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짙은 녹음의 사이다. 좌우로 숲이 도열한다. 국립수목원은 그 길목에서 일찌감치 푸름을 실감한다. 여름빛을 듬뿍 머금은 잎사귀들은 더없이 무성하다. 하기야 1468년부터 국가가 엄격하게 보호하고 관리해 온 숲이다. 최고라는 찬사가 괜스럽지 않다. 2010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등재됐다. 서울에서는 불과 한 시간 남짓하다. 도심을 벗어나 자연의 품으로 걸음을 내기에 이만한 명당도 없다. 찌든 피로가 말끔히 씻겨 나간다.
유유히 흘러간 540년 세월
예전에는 광릉수목원이라 불렸다. 광릉은 광릉 내에서 국립수목원에 이르는 도로변에 있다. 조선의 제7대 왕인 세조와 그의 비 정희왕후 윤씨가 묻혔다. 규모는 다른 왕릉에 비해 비교적 간소하다. 세조의 유언대로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않았다. 봉분 주위에는 병풍석도 없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의 참도 또한 생략했다. 대신 주변의 산과 숲을 보호했다. 바로 광릉숲이다. 일제도 그 가치를 인정해 임업시험림으로 지정했다. 한국전쟁의 포화도 비껴갔다. 어느덧 540여 년을 이어온 숲이다. 국내 최고가 빈말이 아니다.
일반에 개방된 건 1987년이다. 처음에는 광릉수목원으로 문을 열었다. 소리봉과 물푸레봉 아래 자리한 광릉숲의 일부다. 1999년에는 국립수목원으로 승격됐다. 하지만 여전히 광릉수목원으로 부르는 이들도 많다. 한동안은 숲의 보호를 위해 평일에 한해 사전 예약한 5000명만 입장이 가능했다. 여느 수목원이나 공원과는 다른 점이다. 사람들의 쉼 못지않게 숲의 쉼도 중요히 여긴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등재된 것도 이처럼 철저하게 보호한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선 설악산, 제주도, 다도해에 이어 네 번째다. 서울에서 가깝다는 걸 감안하면 한층 소중하다. 그러니 숲이 가진 풍요는 말해 무엇 하랴.
산림과 임업에 대한 자료 수집과 전시가 진행 중인 산림박물관.
방문자의 집을 지나 수목원으로 들어선다. 개울 위로 난 다리를 건넌다. 어린이정원을 앞에 두고 갈림길이다. 안내도를 받아들었다만 무려 500㏊에 11개의 전시원과 동물원, 박물관 등으로 이뤄진 국내 최대의 수목원이라 어디로 걸음을 내야할지 막막하다. 숲의 걸음이 늘 그러하듯 따로 정해진 행로는 없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게 제일이다. 1000개의 걸음이 1000개의 답이다. 다만 수목원에서 제안하는 다섯 가지 코스를 참고해도 좋다. 그 가운데 정문을 출발해 덩굴식물원과 수생식물원을 지나 온실과 숲생태관찰로, 육림호로 이어지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여유가 있다면 육림호에 앞서 산림동물원도 다녀옴직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에서 사진 배경으로 손꼽히는 국립수목원 산책길의 조형물.
덩굴식물원은 어린이정원을 지나 곧장 길의 오른쪽이다. 숲길을 걷지만 조금은 색다른 분위기다. 터널형, 원형, 벽면형 등 다채로운 모양새의 퍼걸러로 조성했다. 덩굴식물은 그 벽이나 기둥을 타고 오르며 그늘을 내린다. 가장 익숙한 등나무에서 담쟁이덩굴과 덩굴장미, 능소화 등이 차례로 들고 난다. 산과일로 잘 알려진 머루나 다래도 고개를 내민다. 오미자, 칡, 인동 등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덩굴식물이다. 퍼걸러 아래 자리를 깔고 쉬는 연인도 적잖다. 아련한 낭만이다. 덩굴의 로맨스다.
