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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알알이 꽉 찬 조선의 캐비어 "꽁치&갈치"
입력 : 2012.07.06 10: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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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우리 아버지가 그랬다. 나는 당신의 고결한 희생정신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아버지가 꽁치와 갈치의 알을 드시는 건 일종의 미식과 탐식의 애호였다는 결론이 생긴다. 어떻게 아냐고? 아버지 나이가 되어 그 알을 입에 넣었다가 진미를 발견한 까닭이다. 물론 처음부터 아버지도 그 알을 부러 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먹지 않으니 당신이 처리해야 할 몫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입에 넣어보니 이런 진미가 있나.
꽁치나 갈치의 산란기가 언제인지는 나는 잘 모른다. 간혹 요리하기 위해 배를 가르면 녀석들이 차 있다. 아, 두 생선은 사실 알이 별 볼 일 없다. 볼품도 없고 부피도 작다. 그래서 따로 분리해서 유통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보통 별미가 아니다. 세상의 생선 알이 거개 그렇듯이 매혹의 집중력이랄까, 무한에 가까운 수많은 개체의 총체랄까, 알다운 맛의 비밀을 품고 있다. 생선의 알은 복막 밑에 있다. 대체로 얇고 어두운 색을 띄는 꽁치나 갈치의 경우 검정색에 가까운 복막은 쓴맛을 낸다. 그 안에 알이 들어 있다. 싱싱한 녀석들일수록 끈끈한 진액에 둘러싸여 있다. 잘 구운 꽁치의 배를 젓가락으로 가르면 진액과 함께 그다지 많지 않은 숫자의 알이 튀어나온다.
특히 가느다란 실과 같은 게 여러 개 있는데 이것으로 방출된 알이 해조에 붙어서 부화를 기다리게 된다. 동해안의 어부들은 꽁치 산란철에 배를 띄워서 손으로 꽁치를 줍고 알을 건진다. 이 알을 먹어보지는 못했고 뱃속에 든 알로서 우리는 만족하고 있다. 그래도 좋다. 꽁치 알을 원 없이 먹었으면…. 감히 말하건대 이건 조선의 캐비아고. 민중의 캐비아다. 꽁치 ‘캐비아’는 꽁치를 사면 운 좋게 공짜로 얻을 수 있지만 철갑상어의 알, 진짜 캐비아는 철갑상어를 사도 뱃속에 들어 있지 않다. 철갑상어 고기는 몇 만원이면 살 수 있기는 한데 캐비아는 천만의 말씀이다. 캐비아란 정말 말도 못하게 비싼 알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 한국에서 철갑상어 양식장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요새 한 요리쇼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진 강레오와 함께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물 속에서 철갑상어를 안고 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어류는 냉혈동물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묵직한 체구의 철갑상어의 체온이 느껴졌다. 녀석은 가만히 우리들에게 안겨 있다가 지칠 만하면 몸을 뒤틀었다. 철갑상어는 3억년 전부터 지구에 있었던 인류 따위는 쳐다보지도 못할 대선배(?)다.
그런데 3억년을 버티고도 근래의 몇 백 년 동안 상어는 이래저래 수난이다. 지느러미는 수프의 재료라고 남획당하고 알은 지상 최고의 진미가 되는 바람에 양식까지 생겨나고 있다.
요네하라 마리라는 유쾌하고도 기이한 천재 작가가 있다. 그녀는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뒤늦게 한국에서도 그의 책이 히트치고 있다. <미식견문록>은 그중의 하나다. 독특한 시각으로 음식에 얽힌 난마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캐비아 얘기는 압권이다. 캐비아를 얻기 위해 철갑상어의 배를 갈라 죽이는 걸 안타깝게 여긴 한 업자가 YKK지퍼를 상어 배에 달아주는 특허를 냈다는 얘기였다. 연어나 은어와 달리 이 상어는 알을 낳고도 죽지 않는다. 백년까지 산다고 한다. 지퍼를 달면 죽지 않고 얼마든지 다시 알을 깔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아이디어인가. 그런데 몇 장 페이지를 넘기면 그녀가 말한다. 농담이라고. 큭큭 웃게 된다. 그런데 이게 진짜 한국에서 가능한 일이 됐다. 내가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 한국의 양어장에서는 특수한 기술로 상어의 알집을 자극해서 알을 얻는다. 물론 상어는 죽지 않고 유유히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서 논다. 사람보다 오래 사는 상어를 알 한 번 꺼냈다고 죽이지 않으니 마음의 부담도 덜고 경제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란 대대로 파괴를 일삼지만 이처럼 피해를 최소화하는 능력도 있다.
일본에서 가즈노코라고 부르는 말린 청어알은 아주 비싸다. 그래서 노란 다이아몬드라고 부른 게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청어알을 어린 시절에는 흔히 먹었던 것 같다. 요새 한동안 보이지 않던 청어가 시장에서 제법 싸다. 고기는 크게 맛있는지 모르겠는데(플랑크톤의 수와 질이 나빠져 맛이 과거에 비해 형편없다고도 한다) 알은 정말 맛있다. 꼬들꼬들하고 건조한 맛이 난다. 청어알 한 점을 간장에 찍어 소주 한 잔 마시면 행복할 텐데. 글을 쓰다가도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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