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지현의 브라보 클래식]⑪ 서글픈 삶과 냉혹한 세상을 음악으로 승화…차이콥스키 그의 선율은 서늘하다
입력 : 2012.08.06 09:24:14
-
첫날밤에 서럽게 운 이유차이콥스키
신혼 첫날밤 그는 서럽게 울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내에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없었다. 괴로워하던 차이콥스키는 음악 속으로 도피하려 했다. 작곡에만 몰입한 그가 침실에 들어오지 않자 아내의 원망은 점점 더 커졌고 격한 싸움으로 번졌다.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못 견딘 차이콥스키는 폐렴에 걸려 죽으려고 한겨울 모스크바 강물에 뛰어들기도 했다. 급기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도망쳤고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동성애에 대한 수치심에다 결혼 실패의 충격까지 겹친 그의 돌파구는 역시 음악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웠던 처절하고 비참한 마음을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1878년)>에 담아 승화시켰다. 바이올린에 그의 감정을 털어놓았지만 처음부터 대성통곡하지는 않는다. 1악장에서는 입을 틀어막고 울먹이다 결국 서러움에 북받쳐 목 놓아 운다. 하늘을 찌를 듯 높고 가느다란 바이올린 선율은 비장한 관현악과 서로 얼싸안고 엉엉 운다.
2악장에서는 지난 세월의 회환이 밀려오는 듯하다. 여섯 형제의 둘째로 태어난 그는 유난히 어머니에게 집착했다. 열 살에 법률학교 기숙사에 들어갈 때 어머니가 타고 떠나던 마차에 몸을 던졌을 정도였다. 그때 이별의 충격과 배신감 때문에 여성과 정상적인 사랑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게 그를 둘러싼 추측이다.
슬픔과 비통함, 애달픔, 미련 등 온갖 불행한 감정들을 거칠고 현란한 색깔의 선율로 풀어놓은 후 3악장에서는 삶의 대한 애착이 다시 샘솟는다. 웅대하고 열정적인 음악으로 변한 뒤 러시아 민속 무곡을 따르는 대목이 무척 활기차고 씩씩하다.
1878년 4월 바이올리니스트 친구인 코덱과 함께 이 곡을 완성한 차이콥스키는 러시아 최고 바이올리니스트인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초연을 부탁했다. 그러나 아우어는 “기술적으로 연주 불가능하다”고 거부했다.
3년째 악보가 버려져 있었으나 1881년 12월 4일 라이프치히 음악학교 교수인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츠키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한스 리히터)와 초연하게 된다. 당시 “냄새나는 음악”이라는 독설을 들었지만 브로츠키는 계속 연주여행을 다니며 이 곡의 아름다움을 온 세상에 알렸다.
전쟁 같은 인생에서 승리하려 했다 비록 삶은 불완전했지만 그는 패배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축 쳐져 있는 인생에 힘을 불어넣고 싶은 작품이 바로 <1812서곡 Op.49>. 1812년 나폴레옹의 60만 대군을 물리친 러시아군의 승리와 환희를 담았다. 이 전쟁이 끝나고 28년 후 태어난 차이콥스키는 황제 알렉산드로 2세의 명을 받아 이 곡을 썼다. 1880년 완성해 교회 광장에서 연주했는데 당시 종소리와 대포 소리까지 가세시켜 위용이 대단했다. 큰 북과 팀파니가 ‘쾅! 쾅!’ 대포 소리처럼 심장을 후려친다. 이 강한 선율은 세상의 절망을 모두 지울 것처럼 당당하다. 늠름하고 웅장한 관악기는 ‘포기하지 말고 일어나 정면으로 맞서라. 승리하리라’고 외쳐댄다. 이 곡이 야외에서 연주될 때는 축포로 대포를 쏘아 승전의 기쁨을 증폭시킨다.