세 시간 동안 나눈 자연과의 대화
덩굴식물원의 터널은 곧 수생식물원으로 잇댄다. 습지 연못 곁으로 난 오솔길이다. 연못은 그 생김이 한반도를 닮았다. 안과 밖에서 또는 물가와 물속에서 식물이 서식한다. 수련, 마름, 갈대, 부레옥잠, 꽃창포 등 50과 204종이다. 습관처럼 빨라지던 마음도 수생식물원을 따라 걸을 때는 저도 몰래 여유를 찾는다. 특히 7~8월에는 연꽃이 화사하게 물들인다. 순백의 각시수련꽃이나 앙증맞은 모양의 노랑어리연꽃 등은 기어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물빛에 어린 초록의 음영인들. 팔각정에 앉아 느긋하게 잠깐 쉼을 가져다 좋으리. 수생식물원 주변에는 손으로 보는 식물원이나 화목원, 관목원 등도 있다. 손으로 보는 식물원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숲이다. 화목원과 관목원은 여름보다는 봄에 한층 돋보인다.
세 식물원을 가로지르는 샛길의 끝에는 식물원과 산림박물관이다. 주변으로 좀 더 걸음을 내도 좋고 곧장 옮겨가도 좋다. 난대식물원은 국립수목원 내 유일한 온실이다. 목본식물 위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320종이 자란다. 산림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다. 산림과 임업에 대한 전시가 이뤄진다. 햇볕을 피해 잠시 쉬어가기에 적합하다. 박물관 곁에는 양치식물원도 있다. 소박하고 호젓한 길이다. 양치식물원에서는 꼭 봐야할 식물이 있다. 지린내가 나 광릉요강꽃이라고 불리는 큰복주머니란과 요강꽃 또는 개불알꽃이라 불리는 복주머니란이다. 멸종 위기의 식물들이다. 하지만 온전한 걷기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숲생태관찰로와 육림호 일대를 권한다.
숲생태관찰로는 숲 사이로 난 길이다. 약 462m의 생태관찰로다. 나무 데크 위를 걷는다. 숲을 보호함과 동시에 숲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걸음 따라 나무의 향이 짙다. 그 끝에서 만나는 육림호는 숲속의 호수다. 육림호(育林湖)라는 이름처럼 본래는 나무를 키우는 데 쓰일 물의 저장과 수력발전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지금은 오롯한 수변 경관이다. 더위를 쫓는 걸음을 낸다. 육림호에서는 휴게광장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거나 산림동물원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특히 산림동물원은 5월15일에서 11월15일 사이에만 제한 개방한다. 관람시간도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다. 주로 우리나라 산에서 서식하는 야생동물이 산다. 백두산호랑이나 반달가슴곰 등 약 15종이다. 수목원과는 다른 걷기의 묘미다. 길은 험하지만 꼭 한 번 다녀올 일이다.
국립수목원은 천천히 모두 돌아보는데 약 세 시간 남짓이 걸린다. 매점은 방문자의 집에 있다. 수목원 내에는 식당도 다른 편의시설도 없다. 그저 휴게광장 앞에서 준비한 도시락이나 간식을 먹을 수 있다. 길목마다 출입을 제한하는 구역도 적잖다. 몇 해 전부터는 토요일에도 개방하지만 3000명으로 제한한다. 평일인 공휴일에도 3000명만 입장할 수 있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쉰다. 더구나 예약제다. 분명 제약이 많은 숲이다. 수목의 연구와 보존이 사람보다 우선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가치가 높다. 숲이 가진 본래의 향취를 누린다. 국립수목원에서 상쾌한 걸음을 내길 권하는 이유다.
■ 올림푸스 TOUGH TG-810
방수, 방진 기능을 채용해 수중 10m 깊이, 영하 10도의 극한 저온에서도 촬영이 가능하다. 또한 GPS와 전자식 나침반을 탑재해 전문적인 촬영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카메라 렌즈 표면에 사용된 멀티 코팅 기술은 모래나 먼지 등의 이물질로부터 렌즈를 보호해 준다. 진흙이나 흙탕물에 더러워졌을 때 물로 씻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