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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기자의 브라보 클래식] ⑥ 행복한 결혼으로 빚어낸 슈만의 교향곡 1번 ‘봄’…봄처럼 찬란했던 사랑이여
입력 : 2012.03.23 11: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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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천재 피아니스트 클라라는 너무 예뻤고 모든 남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9세에 음악회 무대에 선 그는 재능이 뛰어났고 지적이었다. 작곡가 브람스는 평생 클라라만을 짝사랑해 독신으로 살았을 정도다.
비크의 결혼 반대로 실의에 빠져 있던 중에 슈만은 잠깐 한눈을 팔기도 했다. 클라라 노벨로라는 미모의 가수와 만났다. 그래도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 않아 원래 연인에게 편지를 썼다.
“나와 함께 도망가지 않겠소? 1840년 6월8일까지 결혼을 알리는 기사가 신문에 나지 않으면 나는 ‘다른 클라라’와 결혼할 테고 당신은 당연히 절망에 빠지게 되겠지.”
편지 속의 ‘다른 클라라’는 노벨로다. 협박하듯 연인의 마음을 얻은 슈만은 야반도주해 몰래 결혼식을 올린다. 장인 비크는 결혼 무효 소송을 할 정도로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하지만 독일 라이프치히 법원은 슈만의 손을 들어줬다.
꿈 같은 결혼 생활이 시작된 후 슈만의 창작 욕구가 샘솟았다. 특히 행복과 평화를 찾은 그의 마음을 노래한 교향곡 제1번 ‘봄’에 대한 애착이 컸다. 지휘자 타우버트에게 연주 방법을 꼼꼼하게 적어 보냈을 정도다.
“이 교향곡을 썼을 때, 나의 머리에는 봄의 동경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당신의 관현악으로 나타내 주시기 바랍니다. 맨 처음의 트럼펫은 마치 하늘에서 봄의 방문을 재촉하는 호소처럼 울리도록 해 주십시오. 다음 서주부의 나머지에서는 주위가 모두 푸르러지기 시작하고, 나비가 날아 모든 것이 봄다워집니다. 그리고 끝 악장은 봄의 작별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 곡은 아돌프 베드거의 시에서 악상을 얻었다. 제1악장은 ‘봄의 방문’, 제2악장은 ‘해질녘’, 제3악장은 ‘행복한 놀이 친구들’,제4악장은 ‘봄이 한창일 때’로 표제를 붙이려고 했을 정도로 시적 영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슈만이 존경하던 작곡가 슈베르트(1797~1828) 교향곡 9번의 영향도 받았다. 1839년 빈에서 슈베르트의 형 페르디난트가 건네준 유작 교향곡의 악보를 본 후 독일 교향곡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슈만의 첫 교향곡 ‘봄’은 1841년 3월 31일 라이프치히에서 작곡가 멘델스존(1809~1847)의 지휘로 초연됐다. 연주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신혼의 단꿈 수많은 명곡들 만들어내 슈만은 클라라에 대한 사랑으로 삶이 반짝거리던 시기에 수많은 명곡들을 만들었다. 클라라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에 직접 쓴 시와 새 작품 악보를 선물했다. 편지에 동봉한 피아노 소품 13곡으로 구성된 모음곡이 ‘어린이의 정경’(1838년). 사랑에 들뜬 28세 슈만은 클라라에게 들려주고 싶은 어린 시절 추억을 서정적이고 시적인 선율에 새겼다. 독특한 선율의 ‘이상한 나라’와 쫓고 쫓기는 기분이 드는 ‘숨바꼭질’, 아기자기하고 아득한 꿈의 정경을 그린 ‘꿈’, 어딘가로 달음질치는 듯한 ‘목마의 기사’ 등 소박하고 정겨운 작품들이다. 깨가 쏟아지는 신혼 시절에는 ‘시인의 사랑’과 ‘여인의 사랑과 생애’ 등 주옥 같은 연가곡 120여 곡을 썼다. 그가 작곡하면 클라라는 연주했다. 정말 이상적인 음악가 부부였던 두 사람은 하이든의 실내악을 함께 공부하며 서로에게 더욱 필요한 존재가 됐다. 이들은 ‘라이프치히 음악신보’를 창간해 10여 년 동안 낭만주의 음악에 대한 평론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 잡지를 통해 무명의 젊은 음악가인 브람스와 쇼팽을 세상에 알렸다.
우울증의 고통 음악으로 승화작곡가 슈만
음표로 문학 작품을 써내려간 슈만의 삶은 처절한 투쟁 같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는 바람에 어머니 뜻에 따라 음악을 포기하고 법학을 공부했다. 음악을 못잊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으나 손가락 부상으로 피아니스트에의 꿈을 접었다. 좌절된 마음과 어지러운 심경을 담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테크닉이나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시’ 같다.
어둡고 불행한 인생을 산 작곡가이지만 역설적으로 슈만의 음악세계는 처절할 정도로 아름답다. 고통을 승화시켜 더 극적이고 마음 한구석에 하고 싶은 말을 가득 담아 놓은 사연 많은 선율 같다. 남성성과 여성성, 서정성과 염세주의 등 공존하기 어렵고 극단적인 것들을 잘 조화시켰다. 1850년 슈만의 병세가 상당히 악화됐을 때 작곡된 첼로 협주곡이 바로 그렇다. 신선하고 낭만적인 선율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어두운 라인강물처럼 흘러간다. 어려운 시기에 썼지만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느껴진다.
슈만의 작품을 가장 잘 연주한 명반은볼프강 자발리쉬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는 정교한 음의 조합으로 낭만과 열정을 담은 걸작이다.‘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델라 스비체라 이탈리아나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음반(EMI)이 슈만의 정서를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피아노의 거장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음반(EMI)도 음악 애호가들의 애장품 리스트에 올라 있다.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슈만 음반들도 명반으로 꼽힌다. 그 중에도 ‘환상곡 op.17’ 연주 음반(도이치 그라모폰)이 일품이다. 성악곡은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가 부른 슈만의 ‘시인의 사랑’(도이치 그라모폰)이 베스트셀러다.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넘은 음반이지만 그의 청아한 미성을 따라잡는 성악가는 드물다.
■ 박물관이 된 슈만과 클라라의 신혼집
[전지현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cod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8호(2012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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