. 바로 재치가 넘쳤던 오스트리아 작곡가 하이든(1732~1809)이다. 그는 음악으로 휴가를 얻어냈다. 무언의 음악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준 곡은 바로 교향곡 제45번 ‘고별’.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악장으로 일하던 시절에 전속 악단 연주자들을 위해 작곡했다. 후작의 여름 별장에서 매일 저녁 연주회를 강행하던 단원들의 향수병이 심해지자 하이든이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단원들을 빈의 가족에게 보내 달라”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후작의 노여움을 살 수 있었기에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았다.

    하이든과 단원들은 후작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별을 암시하는 고별 교향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갈 무렵 단원들이 일어나 보면대(악보를 펼쳐놓고 보는 대)의 촛불을 끄고 하나 둘씩 무대 뒤로 사라졌다.

    순간 후작은 하이든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곧바로 단원들에게 장기휴가를 주도록 지시했다. 후작도 상당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교향곡으로는 드물게 5개 악장으로 구성된 고별 교향곡은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됐음을 알리는 선율로 가득하다. 1악장에서 알레그로(Allegro)로 빠르게 연주되는 대목은 ‘나는 집에 가야 해’라며 자신의 소망을 격정적으로 말하는 듯하다. 첼로가 강한 어조로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면 제2바이올린이 참으라고 말리는 것 같다. 1악장 중간 부분에 1분여 동안 갑자기 곡이 느려지는데 아마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올리는 것 같다.

    5악장에 돌입하면 단원들은 차례로 무대에서 퇴장한다. 처음에는 콘트라베이스 그 다음엔 오보에, 호른 순이다. 결국 맨 마지막에는 바이올린 두 대만 남아 연주를 마치고 보면대 옆에 켜뒀던 촛불을 끈다. 창작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밀어준 후작의 기분을 상하지 않고 뜻을 이룬 하이든의 기지가 돋보인다.

    하이든은 유년시절부터 장난기가 넘쳤다. 8세에 입학한 빈의 성 슈테판 대성당 부속 합창단 학교에서도 동생 미하일과 함께 짓궂은 사고를 많이 쳐서 야단을 맞았다. 1745년 아직 공사 중이던 쉔브룬 궁전에서 오순절 예배를 올리는 동안 공사장 보조대에 기어 올라가 유치한 장난을 치면서 시끄럽게 굴기도 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그를 붙잡아 매질을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 특유의 유머 덕분에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다. 31년 동안 직장에 다니면서도 윗사람이나 동료들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을 정도로 친화력이 뛰어났다.

    그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으면서도 낙천적인 사람이었다는 점이 놀랍다. 그는 수레바퀴를 만드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합창단 기숙사에 살 때는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변성기가 찾아오면서 빈곤에 시달렸다. 합창단 학교를 떠난 후 8년 동안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비참한 삶을 이어나갔다. 1776년 그가 쓴 자전적 글에는 궁핍한 일상에 대한 걱정이 가득 담겨 있다.

    “일상의 빵을 얻어야 하는 비참함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수많은 천재들이 망쳐지곤 한다. 내게도 똑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다. 밤을 새워 작곡에 대한 열정을 단련하지 않았더라면 내 변변찮은 업적도 결코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야속한 세월에도 온화함 잃지 않아 파란만장한 운명에 휩쓸리지 않고 온화한 성품을 유지한 그는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많은 교향곡을 작곡했다. 당시 교향곡은 고전주의 이상인 균형과 조화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형식이었다. 그는 워낙 부지런해 무려 100여곡에 달하는 교향곡을 남겼는데 교향곡 45번 ‘고별’, 94번 ‘놀람’, 100번 ‘군대’, 83번 ‘암탉’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제101번 D장조 ‘시계(1794년)’는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생을 끌어가는 시계 소리를 닮았다. 제2악장의 똑딱거리는 규칙적 리듬이 시계추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훗날 ‘시계’라는 이름을 얻었다. 바순(목관악기)으로 스타카토(음을 하나하나 짧게 끊어서 연주)의 8분음표를 수없이 반복해 연주한다.

    비록 하이든이 작곡 당시 시계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은 아니지만 후세 사람들은 시계 소리에 초점을 맞춰 연주하고 있다. 이탈리아 거장 토스카니니는 이 곡을 연습할 때 실제로 시계추가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단원들에게 보여주며 연습시켰다고 한다. 지휘 천재인 카라얀도 마찬가지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4호(2012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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