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지현 기자의 브라보 클래식] ④ 경쾌한 새해를 여는 즐거운 왈츠
입력 : 2012.01.26 14:57:07
-
1월1일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어라인 황금홀에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를 연주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혹한에도 도도한 도나우강에서 희망을 찾다 삶이 곧 전쟁이다. 치열하게 투쟁해야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때로는 실패하기도 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렇다고 주눅 든 채 새해를 맞이하진 말자. 기회는 또 오기 마련이다. 지금 패배의식에 빠져있다면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1867년)를 들어보라. 가슴에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를 것이다.
이 곡은 원래 패전의 상처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1866년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했다. 온 나라가 자신감을 잃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패전으로 절망에 빠진 빈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궁중 무도회 악장인 슈트라우스 2세에게 작곡을 부탁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다시 춤추게 했다. 눈과 얼음 밑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도나우 상류의 시냇물을 선율에 담았다. 혹독한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유유히 흐르는 도나우강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발견했다.
어지간한 몸치라도 멋지게 왈츠를 추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이 곡은 원래 카를 베크의 시를 담아 남성합창곡으로 작곡됐으나 관현악용 왈츠로 편곡됐다. 시의 내용도 밝고 긍정적이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세상의 번뇌를 견디어 내어 기품이 있고 젊음에 넘치는 그대와 만나리… 불모의 떨기나무에도 꽃은 피어 나이팅게일의 노래 소리가 울린다.”
1867년 초연된 이 곡은 낙천적이고 온화한 빈 사람들의 생기를 되찾아주며 빈의 상징적 노래가 됐다. 비공식적인 오스트리아 제2의 국가로 사랑받았으며 1941년 신년 음악회에서 나치 치하 빈 사람들의 절망을 달래줬다.
당시 지휘자 클레멘스 크라우스(1893~1954)는 작품의 우아한 기품과 향기를 살려 전쟁의 나쁜 기억을 밀어냈다. 그 후 1967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이 이 곡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빈 신년 음악회 프로그램으로 선정하면서 매년 연주되고 있다. 해마다 1월1일 아침 빈 무지크페어라인 황금홀에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산뜻하게 이 곡을 풀어내며 새해를 열어준다. 빈 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거리에도 새해 선율이 흐른다.
오스트리아 국민만 이 음악회를 즐기는 게 아니다. 전 세계 50개국 TV와 라디오를 통해 생방송된다. 세계인들에게 새해 희망과 평화, 우정이 담긴 선율을 들려주는 ‘문화 대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기품 있고 섬세한 음악을 들려주는 빈 필은 뉴욕 필, 베를린 필과 함께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통한다.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기 때문에 매년 신년 음악회를 이끄는 수장이 바뀐다. 가장 명망 있고 뛰어난 지휘자에게 맡기는 게 관례였다.1941년 클레멘스 크라우스 지휘로 시작된 후 지금까지 카라얀(1967년)을 비롯해 로린 마젤(1994, 1996, 1999, 2005)이나 주빈 메타(1990, 1995, 1998, 2007), 리카르도 무티(1993, 1997, 2000, 2004), 클라우디오 아바도(1988, 1991), 카를로스 클라이버(1989, 1992), 세이지 오자와(2002),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2001, 2003), 마리스 얀손스(2006), 조르주 프레트르(2008, 2010), 다니엘 바렌보임(2009), 프란츠 벨저 뫼스트(2011) 등 세계 최고 지휘자들이 거쳐갔다.
원래 ‘빈 출신’ 혹은 ‘빈에서 오랫동안 음악을 배운 사람’에 한정됐으나 1990년대에 많이 완화됐다. 2002년에는 일본인 세이지 오자와가 최초의 아시아 지휘자로 출연해 화제가 됐으며 인도 출신 주빈 메타에 이어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대인 바렌보임으로 이어지게 됐다.
