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지현 기자의 브라보 클래식] ⑥ 행복한 결혼으로 빚어낸 슈만의 교향곡 1번 ‘봄’…봄처럼 찬란했던 사랑이여

    입력 : 2012.03.23 11: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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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펫 소리가 어둠을 뚫고 나오는 햇살처럼 눈부시다. 독일 작곡가 슈만(1810~1856)의 교향곡 제1번 ‘봄’ 선율은 찬란한 음으로 가득 차 있다. 새처럼 지저귀는 목관 소리와 시냇물처럼 찰랑거리는 현악 선율, 겨울잠을 깬 동물처럼 포효하는 금관악기의 조합이 인생의 황금기를 노래한다. 슈만은 이 곡을 쓸 때 가장 행복했다. 피아니스트 클라라(1819~1896)와 결혼한 후 1년 만인 1841년 신혼의 단 꿈에 젖어 있을 때 완성했다. 곡 전체에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찬송가풍의 가락과 환희, 희망이 반짝거린다. 그의 사랑이 혹독한 시련 끝에 결실을 이뤘기에 기쁨이 컸다. 스승이자 클라라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비크의 결혼 반대가 너무 심했다. 비크는 비현실적인 낭만주의자이자 바람둥이 슈만에게 딸을 주기가 아깝다고 생각했다. 슈만이 클라라와 사귀기 위해 비크의 제자인 에르네스티네 프리켄과 파혼했기 때문에 더욱 신뢰가 가지 않았다.

    반면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라는 너무 예뻤고 모든 남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9세에 음악회 무대에 선 그는 재능이 뛰어났고 지적이었다. 작곡가 브람스는 평생 클라라만을 짝사랑해 독신으로 살았을 정도다.

    비크의 결혼 반대로 실의에 빠져 있던 중에 슈만은 잠깐 한눈을 팔기도 했다. 클라라 노벨로라는 미모의 가수와 만났다. 그래도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 않아 원래 연인에게 편지를 썼다.

    “나와 함께 도망가지 않겠소? 1840년 6월8일까지 결혼을 알리는 기사가 신문에 나지 않으면 나는 ‘다른 클라라’와 결혼할 테고 당신은 당연히 절망에 빠지게 되겠지.”

    편지 속의 ‘다른 클라라’는 노벨로다. 협박하듯 연인의 마음을 얻은 슈만은 야반도주해 몰래 결혼식을 올린다. 장인 비크는 결혼 무효 소송을 할 정도로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하지만 독일 라이프치히 법원은 슈만의 손을 들어줬다.

    꿈 같은 결혼 생활이 시작된 후 슈만의 창작 욕구가 샘솟았다. 특히 행복과 평화를 찾은 그의 마음을 노래한 교향곡 제1번 ‘봄’에 대한 애착이 컸다. 지휘자 타우버트에게 연주 방법을 꼼꼼하게 적어 보냈을 정도다.

    “이 교향곡을 썼을 때, 나의 머리에는 봄의 동경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당신의 관현악으로 나타내 주시기 바랍니다. 맨 처음의 트럼펫은 마치 하늘에서 봄의 방문을 재촉하는 호소처럼 울리도록 해 주십시오. 다음 서주부의 나머지에서는 주위가 모두 푸르러지기 시작하고, 나비가 날아 모든 것이 봄다워집니다. 그리고 끝 악장은 봄의 작별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 곡은 아돌프 베드거의 시에서 악상을 얻었다. 제1악장은 ‘봄의 방문’, 제2악장은 ‘해질녘’, 제3악장은 ‘행복한 놀이 친구들’,제4악장은 ‘봄이 한창일 때’로 표제를 붙이려고 했을 정도로 시적 영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슈만이 존경하던 작곡가 슈베르트(1797~1828) 교향곡 9번의 영향도 받았다. 1839년 빈에서 슈베르트의 형 페르디난트가 건네준 유작 교향곡의 악보를 본 후 독일 교향곡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슈만의 첫 교향곡 ‘봄’은 1841년 3월 31일 라이프치히에서 작곡가 멘델스존(1809~1847)의 지휘로 초연됐다. 연주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신혼의 단꿈 수많은 명곡들 만들어내 슈만은 클라라에 대한 사랑으로 삶이 반짝거리던 시기에 수많은 명곡들을 만들었다. 클라라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에 직접 쓴 시와 새 작품 악보를 선물했다. 편지에 동봉한 피아노 소품 13곡으로 구성된 모음곡이 ‘어린이의 정경’(1838년). 사랑에 들뜬 28세 슈만은 클라라에게 들려주고 싶은 어린 시절 추억을 서정적이고 시적인 선율에 새겼다. 독특한 선율의 ‘이상한 나라’와 쫓고 쫓기는 기분이 드는 ‘숨바꼭질’, 아기자기하고 아득한 꿈의 정경을 그린 ‘꿈’, 어딘가로 달음질치는 듯한 ‘목마의 기사’ 등 소박하고 정겨운 작품들이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 시절에는 ‘시인의 사랑’과 ‘여인의 사랑과 생애’ 등 주옥 같은 연가곡 120여 곡을 썼다. 그가 작곡하면 클라라는 연주했다. 정말 이상적인 음악가 부부였던 두 사람은 하이든의 실내악을 함께 공부하며 서로에게 더욱 필요한 존재가 됐다. 이들은 ‘라이프치히 음악신보’를 창간해 10여 년 동안 낭만주의 음악에 대한 평론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 잡지를 통해 무명의 젊은 음악가인 브람스와 쇼팽을 세상에 알렸다.