이 작품에서는 시베리아의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퇴각하는 나폴레옹군의 뒷모습과 러시아군이 승리를 거두는 장면이 교차한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때는 제정 러시아 국가와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소리가 잦아들고 커지기를 반복한다. 세계 제패를 꿈꾸던 나폴레옹은 1812년 9월 모스크바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식량 부족으로 1개월 만에 퇴각하게 된다. 당시 러시아는 가옥과 곡식을 불태우는 초토화 작전으로 정면으로 맞섰다. 혹독한 추위와 러시아군의 집요한 게릴라 공격에 프랑스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식량과 집 등 모든 것을 내던지고 당당히 싸운 러시아군이 마침내 전투에서 이기자 장엄한 종소리와 대포 소리가 힘차게 울린다. 웅장하고 씩씩한 개선 행진곡은 두 다리와 어깨에 기를 팍팍 실어준다. 러시아인들에게 애국심을 잔뜩 불어넣은 이 곡은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수치의 상징이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연주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곡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미국의 독립기념일 행사에 자주 연주되고 있다. 승리의 기쁨을 이만큼 화끈하게 터트려줄 선율이 드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웅장한 대포 소리 때문에 오디오와 음향 마니아들 사이에 사운드 테스트 음악으로 유명하다. 1952년 헝가리 지휘자 안탈 도라티가 미네아폴리스 교향악단과 녹음한 머큐리사의 LP판은 실제 대포 소리가 함께 녹음되어 있어 200만장 이상이 팔렸다. 국내에는 1960년대에 소개됐으며 당시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베일에 싸인 죽음차이콥스키 음악 전문가로 불리는 러시아 거장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지휘하는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습. 사진제공 마스트미디어
하지만 이 또한 진실인지 명확하지 않아 그의 죽음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생의 끝자락에 작곡한 <비창>은 그의 어떤 작품에도 없는 탄식과 절망적인 소리를 담고 있다. 신음하는 듯한 서두에 이어 애절한 선율이 휘감긴다. 그러나 쉽게 삶을 놓지 않으려는 듯 제1악장에서는 절망적인 투쟁으로 치닫는다. 발버둥치지만 인생은 그리 녹록지 않다. 러시아 민요조의 2악장에서는 다시 진한 우수가 깃든다. 3악장에서는 반항심이 고개를 드는가 하면 제4악장에는 체념한 듯 비통함에 젖어 있다.
어둡고 깊은 선율은 아마도 작곡가의 염세적인 성격과 불행했던 가정생활, 당시 제정 러시아를 짓누르는 억압된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발레로 부활한 한 많은 일생 차이콥스키는 발레에 애착이 많았다. 고전발레의 대명사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배경 음악을 작곡했다. 차이콥스키가 사랑한 발레에 그의 인생을 녹인 사람이 있다. 바로 러시아 천재 안무가인 보리스 에이프만(66). 발레 <차이코프스키(1840~93) :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를 만들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동성애와 창작 고통에 시달렸던 차이콥스키의 고뇌와 자아 분열 상태를 형상화시키기 위해 분신을 등장시켰다. ‘현실의 차이콥스키’가 ‘내면의 차이콥스키’와 갈등하는 2인무가 강렬하다. 똑같은 흰색 잠옷을 입은 발레리노 2명이 서로 엉켰다 밀쳐내며 고통스러운 춤을 춘다. ‘내면의 차이콥스키’는 억눌러왔던 동성애에 눈뜨게 하고 다시 창작열을 지필 수 있도록 한다.
이 작품에는 차이콥스키의 대표작인 발레 ‘백조의 호수’ 주인공 왕자가 등장한다. 왕자는 차이콥스키의 욕망을 투영한 인물로 아름다운 남자의 이상형으로 표현된다. 백조들의 군무가 펼쳐지는 가운데 분신의 유혹에 못 이긴 차이콥스키가 잠들어 있는 왕자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동성애를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한 장면은 2막. 도박과 술에 빠진 차이콥스키가 분신과 왕자를 비롯한 여러 남자들과 뒤엉키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듯 무용수들의 몸으로 풀어내니 차이콥스키의 인생에 더 연민이 갔다. 짠했다.
[전지현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3호(2012년 08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