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alth] 아내를 위한 선물 자궁경부암 예방백신

    입력 : 2012.06.01 17: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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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래저래 골치 아팠던 5월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치권 얘기를 접어두고서라도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게다가 부부의날까지 서로 챙겨야할 날들이 몰려 있어 샐러리맨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경제적 부담은 차치하고서, 기왕이면 상대방의 마음에 쏙 들고 기억에 남는 선물을 골라야 하는 고통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좋은 선물이란 어떤 선물일까? 아마도 상대방이 오래 간직할 수 있고, 그 쓰임새가 건전하면서 나름대로 참신해 상대방이 받은 선물에 대해 자랑을 하고 다닐 수준이라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굳이 선물의 최신 트렌드라고 칭하자면 ‘건강’을 꼽을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과 가정용 의료기기의 5월 판매량이 해마다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는 뉴스 기사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들도 물론 좋은 선물이지만, 안타깝게도 ‘참신’한 느낌은 쇠한 것 같다.

    가정의 달은 지났지만 아내와 어머니에게, 그리고 사랑스런 딸에게 선물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필자는 ‘암을 예방하는 백신’을 추천하고 싶다. “백신은 신생아들만 맞는 거 아니야?”라는 편견을 가지기 쉬운데,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별로 챙겨야 할 백신이 따로 있으며, 그 효용성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많은 백신중에서 굳이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을 꼽은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 자궁경부암의 원인은 다름 아닌 ‘남성’이기 때문이다.

    일부 남성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여성들의 생식기 건강을 위협하는 남성의 수는 인구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다. 세계적 권위의 종합의학저널인 미국 란셋지(The Lancet)에서는 남성의 50%가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에 감염됐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H. 리 모핏 암센터 연구소의 안나 줄리아노(Anna Giuliano) 박사팀은 미국, 브라질, 멕시코의 18~70세 남성(평균 나이 32세) 1100여 명을 대상으로 HPV 감염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에 따르면 모든 연령대의 남성에게서 HPV 감염 발생률이 높게 나왔으며, 전체 인구표본 중 남성의 절반이 HPV에 감염됐다. 실험 대상자들은 6개월마다 한 번씩 총 2년간 HPV 감염 진료와 검사를 받았다.

    참고로 HPV는 여성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생식기 사마귀, 항문암 등을 유발하며 주로 감염된 남성과의 성관계에 의해 감염된다.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백신 전문가들은 청소년 및 젊은 남성을 대상으로 한 HPV 접종 확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도 9~26세 남성을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백신인 ‘가다실’ 접종을 확대 승인받기도 했다.

    현재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암은 자궁경부암이 유일하다. 조기 진단하면 치료경과가 좋기는 하지만, 일단 ‘암’인 만큼 예방이 최우선이다. 다른 기관으로 전이될 우려가 있는 질병이다 보니, 막상 암 선고를 받게 되면 환자가 느끼는 두려움과 고통은 다른 질병과 비교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자궁경부암 5년 생존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자궁경부암 정기검진은 3명 중 1명꼴로 받고 있을 만큼 예방에 소홀한 점도 선물의 가치를 높인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가 최근 자궁경부암 예방 인식 개선을 위해 실시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정기적인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고 있다’는 여성은 전체 31.6%인데 비해, ‘정기검진을 하고 있지 않다’는 25.4%, ‘나중에 하겠다’는 여성은 41.1%로 훨씬 많았다.

    또한 자궁경부암 발병 가능성을 90% 이상 낮춰준다는 예방백신도 실제 접종한 여성은 19.2%로, 5명 중 1명꼴에도 미치지 못했다.

    예방에 소홀해 암에 걸렸다면 그 치료비용과 신체·정신적 부담은 무시할 수 없다. 자궁경부암이 다른 암 질환에 비해 치료비가 싸다고는 하지만, 경과에 따라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고, 심하면 여성의 상징인 자궁을 적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치료경과가 좋고 생존율이 높은 만큼, 발병 후 사망 때까지 드는 건강관리비는 사망률이 높은 암에 비해 오히려 더 많다. 따라서 치료 기간에 겪는 고통과 수고를 생각하면 자궁경부암 백신의 접종 가치는 충분한 셈이며, 필자가 제시한 좋은 선물의 조건에도 모두 부합한다.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는 질환도 다양하지만 같은 질환을 예방하는 백신의 종류도 다양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에는 자궁경부암의 원인인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의 2가지 유형을 예방하는 2가 백신과 4가지 유형을 예방하는 4가 백신이 있다. 두 백신은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3차 접종 예방백신이라는 점은 같지만 2가 백신은 자궁경부암만을, 4가 백신은 자궁경부암을 포함한 질암, 외음부암, 생식기사마귀 등과 같은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 이렇듯 백신은 종류에 따라 그 예방 범위가 다양하다.

    그러나 백신의 종류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보통 ‘ㅇㅇ백신’이라고 질환명만을 말하고 백신을 접종한다.

    만일 예방백신 접종을 선물하기로 결정했다면,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고 백신의 종류에 대해 미리 알아본 후 본인에게 적합한 백신을 선택하라는 조언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특히 최근 두 가지 질환을 동시에 예방할 수 있는 콤보 백신이나, 다양한 효과를 지닌 다가 백신 등의 출시가 잇따르고 있어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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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교수]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1호(2012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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