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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후희(後戱)는 백해무익?
입력 : 2012.03.26 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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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스완의 한장면·사진제공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후희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글들이 무수히 많은데 이에 대한 남성들의 반박도 늘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섹스 후에 ‘사랑의 대화를 나눠라’ ‘후희를 만끽하라’는 것은 식상한 성생활 지도서에나 나오는 말로 흔히 부부나 애인 사이에 후희가 화합 비결이라는 조언은 정말 남자를 모르는 소리라며 흥분한다. 심지어는 방중술로 여성의 양기를 빼앗는 동파선도(東派仙道) 계열의 수행 지침서들을 들먹이는 극단적 ‘후희 무용론자’들도 있다. 이 도서들은 한결같이 ‘건강을 위해서라면 후희는 백해무익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전희 도중에는 입맞춤을 통해 여성의 타액을 가능한 한 많이 흡입하도록 권장하지만 절정에 이른 후에는 절대로 여성의 타액을 흡입하지 말 것은 물론, 한술 더 떠 절정 후에는 여성이 내쉬는 숨결마저 피하라고 덧붙인다. 탁한 기운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라나. 하여튼 이를 맹신하는 남성들에게서 제대로 된 후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겠다.
실제 화끈한 관계 후 바로 씻고 돌아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차가운 남자 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의 남자 친구를 면담한 뒤 오히려 황당해진 적도 있다. 섹스를 하고 나면 여자 친구 얼굴을 보기가 싫어진다며 아침을 같이 먹고, 밝은 대낮에 어색하게 헤어지고 그런 걸 생각하기 싫으니까 바로 옷 입고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라서 그런 것 같다거나, 후희에 대한 조언을 하니 후희는 여자가 예뻐야 그런 어색함을 줄일 수 있으니 예쁜 여자 친구를 가진 남자들에게나 가능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아 수습이 잘 안 되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최근 연인이나 배우자가 사랑을 나누자마자 바로 잠들어버리는 것은 뭔가 진정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후희 무용론자들이 더 기세등등해진 것 같다. 미국 미시간 대학교 대니얼 크루거 박사 팀은 456쌍을 상대로 잠자리 이후의 행동에 대해 온라인 조사를 벌여 전혀 새로운 결론을 냈다. 섹스 후 먼저 잠에 빠져드는 파트너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유대감과 애정이 더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랑을 나눈 직후에 꾸벅꾸벅 졸음에 빠지고 잠이 드는 것은 오히려 사랑에 빠져 있다는 증거라며 파트너가 오직 ‘그것’만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잠자리를 가진 후 파트너가 잠에 빠져들수록 상대방과의 결속 감정은 더욱 강한 것’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여성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인데 남성 파트너가 바로 잠에 곯아떨어졌더라도 그게 사랑 때문이니 기분 상해하지 말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조사 결과를 후희 무용론자들이 그들 논리의 결정적 자료로 제시할 수는 없다. 이 조사에서 이성 간의 잠자리 이후 먼저 잠이 드는 것은 바로 남성이 아니라 여성 쪽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그들은 주목해야 한다. “남성은 짝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서 더 오래 깨어 있는 태도를 보이고, 이는 여자가 새로운 짝을 찾아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경계하는 것”으로 보이며 “혹은 한 번 더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고 공동연구자인 올브라이트 대학의 수전 휴즈 교수는 해석했다. 그러니 섹스 후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그녀를 놓아두고 곯아떨어진 남성이 그녀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섹스를 하면 할수록 더욱 가까워지고 섹스를 즐기면 즐길수록 사랑은 깊어진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의 성기를 애무하고 자신 안에 담아두고자 하는 욕망은 그 자체가 사랑이다. 모든 남성은 성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가능성을 실천에 옮겨 부부 간의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이 후희다. 끝이 좋으면 과정의 실수는 어느 정도 눈감을 수 있는 법이다.
여성도 사랑할 줄 아는 능동적 주체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능동적 주체다. 남편에게 폭풍처럼 몰아치는 페니스의 강한 역동적 움직임을 요구할 때도 있지만, 고요하고 부드러운 황홀감을 음미할 수 있는 여유도 바라곤 한다. 섹스의 후희가 필요한 이유다. 크고 강한 페니스만이 아니라 정성 어린 애무와 사랑이 담긴 대화도 남성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여성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남자와 섹스를 한 뒤, 몸을 나누기 전에 한 번 더 사랑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침대 위에 누운 여자가 바라는 최고의 행위는 사랑이 담긴 터치다.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입술, 머리칼, 가슴, 목 등 원하는 부위면 어디든지 입 맞추라.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섹스가 끝난 다음엔 절대 곧바로 일어나지 마시라. 설령 소변이 마렵더라도 좀 더 긴 사랑을 위해서 잠시 참아라. 그러지 않으면 사랑의 무드가 순식간에 깨질 수도 있다. 후희는 테크닉이 필요치 않다. 거친 숨결이 잔잔해질 때까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만 해도 된다. 그리고 점점 숨결이 잔잔해지면 어깨를 감싸주면 끝나는 것이다.
[김경희 미즈러브 여성비뇨기과 원장 www.mizlove.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9호(2012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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