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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교수 도시락을 아시나요
입력 : 2012.07.06 10: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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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도시락을 만드는 주인공은 대학로에서 제법 유명한 퓨전 한식당 ‘담아’를 운영하고 있는 신지현 사장이다. 퓨전이라고 하지만 사실 담아는 순수 한식을 내는 곳이다. 궁중음식을 기본으로 하되 현대 감각을 살린 샐러드나 해물요리 등을 곁들여 내기에 퓨전으로 불릴 뿐이다.
신지현 사장은 “교수 도시락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담아의 점심 메뉴를 그대로 도시락에 담아서 내는 것이다. 서울대(의대) 교수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점심에 나온 것을 그대로 보내줄 수 없냐고 해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교수들이 장시간 세미나를 하면서 중단 없이 토론을 진행하려고 이곳에 도시락을 주문했는데 그 맛에 반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교수 도시락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서울의대 교수들만 주문을 해 갔는데 차츰 입소문이 돌면서 지금은 인근 성균관대는 물론이고 동덕여대 교수들까지 주문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도시락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신 사장은 광고기획사에서 일하던 아들까지 불러들였다.
인기를 끄는 교수 도시락의 메인은 비빔밥이다.
밥은 현미찰밥인데 거칠지 않고 부드럽다.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소화가 잘 되면서 오래도록 든든한 느낌을 준다.
그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재미있다. 철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데 더덕과 무나물은 기본으로 들어가고 최근엔 여기에 미나리와 취나물 등을 넣고 있다.
특이한 것은 비빔밥에 무나물이 들어간다는 점. 신지현 사장은 “비빔밥에는 무나물이 반드시 들어가야 맛을 부드럽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보통 비빔밥에 도라지나 고사리 등을 넣는 곳이 많은데 더덕을 고집하는 것도 특이했다. 조금 비싸지만 더덕을 넣어야 제대로 향을 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밥을 비벼서 한 술 입에 넣으니 고추장의 매콤함과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나면서도 밥알 하나하나의 맛, 곁들인 더덕이나 무나물 취나물 미나리 등 재료의 맛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실 매운 고추장이나 고소한 참기름은 둘 다 너무나 향이 강한 식재료이기 때문에 다른 재료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와인 전문가들은 비빔밥과 와인을 매칭하지 않으려고 할 정도다. 그런데 이곳 비빔밥은 와인을 곁들여도 전혀 튀지 않는 느낌을 주었다.
비밀은 밥을 비빌 때 넣는 고추장에 있었다.
이곳에선 비빔밥에 볶은 약고추장을 넣고 있다. 그래서 살짝 매콤하되 너무 맵지 않고 참기름의 고소함이 느껴지되 다른 재료들의 맛을 오히려 살려주는 듯했다.
도시락엔 전채로 복분자 소스로 드레싱을 한 야채샐러드와 삼겹살 수육, 새우튀김과 호박전, 두부와 브로콜리 구운 토마토 등을 곁들여 내고 있다.
달콤하면서도 신선한 복분자 소스는 신선한 야채의 맛을 살려주는데 삼겹살에 찍어 먹어도 좋다. 한국 고유의 식재료가 외국의 어떤 드레싱과 견줘도 빠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줬다. 잘 삶아낸 삼겹살 수육은 갓김치와 오가피 장아찌 등과 함께 먹으면 맛이 살아나면서 느끼함은 전혀 없이 깔끔하게 다가온다. 새우튀김이나 호박전도 고소한 맛이 난다. 이태리 음식에 주로 나오는 구운 토마토는 구웠는데도 신선함과 달콤함이 보강된 별미였다. 부친 두부와 브로콜리는 영양을 받쳐주는 식재료.
반찬으로는 오가피 장아찌 외에 가죽 장아찌와 장뇌삼 장아찌, 우메보시, 북어찜 등이 들어 있다. 가죽 장아찌는 흙냄새가 살짝 풍기는 가운데 약간의 탄닌도 느껴진다. 장뇌삼 장아찌는 삼 특유의 쌉쌀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그대로 전해져 삼겹살 수육과 곁들이면 고기 특유의 느끼한 맛을 싹 가시게 한다. 천연 살균제 구실을 하면서 청량감을 높여주는 우메보시 역시 입안을 개운하게 해 주는 식재료다. 잘 숙성된 담아의 우메보시는 일본인들도 탐내는 음식이다. 북어찜은 웬만한 식당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달지 않게 양념 처리한 게 특색이다. 산뜻한 점심을 마무리하는 재료는 물김치와 수박 디저트다. 물김치는 담아의 신지현 사장이 “꼭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 싶은 음식”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시원함이 일품이다. 무와 배추를 절인 백김치인데 다른 반찬 없이 그대로 만족감을 줄 만한 음식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신선한 수박과 체리로 마무리를 하면 도시락이 아니라 웬만한 호텔 한식당에서 접하는 점심 이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2호(2012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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