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기 프로젝트] 울창한(鬱) 언덕(陵)의 섬 `울릉도`

    입력 : 2011.09.28 18:05:08

  • 울릉도 도동항 / 행남해안산책로
    울릉도 도동항 / 행남해안산책로
    울렁대는 뱃길이다. 동해의 바다를 가로질러 동쪽의 끝 섬을 향한다. 울릉도는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화산섬이다. 하지만 막연히 제주를 떠올려선 곤란하다. 섬의 주위를 둘러싼 기묘한 바위들은 울릉도의 첫인상을 대변한다. 신비한 몸짓이다. 너머에는 아직 예스런 풍모를 간직한 마을이고 순박한 모양새의 섬이다. 그 사이로 제법 많은 길들이 열렸다. 행남해안산책로가 열렸고 동과 서를 종단하는 둘레길을 복원했다. 성인봉의 원시림을 향하는 길 또한 각별하다. 다정하고 다감하나 또한 신령스런 걸음이다. 묵호나 포항에서 출발한 배는 약 3시간 동안 동해의 물살을 가른다. 우리나라 동쪽 제일 끝 섬을 향해 가는 항로다. 먼 바다의 파도는 제법 거세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울릉도를 실감한다. 얼마나 달렸을까. 바다 빛이 지루해질 때쯤 비로소 섬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주가 한라산에서 뻗어나간 하나의 거대한 섬이었던가. 울릉도는 성인봉에서 사방으로 번진 산맥이고 숲길이다. 중심과 바다 사이의 거리가 제주보다 훨씬 짧으니 성인봉의 위세는 한층 더하다. 도동항에선 사신처럼 망향봉이 마중한다. 항구 곁의 봉오리는 성인봉 못잖게 우뚝하다.

    9월부터 오징어 성어기
    오징어축제는 8월이지만 성어기는 9~11월 사이다.
    오징어축제는 8월이지만 성어기는 9~11월 사이다.
    강릉을 출발했다면 배는 도동항이 아니라 저동항에 다다른다. 울릉도의 대표적인 또 하나의 항구다. 울릉도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오징어인데 두 항구의 오징어잡이 배 풍경은 울릉8경으로 손꼽는다. 도동항에서 석양 속으로 출어하는 오징어잡이 배의 풍경은 도동모범(道洞慕帆)이라 한다. 반대로 저동항에서 바라보는 늦은 밤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은 저동어화(苧洞漁火)에 해당한다. 오징어축제는 8월에 열리지만 성어기는 외려 9~11월 사이다. 이 맘 때부터 오징어가 도톰하게 물이 오른다. 그러니 첫걸음은 저동항의 어판장에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곧장 울릉도를 걷고 싶다면 도동항 쪽을 권한다. 울릉도 트레킹 코스 가운데 가장 마주하는 길은 행남해안산책로다. 도동항에서 해안을 따라 도동(행남)등대나 촛대바위까지 이어진다. 도동 등대까지는 왕복 2시간 남짓하다. 저동항의 촛대암까지 다녀오면 3시간 남짓한 길이다. 얼마 전에는 KBS <해피선데이>의 ‘1박2일’ 팀이 미션 경주를 했던 장소다. ‘바다에 조명을 켠 듯 눈부시게 맑은 에메랄드 빛’이라는 강호동의 감탄이 거짓이 아니다. 울릉도 권역뿐일까. 행남해안산책로는 우리나라에서 손꼽을 만하다. 항의 왼쪽 해안을 따라 행남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바다가 나란하다. 발아래 물길은 푸르다. 짙어 탐스러운 물결이다. 바람에 쓸려와 해안의 암반에 몸을 비빈다. 반대편으로는 기암의 절벽이다.

    해안산책로의 절경은 바다가 압권일 거라 여기지만 절벽도 만만하지 않다. 자연동굴을 지나고 바위 사이로 물길을 낸 가는 폭포도 시선을 끈다. 그 위로 자라는 나무의 푸름이다. 같은 청록의 빛이지만 바다와 나무가 다르다. 시샘하듯 경쟁한다. 틈새로 길은 계단을 이루기도 하고 다리를 놓기도 하며 이어진다. 마치 무지개나 구름처럼 해안의 골짜기와 골짜기를 잇는다. 그 첫 번째 종착지가 도동등대다. 비교적 높은 지대다. 가파른 길을 견뎌 맞이한 풍경이다. 도동등대에서는 저동항의 절경을 한눈에 품는다. 숨을 고르며 마음을 추스른다. 내친 김에 촛대바위까지 좀 더 걸음을 내도 좋으리. 촛대바위는 저동항의 랜드 마크다. 효녀바위라고도 불린다. 조업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딸이 바다로 들어가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다. 높은 조망점은 아니지만 한 걸음 떨어져 저동항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해가 뜨는 풍경도 아름답다.

    울릉도를 읽는 또 하나의 방법, 둘레길
    해안 산책로를 품은 싱그러운 청록
    해안 산책로를 품은 싱그러운 청록
    몇 해 전 울릉도 둘레길도 열렸다. 서쪽 편의 둘레길은 남양항에서 태하 광성명 각석문까지 종단한다. 남양항을 출발해 태하령옛길과 비파산을 지난다. 비파산은 내륙 가운데 솟은 주상절리다. 그 모양이 마치 국수를 말리는 듯하다. 우산국의 우해왕이 왕비를 잃고 대마도에서 온 열두 시녀에게 비파를 뜯게 했다는 전설도 있다. 태하령 옛길에 가까워지면 솔송과 섬잣나무, 너도밤나무 군락이 들고난다. 한층 깊은 숲의 멋이다. 길가로 깊고 그윽한 초록의 풍요다. 동편의 둘레길은 내수전몽돌해변을 뒤로하고 오른다. 내수전에서 출발해 석포일출일몰전망대에 이르는 행로다. 중간에 내수전약수터와 정매화곡쉼터를 지난다. 숲은 또 다시 그윽하다. 간간히 계곡의 물소리도 귓가에 닿는다. 길에는 이효영 씨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남았다. 그들은 1962년에서 1982년까지 산골에서 살았다. 숲이 깊고 험하니 폭우나 폭설의 날에는 근처에서 길을 잃거나 목숨을 잃는 이가 적잖았다. 조난자 가운데 300여 명이 이들 부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다. 따스한 사연은 길의 정감을 더한다. 울릉도의 둘레길은 콘크리트 포장 도로가 많고 길의 접근성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 옛날 울릉도 사람들은 고개를 넘어 마을을 오갔으리라. 둘레길은 그 자취를 더듬어 울릉도를 읽어내는 방법이다. 조금 더 힘찬 걸음을 내고자 한다면 성인봉 트레킹을 권한다. 울릉읍 쪽에서 대원사나 KBS울릉중계소 또는 안평전 코스를 택해 오른다. 초행에는 대원사나 KBS울릉중계소를 권한다. 성인봉 정상을 지나 건너편 나리분지까지 이어지는데 내려서는 길에 원시림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울릉국화와 섬백리향 등의 군락이다.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나리분지에서 신령수 정도를 왕복 산책하는 것도 좋다. 신령의 숲이 어떤 표정으로 사람에게 말을 거는지 확인할 수 있으리. 그것은 자욱한 안개의 표정이거나 푸른 가지의 떨림이거나 때로는 그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의 지저귐이다. 울창한(鬱) 언덕(陵), 울릉(鬱陵)이 사람의 걸음과 만나 빚어내는 울림이다. 어떤 땅과 섬도 알지 못하는 울릉도만의 장단이다.

    [박상준 여행작가 seepark1@naver.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2호(2011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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