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oking] 나를 붕~ 뜨게 하는 맛…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

    입력 : 2012.02.27 13: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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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요리에서 디저트는 단순히 ‘단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디저트를 제대로 먹어야 완벽한 식탁이 되었다고 믿는다. 바다와 들과 산·하늘에서 나는 온갖 재료들로 만든 요리가 한 상 차려지거나 코스별로 나와 사람들은 식탁에 몰두한다. 비로소 포만의 뒤끝에 디저트가 나가게 된다. 디저트는 반드시 식탁을 완전히 치운 후 약간의 공백을 두고 내게 되어 있다. 특히 식탁 위의 빵부스러기 한 점까지 말끔히 털어낸 후 디저트를 내는 걸 당연시한다. 디저트는 ‘서비스를 끝낸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정돈된 식탁에서 디저트를 먹으면서 폭풍 같았던 식탁의 흔적을 지우고 안온하고 평안한 휴식을 갖는 것이다. 흔히 디저트를 단것만 먹는다고 알고 있지만 치즈도 디저트의 일종이다. 한국인은 보통 음식에 설탕을 많이 쓰기 때문에 디저트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이는 동양의 대체적인 습관이다. 디저트 같은 호사(?)를 누릴 형편도 아니었을 것이고, 한상차림의 우리식 음식 습관은 따로 ‘식탁을 정리한다’는 의미의 디저트가 필요 없었을 것 같다. 반대로 가만 생각해보면 과일과 수정과·떡 등을 낼 때 별도의 다과상에 내던 우리의 오랜 관습은 어쩌면 서양식 디저트의 개념에 더 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디저트로 흔히 티라미수를 거론한다. 이 전설적인 디저트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확실한 건 그다지 오래된 디저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베로나를 주도(州都)로 하는 베네토 지방에서 시작됐다는 것, 크레마 잉글레제라는 오래된 스펀지크림 케이크에서 비롯됐다는 정도만 정설일 뿐 갖가지 설이 난무한다. 티라미수라는 이름조차 이탈리아어의 ‘tira(당기다)+mi(나를)+su(위로)=나를 붕 뜨게 하는 맛’이라는 조어(造語)냐 아니냐는 논란이 있을 정도다. 이런 왈가왈부를 떠나 확실한 것 하나는 티라미수는 정말 맛있는 디저트라는 사실이다. 나는 한국에 와서 티라미수를 맛보고 깜짝 놀랐다. 맛없게 만들기가 어려울 정도로 쉽고 단순한 이 디저트의 맛이 아주 달랐기 때문이었다. 자,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을까. 한국의 티라미수는 인스턴트 커피를 적신 스펀지 케이크에 일반 크림치즈와 달걀노른자를 넣고 만든다. 반면 진짜 티라미수는 사보이아르디라고 부르는 이탈리아식 비스킷에 에스프레소 커피를 넉넉히 적신 후 마스카르포네 크림과 다크 럼주를 넣어 굳힌다. 그러니 한국서 파는 티라미수에 본토의 맛이 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어떤 경우는 티라미수는 너무도 만들기 쉬운, 차라리 ‘맛없게 만들기가 더 어려운’ 디저트라는 점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티라미수는 그야말로 간단한 요리법을 갖고 있다. 그만큼 좋은 재료에 기댄 디저트다. 풍부하고 그윽한 우유의 크림으로 만드는 마스카르포네와 커피의 어떤 정수라고 할 에스프레소가 그 핵심이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뽑을 장비가 없으면 절대 만들 수 없는 디저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하고 끈적한 물성(物性)의 이 커피에 사보이아르디 비스킷을 적시면 솜처럼 부드럽게 변하고 금세 코로 휘발되는 강력한 커피향이 도저하게 번진다. 그것은 아직 설익은 맛과 향, 그 자체로는 어떤 맛도 최고라 할 수 없다. 거기에 크림을 얹어 난분한 맛의 스펙트럼이 차분해지면서 오직 미각의 절정으로 도달하는 용맹한 돌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티라미수의 저돌적이며 솔직하고 풍성한 맛 때문인지 이탈리아의 고급식당에서는 아예 다루지 않는다. 개성을 중시하는 고급식당에서 달리 맛의 변화를 표현할 방법이 없는지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티라미수는 그림으로 치면 이중섭 그림처럼 호쾌하고 자유로운 몇 개의 굵은 선으로만 이루어진 음식이다. 자질구레한 맛의 변용을 한마디로 무찔러버리는 진실된 맛이다. 그래서 티라미수야말로 잘 내린 에스프레소와 만나 천상의 화합을 이룬다. 오직 질 좋은 커피 원두로 승부하는, 미각의 선두라 할 에스프레소에 티라미수는 쉽게 곁을 내어준다. 티라미수는 쩨쩨하게 먹는 디저트가 아니다. 수북하게, 에너지 과잉의, 설탕의 공세, 다이어트 따위는 시시해져버리는 그런 태도로 먹는다. 자그마한 찻숟가락이 아니라 마치 수프를 떠먹는 숟가락 같은 거대한 녀석으로 푹푹 떠먹는다. 이탈리아의 시골 식당에서 티라미수를 주문하면 널따란 접시에 ‘본때를 보여주마’라고 외치듯 엄청난 양의 티라미수가 담겨져 나온다. 크림으로 도배한 후각 뒤로 한 번에 치고 올라오는 에스프레소의 향취라니. 거기에 다시 잘 뽑은 에스프레소를 붓는다. 이런 천국이 있나. 티라, 미, 수가 달리 명명된 것은 아닐 듯하다.

    [박찬일 / 라꼼마 셰프 chanilpark@naver.com│사진 =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7호(2012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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