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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기자의 브라보 클래식] ② 깊고 중후한 선율 브람스를 아시나요
입력 : 2011.11.30 17: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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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사이먼 래틀의 브람스 교향곡 해석은 전설의 지휘자로 꼽히는 빌헬름 푸르트뱅글러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사운드를 능가했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클라라도 브람스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1853년 9월30일 자신의 일기에 ‘신이 내려 보낸 듯한 사람이 왔다. 그는 우리 앞에서 자작곡 소나타와 스케르초를 연주했다. 풍부한 환상과 깊은 정서, 거장풍의 형식을 갖춘 작품이었다. 연주할 때 흥미롭게 변하는 젊은이의 얼굴과 어려운 대목도 쉽게 극복하는 훌륭한 손가락을 보았다’고 썼다.
클라라에 대한 브람스의 감정이 깊어진 것은 슈만이 병들면서부터다. 오랜 연주 여행으로 피폐해진 슈만은 정신병을 앓다가 라인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구조됐지만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슈만에게 은혜를 입었던 브람스는 7명의 아이들과 함께 남겨진 클라라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연민의 정이 싹터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스승에 대한 예의 때문에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클라라와 우정을 지켰다. 죽을 때까지 브람스의 짝사랑은 흔들림이 없었다. 40년에 걸쳐 우정의 편지를 주고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멀리했다.
가슴 속에 담아둔 사랑을 표출하는 유일한 창구는 음악이었다. ‘피아노 4중주 작품 60’은 클라라를 위해 작곡됐다. 총으로 자신을 쏘는 듯한 강렬한 도입부로 괴로움을 토해낸 후 클라라를 향한 사랑 고백을 쏟아낸다.
지독했던 브람스의 사랑은 클라라를 따라 죽으면서 끝난다. 뇌졸중으로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브람스의 몸도 급격하게 약해져 간암에 걸린다.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과의 우정이 만든 이중 협주곡요하네스 브람스
고민하던 브람스는 새로운 협주곡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 A단조 Op.102(1887년)’를 작곡하면서 요아힘에게 도움을 청한다. 함께 작업을 하면서 처음 대화를 하게 됐다. ‘화해의 협주곡’으로도 불리는 이 작품 속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투영된다. 바이올린 선율은 날카로운 요아힘을 연상시키고, 첼로 독주부에서는 묵직한 브람스가 떠오른다.
곡의 흐름도 두 사람의 싸움과 화해 과정을 담았다. 1악장에서 두 악기는 맹렬하게 다투다가 2악장에서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서로를 이해하는 듯하다. 그리고 3악장에서는 다시 찾은 우정의 기쁨이 넘친다. 낭만주의 음악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며 선율의 변화가 풍요롭다.
원래 이 곡은 브람스가 교향곡 5번으로 구상해뒀는데 요아힘을 위해 협주곡으로 바꾼 것이다. 음악가들의 아름다운 우정이 위대한 이중주로 재탄생된 셈이다.
사랑과 우정에 강한 인내심을 보였던 브람스는 음악 앞에서도 굉장한 뚝심과 끈기를 보였다. 교향곡 1번은 치열한 고민 끝에 무려 21년 만에 완성했다. 그는 1855년 스승인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을 듣고 감격해 교향곡에 착수했으나 교향곡의 대가인 베토벤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곡을 완성하지 못했다.
브람스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느껴지는 교향곡을 끌어안고 오랫동안 번민했다. 그가 친구 헤르만 레비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인이 내 뒤로 뚜벅뚜벅 쫓아오는 소리를 항상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보게. 그 기분을 전혀 상상할 수 없을 걸세” 라고 털어놨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갈팡질팡하던 그는 1876년 6월 독일 북부 뤼겐섬으로 떠났다. 홀로 나선 여행지에서 브람스는 야성적인 석회암 해안 절벽과 바다 풍광에서 힘을 얻는다. 모진 파도에 깎여도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게 된 절벽과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드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교향곡에 마침표를 찍을 용기가 생긴 것. 웅장한 섬의 정취와 21년에 걸친 창작의 고통과 눈물은 고스란히 음표가 되어 교향곡 1번을 이룬다. 아름다운 선율을 세상에 내보내고 고통과 눈물은 안으로 삭혀서 더욱 경외심이 느껴진다. “브라보, 브람스.”
브람스 작품 연주 명반과 연주회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74)가 이끄는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11월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2010년 발매된 피아니스트 백건우(65)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 변주곡집(도이치그라모폰 발매)’도 관심을 끈다. 피아노 협주곡 1, 2번을 함께 녹음하지 않고 협주곡 1번과 잘 어울리는 변주곡 2개를 담은 독특한 구성의 음반이다. 엘리아후 인발(75)이 지휘하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협연했다. 도이치 그라모폰이 46장의 CD를 모아 발매한 ‘브람스 박스 세트’는 거장들의 브람스 연주를 비교할 수 있어 화제다. 클라우디오 아바도(78)와 주세페 시노폴리(1946~2001), 다니엘 바렌보임(69), 카라얀 등 최고 지휘자들의 브람스 연주가 담겨 있다.
오케스트라가 직접 연주하는 브람스 교향곡을 듣고 싶다면 콘서트홀로 가보자. 유명 피아니스트 출신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74)가 이끄는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1월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임헌정(58)이 지휘하는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1월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협연 피아니스트 피터 야블론스키)과 교향곡 4번을 들려줄 계획이다.
[전지현 /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cod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4호(2011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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