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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아포스(Priapus) 과도한 욕망에 시달리는 남자들
입력 : 2012.07.06 13: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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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중독증은 섹스 후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섹스를 요구하는 성욕과잉증으로 정의된다. 성적충동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행동상의 문제를 일으켜 심리적 의존, 신체적 의존, 금단현상을 동반하는 경우다. 안전하지 못한 변태적 섹스에 대한 환상도 커서 성추행이나 강간을 행하기도 하고 이런 행동에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성적충동을 스스로 조절할 힘이 없어 악순환을 되풀이한다. 치료가 꼭 필요하지만 다른 어떤 성(性)장애보다 치료가 어렵기도 한 것이 섹스중독증이다.
저명인사로서 자신이 섹스중독자라는 사실을 일반에 밝힌 최초의 인물은 미국의 영화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이다. 공교롭게도 그의 아버지 커크 더글라스도 섹스중독이었다고 한다. ‘섹스는 나에게 항상 엄습해오는 파도와 같다’라고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밝힌 마이클 더글라스는 캐서린 제타존스와 결혼 전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를 받았다.
뛰어난 골프 선수 타이거우즈도 일련의 스캔들 후 무너졌다. 섹스중독증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아쉽게도 2009년 이후 이전의 화려한 기량을 완벽히 되살리지 못했다. 할리 베리의 전 남편인 R&B가수 에릭 베넷도 불특정 다수와 섹스를 즐기는 심각한 섹스중독증으로 끝내 아내와 이혼하고 섹스중독증 재활치료를 받았다. 이런 중독증의 사람들이 현대판 프리아포스(priapus)들이다.
프리아포스(Priapus)는 유난히 큰 성기를 가진 기형적 모습의 신으로 실체는 번식의 상징인 팔루스(Phallus·남근)이다. 의사 갈리안(Galien)은 프리아포스에서 착안해 프리아피즘(Priapism)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오랫동안 성적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스러운 발기를 의미하는 프리아피즘(음경지속발기증)은 외과적 수술이 적응되기도 한다.
프리아포스의 출생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디오니소스와 사랑을 하다가 그를 버리고 아도니스에게 가지만, 거기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불멸의 아름다움으로 제우스를 유혹하다가 제우스의 아내이자 질투의 여신 헤라에게 들킨 데서 유래된다. 헤라는 저주의 손으로 아프로디테의 배를 쳐 기형아 프리아포스가 탄생하게 된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결합해 출생한 존재가 프리아포스라는것. 그러므로 그의 우뚝 선 성기는 술의 최음적 힘이 가지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여겨진다.
요사이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둔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흥행하고 있다. 그러나 제우스, 포세이돈, 헤라, 아프로디테처럼 이름만 들어도 친숙한 신들과는 달리 프리아포스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신화나 연극에서 거대한 성기의 그를 재현하기 어렵기 때문일까 프라이포스를 등장시킨 영화나 연극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자리는 정원과 과수원에 머문다. 마치 포르노 영화처럼 신체 일부가 그의 존재 전체를 대신하고 있고 이로 인해 그는 곧바로 부정적 과도함의 상징이 된다. 그의 성기는 유혹할 때 필요한 시간과 감춰진 것이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발견의 기쁨을 무시한다.
필자는 시립병원 비뇨기과 과장으로 재직 시 광적인 성적욕구에 사로잡힌 일련의 남성들을 진료한 적이 있다. 그 중 대학생 K는 과도한 성적욕구의 노예인 일종의 현대판 프리아포스로 기억된다. 세상의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무기력하면서 수년째 지속되는 강력한 성욕구에 시달려온 그는 하루에 서너 번은 강박적인 자위행위를 했다. 이런 빈번한 자위 후 일시적인 위안을 받기는 하지만 나중에 느껴지는 죄책감과 불쾌감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괴로워했다. 심지어는 공중화장실에서 자위행위를 하거나 빈 강의실에서도 자위를 시도해 친구들에게 들켜 문제가 생겼고 심각한 대인기피증을 앓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사귄 여자 친구들은 곧 그를 떠났고 그 후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고 정상적인 범주에 도저히 포함될 수 없는 이상한 성 욕구만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스스로 후회할 법적처벌이 동반되는 이상한 행위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면서 말이다.
그의 욕망은 지나치게 넘치고 성급했다. 그의 성충동은 완전히 자신의 통제 밖에 있었다. 일체의 인간관계나 감정적 가치로부터 벗어난 상태였다(그것은 마치 영원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놓은 프리아포스의 성기와도 같다). K에게는 상상의 세계가 없었다. 언제나 즉각적인 행동과 만족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스스로의 성적환상에만 기대어 자위도 할 수 없다.
성공한 남성들 섹스중독증 많아 국내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정신분석학자 제롬 레빈이 수년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남성 가운데 5∼8%가 섹스중독증에 걸려 있다고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선 그 비율이 20%에 이를 정도로 높아 일종의 ‘석세스(success) 신드롬’이라고까지 불린다고 했다.
섹스중독증의 증세가 심해지면 성도착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많다는데 이것은 사회적 문제가 된다. 섹스중독증은 완치가 힘들고 재발도 잦으며 심하면 ‘변태’가 되기도 한다. 실제 심각한 상태로 발전하기 전에 진료를 받아야 한다.
일단의 변태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을 조사했던 로버트 스톨러는 과도한 성행위를 하고자 하는 욕구는 진짜 내면의 변태성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련을 넘어서려는 가능성에 있다고 했다. 조사대상 중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는 심각한 상황을 견뎌내고자 애쓰는 과정에서 고통을 에로스화 하는 극단적 능력을 갖게 됐다고들 한다.
과도한 욕망에 시달리는 남자들을 부정적 과잉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를 통해 상처받은 유아적 세계에서 벗어나 생존의 긍정적 영역을 획득한 한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인성 중에 감춰진 연약한 면모를 보듬어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경희 미즈러브 여성비뇨기과 원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2호(2012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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