빈 필 신년음악회에서 희망을 지휘한 마리스 얀손스1월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서 깊은 신년 음악회를 지휘한 마리스 얀손스
얀손스의 음악적 집념은 상상을 초월한다. 1996년 4월 오슬로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의 마지막 소절을 지휘하다 심장 마비를 일으켰지만 지휘봉을 놓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인 지휘자 아르비드 얀손스도 1984년 할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도중에 심장병으로 사망한 바 있다. 부자에게 심장은 아킬레스건이다. 하지만 그는 제세동기(심장 박동을 정상화하기 위한 기기)를 차고 6개월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1997년 3월 얀손스는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임명됐고 2003년부터는 오랜 전통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수석 지휘자로 취임해 악단의 명성을 드높였다. 2004년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는 세계 1등이 됐다. 2008년 영국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이 선정한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 20’에서 베를린 필과 빈 필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정열과 중용, 화려함과 차분함 등 모든 것을 갖춘 얀손스는 인생의 굴곡과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란 사람이다. 성악가였던 어머니 이라이다가 유태인이었다. 그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다니며 아들 얀손스를 길러야 했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긴 얀손스의 음악은 깊고 진실하다. 그래서 그가 전해주는 희망의 새해 선율이 더 의미가 있다. 빈 필 신년음악회를 놓친 사람들은 음반을 구입할 수 있다. 공연 1주일 후 실황 음반이 발매된다. 내년 신년 음악회에 도전하고 싶다면 1월2일부터 23일까지 빈 필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된다. 추첨을 통해 관객을 선정하며 티켓 가격도 최고 100만원이 넘는다.
‘왈츠의 제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오스트리아 빈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도시에서 신년 음악회가 열린다. 거의 대부분 새해 상징 음악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연주한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다른 왈츠곡을 많이 선택된다. 그는 '가속도', '예술가의 생애', '술 여인 노래', '빈 숲 속의 이야기', '자국의 장미', '봄의 소리', '마을 제비' 등 168곡을 남긴 ‘왈츠의 제왕’이다. 무도회용 왈츠를 예술적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4분의 3박자로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왈츠는 원래 작곡가들의 천시를 받는 장르였다. 모차르트(1756~1791)도 “이런 춤곡은 하층 계급에게나 어울려”라고 우습게 여겼다.
왈츠의 매력을 높인 최초 작곡가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1804∼1849)다. 오스트리아를 이끌어온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럽에 ‘무도회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그를 고용했다. 슈트라우스 1세는 왈츠 형식을 확립시킨 뛰어난 음악가였다.
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지속된 합스부르크 왕가는 능수능란한 외교로 주변 강대국 왕실과 사돈을 맺으면서 대제국을 건설했다. 외교사절 접대를 위해 연일 빈에서 무도회를 열었고 왈츠는 가장 훌륭한 사교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슈트라우스 1세는 아들이 음악의 길을 걷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버지는 “음악가는 가난하며 자유롭지 못하다, 귀족들의 귀를 즐겁게 할 뿐”이라며 말렸다. 아들이 은행가가 되길 바라며 상업학교에 진학시켰다. 하지만 슈트라우스 2세는 몰래 악기를 익히고 작곡을 공부했다. 19세에 악단 15명을 조직해 춤곡을 발표하면서 일약 스타가 된다.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왈츠 작곡가’라는 극찬을 들었다.
왈츠의 제왕이지만 그는 춤추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얼굴을 붉히며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래서인지 50대에는 프랑스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의 영향을 받아 오페레타를 주로 작곡했다. 오페레타는 희극적 내용의 작은 규모 오페라다. 유명한 오페레타 '박쥐'와 '천국과 지옥', '집시 남작'이 그의 작품이다.
■ 빈 신년음악회 한국서 즐겨요
구트는 무대에서 지휘도 하면서 바이올린도 연주해 관객을 즐겁게 해준다. 유럽에서 각광받는 소프라노 임선혜 씨(사진)가 아리아 '친애하는 후작님' 등을 부를 예정이다.
지방 공연은 1월17일 구미시 문화예술회관, 1월19일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 1월21일 용인시 여성회관으로 이어진다.
문의 02-599-5743 [전지현 /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cod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6호(2012년 0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