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철현 교수의 인간과 신]⑥ 일상이 거룩이다!

    입력 : 2012.07.06 10: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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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2000년부터 중동지방에는 본격적인 사막화가 시작되면서 겨우 자리 잡은 도시문화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24세기 메소포타미아의 중부 ‘아가데’라는 곳에 인류 첫 번째 제국인 아카드가 세워졌지만 기원전 2000년경 이란에서 몰려온 구티인에 의해 파괴됐다. 강력한 도시국가인 아카드가 자그로스 산맥에 거주하던 구티인들에게 전복된 실제적 이유는 심각한 가뭄 때문이었다. 심각한 가뭄은 고대 이집트도 강타했다.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한 인류문명의 첫 개화기인 이집트 고왕국시대도 강우량의 감소로 이집트의 젓줄인 나일강이 점점 말랐다. 나일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해 강 주위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농사를 할 수 있었다. 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 한 파피루스는 기근이 심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이집트인들 원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기록한다. 최근 기후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65m 깊이의 카이로 남쪽에 위치한 파이윰 호수가 완전히 말라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2000년경 고대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거주하던 유목민이었다. 그와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 이집트에서 거주 지역의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항상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하는 나그네였다. 이런 나그네를 고대 셈족어로 ‘이브리’, 즉 ‘경계와 장소를 넘나드는 사람들’이라 불렀다. ‘이브리’가 바로 영어로는 ‘히브리(Hebrew)’다.

    십계명을 받은 모세도 떠돌이 ‘히브리인’이었다. 기원전 13세기경 이집트에 거주하는 이주 노동자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성서에 의하면 당시 이집트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해 이들의 자녀, 특히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성서 <출애굽기>에 의하면 모세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나일강가에 숨겼고 파라오 공주가 그를 발견해 입양했다고 전한다. 이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은 없으나 기원전 13~14세기 고대 근동의 불완전한 사회상황을 반영해주는 글이다. 파라오의 궁에서 자란 모세(모세라는 이름도 이집트어로 ‘태어나다’라는 의미다)는 자신의 동포인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인들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 이집트인들을 살해하고 도망친다. 도망친 곳은 시내반도의 미디안인데 사막과 화산으로 형성된 돌산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기원전 13세기는 이전에 도시중심의 지역이기주의를 벗어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대였다. 이 시기를 통해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말하는 ‘축의 시대 (기원전 9~2세기)’의 씨를 뿌렸다. 기원전 12세기 인도에서는 힌두교로, 이란에서는 마즈다이즘(혹은 조로아스터교)으로, 소아시아에서는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을 통해 그리스 정신으로,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유일신정신세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등장했다. 유일신정신이란 다른 신들을 배척하고 한 신만을 섬기자는 ‘일신우상주의’가 아니다. 유일신정신은 ‘고아,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위한 신이 등장했으며 이들을 대변하는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주장이다.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40년(?) 아주 오랜 기간 양치기로 세월을 보낸다. 한 사람이 한 일을 40년 동안 그것도 요즘같이 복잡한 사회가 아니라 지금부터 3000년 전 중동사막 지역에서 목동으로 40년이나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지난 40년 동안 양떼를 몰고 가던 그 똑같은 길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사막의 가시덤불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나무가 연소되지 않았다. 그는 이 초월적인 현상을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가려하자 이상한 소리가 그 나무가운데서 나왔다. 그 소리가 천둥소리와 같은 소리인지 아니면 마음의 소리인지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모세, 모세! 여기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모세는 이성을 뛰어넘는 이 현상 앞에서 머리를 땅에 대고 떨고 있었다. 모세는 ‘거룩’을 경험한 것이다. 스위스 종교학자 R. 오토는 <거룩의 개념>이란 책에서 거룩의 세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신비(Mysterium), 인간의 오감을 넘어서는 경험 2) 전율(Tremendum), 타자와의 만남으로 떨리는 경험 3) 매혹(Fascinosum), 나와 너무 달라 끌리는 경험.

    ‘거룩’을 경험하고 있는 모세에게 신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샌들을 벗어라! 네가 서있는 그 장소는 ‘거룩한 땅’이다.”

    거룩한 공간과 세속의 공간을 표식은 바로 ‘신을 벗는 행위’이다. 유목민들의 자기 재산목록 1호는 바로 ‘샌들’이다. 우리는 중동지역에서 항의의 표시로 ‘신발’을 던지는 사람들에 대한 소식을 미디아를 통해 종종 듣는다. 자신의 모든 것, 즉 ‘신발’을 내버릴 정도로 상대방을 혐오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샌들을 버려야한다. 이 ‘샌들’의 의미는 나 중심의 이기심이다. 우리가 이기심을 스스로 포기할 때 신은 우리에게 최고의 깨달음을 준다. 그것은 바로 ‘내가 서 있는 이 장소(場所)가 바로 거룩한 땅’이라는 생각의 전환이다. 인간의 문명은 공간의 정복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오지를 탐험하고 외계를 탐험해 우주선을 띄웠다. 인간은 신을 모시기 위한 혹은 신을 감금하기 위한 화려한 공간을 마련해왔다. 인간들은 이 공간들만이 거룩한 공간이며 이곳에서만 신을 만날 수 있다고 현혹한다.

    모세에게 준 최고의 가르침은 ‘바로 네가 서있는 그 장소, 네가 지난 40년 동안 지겹도록 다녔던 그 먼지 나고 더러운 그 장소가 바로 천국’이라는 생각의 전환이다.

    기원전 13세기 모세를 통해 ‘신과 만나는 곳’은 특별한 장소, 특히 종교인들의 말하는 그런 장소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삶의 현장이 ‘천국’이라고 가르쳤다. ‘거룩한 장소’를 인위적으로 만든 종교는 소멸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그것을 조절하는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일상’이 ‘거룩’이라는 가르침으로 적어도 중동지방에서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등장시켰지만 인간들은 다시 신을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만드는 데 혈안이다. 유대교에서 신이 계신 공간이란 단어가 ‘마콤(Maqom)’인데 ‘네가 지금 서있는 그 곳’이란 의미다. 오늘, 일상에서 ‘거룩’을 찾아봐야겠다.

    서울대 배철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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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오리엔트언어들에 매료되어 하버드대 고대근동학과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 인문대학 종교학과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서아시아언어문명 주임교수이다. 주요 관심사는 고대오리엔트문명인 후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일이다. 주요저서로는 <타르굼옹켈로스 창세기> <타르굼아람어문법>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그리다> 등이 있다. [배철현 서울대 교수]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2호(2012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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