    우울증의 고통 음악으로 승화
    작곡가 슈만
    작곡가 슈만
    ‘세기의 음악 커플’ 슈만과 클라라는 아이 7명을 낳았을 정도로 금실이 좋았다. 그러나 결혼 5년째 되던 해부터 불행이 찾아왔다. 슈만에게 정신병 징후가 나타난 것. 심한 망상에 사로잡혀 1854년 2월 라인강에 투신했다. 죽을 뻔했다 구조된 후에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1856년 7월 46세에 삶을 접었다. 살아생전 그의 우울증과 복잡한 심리적 고통이 작품에서 반영됐다. 깊이 있고 무겁고 문학적이었다. 바흐와 헨델이 음악으로 신을 숭배했고, 베토벤이 처음으로 인간의 고통을 음악에 담은 작곡가라면 슈만은 글로만 표현 가능한 복잡한 내면까지 선율로 풀어냈다. 인생을 살면서 생기는 고통, 이상과 현실의 심리적 충돌을 음악에 담았다.

    음표로 문학 작품을 써내려간 슈만의 삶은 처절한 투쟁 같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는 바람에 어머니 뜻에 따라 음악을 포기하고 법학을 공부했다. 음악을 못잊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으나 손가락 부상으로 피아니스트에의 꿈을 접었다. 좌절된 마음과 어지러운 심경을 담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테크닉이나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시’ 같다.

    어둡고 불행한 인생을 산 작곡가이지만 역설적으로 슈만의 음악세계는 처절할 정도로 아름답다. 고통을 승화시켜 더 극적이고 마음 한구석에 하고 싶은 말을 가득 담아 놓은 사연 많은 선율 같다. 남성성과 여성성, 서정성과 염세주의 등 공존하기 어렵고 극단적인 것들을 잘 조화시켰다. 1850년 슈만의 병세가 상당히 악화됐을 때 작곡된 첼로 협주곡이 바로 그렇다. 신선하고 낭만적인 선율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어두운 라인강물처럼 흘러간다. 어려운 시기에 썼지만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느껴진다.



    슈만의 작품을 가장 잘 연주한 명반은 
    볼프강 자발리쉬
    볼프강 자발리쉬
    슈만의 음악을 누가 잘 연주했을까. 슈만의 교향곡 1번 ‘봄’은 볼프강 자발리쉬가 지휘한 드렌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연주 음반(EMI 발매)이 꼽힌다. 화사하고 강렬한 봄의 색깔을 가장 잘 살린 명연으로 회자된다. 교향곡 2,4번은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반(도이치 그라모폰)이 명반 대열에 올라 있다. 교향곡 2번은 슈만이 정신병 환자로 요양중일 때 쓴 작품으로 우울하고 어둡다. 교향곡 4번은 1번과 같은 해에 두번째로 작곡됐다. 마음에 들지 않아 발표를 미루다 2,3번이 먼저 나오는 바람에 4번이 됐다. 슈만의 다른 작품보다 뜨겁고 베토벤의 흔적을 느낄 정도로 열정적이고 선이 굵다. 오랜 시간 수정을 거듭했기에 완성도가 높은 이 곡은 아내 클라라에게 바쳤다. 곡 속에는 클라라를 만나기 전의 방황, 구원의 여인 클라라를 만난 기쁨, 안정을 찾은 후 평화 등이 흘러나온다. 슈만의 연서나 다름없는 ‘어린이의 정경’은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 음반(소니 클래식스)을 추천한다. 슈만의 피아노 독주곡 중 걸작으로 평가받는 ‘크라이슬레리아나’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클라라가 작곡한 주제를 차용해 만든 변주곡도 담겨 있다. ‘오케스트라 없는 협주곡’으로 불리는 이 곡은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의 3악장.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재능이 뛰어났던 클라라가 오래전에 써두었던 주제를 사용했다. 호로비츠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깊이와 사색으로 이 곡의 절대적 권위를 높였다. ‘피아노의 시인’ 머레이 페라이어도 슈만 전문가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슈만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전곡을 녹음했다. 피아노 협주곡 A단조와 더불어 자주 연주되지 않는 ‘서주와 알레그로 아파시오나토’와 ‘서주와 알레그로’가 담긴 귀한 음반(소니 클래식스)이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는 정교한 음의 조합으로 낭만과 열정을 담은 걸작이다.‘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델라 스비체라 이탈리아나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음반(EMI)이 슈만의 정서를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아노의 거장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음반(EMI)도 음악 애호가들의 애장품 리스트에 올라 있다.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슈만 음반들도 명반으로 꼽힌다. 그 중에도 ‘환상곡 op.17’ 연주 음반(도이치 그라모폰)이 일품이다. 성악곡은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가 부른 슈만의 ‘시인의 사랑’(도이치 그라모폰)이 베스트셀러다.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넘은 음반이지만 그의 청아한 미성을 따라잡는 성악가는 드물다.



    ■ 박물관이 된 슈만과 클라라의 신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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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만과 클라라의 자취는 음악에만 있는게 아니다. 독일 라이프치히 인젤 거리 18번지에 슈만 부부의 옛 집이 박물관과 작은 콘서트홀, 초등학교 건물로 보존되어 있다. 슈만 부부가 결혼 직후 4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바로 이 집에서 교향곡 1번 ‘봄’과 오라토리오 ‘파라다이스와 페리’ 등을 작곡했다. 또한 두 딸 마리와 엘리제가 여기서 태어났다.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독일 분단 시절이던 1970년대에 문화재 보호 지역으로 지정됐으며 1995년 12월8일 박물관으로 정식 개관했다. 해마다 슈만 부부의 결혼기념일인 9월12일과 클라라 슈만의 생일인 9월13일 무렵 슈만 축제가 열린다.

    [전지현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cod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8호(2012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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