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봄의 블루칩 작가 탐방기] 달 소년과 함께하는 위로의 산책, 김성용 작가
입력 : 2011.09.15 16:48:39
-
위로하는 빛 100x100cm, Digital C-print, 2006
엄마, 달이 나를 자꾸 따라와생의 한가운데서 40x40cm, Digital C-print, 2008<br>생의 한가운데서 40x40cm, Digital C-print, 2008
어느새 새벽,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당신을 떠올려 본다.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다. 긴 숨은 무겁고 높은 건물들은 너무 단단하고 냉혹하다.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보도블록을 밟는 구두는 어느새 밑창이 닳아있다. 중력이 평소보다 두 배는 무겁게 느껴져 저절로 고개는 땅으로 처박히고 마음은 자꾸 눈이 감긴다. 저 멋대가리 없는 수많은 간판들. 최진아헤어, 복사워드인쇄, 우동, 클릭인터넷플라자, 아프리카커피숍, 핸드폰싸게팔아요, 비쥬, 준오헤어 그리고 그 사이에 달 하나. 멀다 멀어 집으로 가는 길. 툴툴거리거나 말거나 달은 당신을 졸졸 따라온다. 어릴 때처럼. 행여 귀찮을까 좀 간격을 두고 곰살 맞은 얼굴로 둥그러니 하얗게 그렇게.
나도 그런 기분 느낀 적 있어위로하는 빛 100x100cm, Digital C-print, 2006
작가를 만난 작업실은 성북구 예술창작센터였다. 그는 거기서 자폐아와 행동발달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통한 대화와 소통을 시도한다. 김 작가는 “어제는 이런 메시지를 받았어요”하며 핸드폰을 내민다. 가르치는 꼬마가 보내온 문자다. ‘찍은 사진을 아버지께 보여드렸더니 잘 찍었다고 디카 사서 가치(같이) 찍자고 하시네요ㅋ 우리 다음 주에 또 보는 거 아시죠? 난 셋째 주 토요일이 젤 좋은 하루ㅋ’
훗. 싱글싱글 웃는 작가얼굴을 보니 이건 뭐 조카 자랑하는 삼촌 같다.
“요즘 일어난 일 중에서 제일 행복했어요.”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대다수의 아티스트와는 달리 상당 시간을 봉사활동에 할애하는 김 작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요즘 재능기부라고 매스컴에서도 많이들 얘기하던데요. 근데 그건 좀 거창한 거 같아요. 다들 나누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시작할 방법을 몰라서 아닐까요?”
봉사활동을 하느라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런 단순한 질문에 그는 속 깊은 답변을 내놓았다.
“저도 작업만으로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물론 있죠. 그런데 예술이라는 게요. 어쩌면 그냥 자기배설, 자기만족, 자위행위처럼 끝날 수도 있단 생각을 했어요. 이해도 어려운 작품 터무니없이 비싸게 내놓으면서 ‘소통’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전 그게 좀 웃기는 소리 같아요.”
오히려 그는 다른 통로로도 자신의 예술과 세상이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달 사진을 놓고 제가 받은 위안을 나누고 싶었어요. 누군가 ‘아, 나도 그런 기분 느낀 적 있어요’라고 말해준다면 그것이 바로 소통이죠.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것이 일종의 대화의 시도라면, 더 적극적으로 나눌 수 있다면 그것도 예술이잖아요. ‘봉사’라고 하는 말도 적당치는 않아요. 그냥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바로 작업이에요. 참 재미있는 작업이죠.”
소박하다, 이사람.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사는 삶이다.
산책하며 만나는 세상생의 한가운데서 40x40cm, Digital C-print, 2008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산책하는 건 선천적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생명의 샘물”이라고 했다. 떨어진 능금 하나에서도 백가지 이야기들을 발견해내는 소로만큼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산책의 기술 하나쯤은 숙련해야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아마 그 산책의 기술은 하늘을 혹은 땅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될 것이다. 달에게서 한결같은 충의를 배우고 발밑에서 스러지는 꽃잎에서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상념에 잠겨볼 수도 있다.
김 작가는 그런 친구가 되어주는 것들이 바로 당신 근처에서 빛나고 있다고 나직이 말한다. 이런 다정한 마음을 담은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처럼 순수하고 발그레한 낯빛이 되어보고 싶다. 소년의 탐험심을 부추겨 오늘 밤엔 걸어볼까 싶다. 달과 함께. 어쩌면 나만의 보물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김 작가와 함께 산책하며 요즘은 어떤 작품을 하느냐고 물었다.
“한번은 유럽을 여행할 때 강도들에게 카메라를 뺏겼어요. 할 수 없이 거기서 임시로 산 간이카메라가 바로 이거예요. 오후의 빛과 따듯한 느낌을 어찌나 잘 담아내는지. 그래서 이름도 변변히 없는 싸구려 필름 카메라지만 지금도 가지고 다녀요. 올 가을이나 겨울쯤에 이걸로 찍은 따뜻했던 오후의 장면들을 묶어 전시를 열 계획이에요.”
그럼 요새 뭘 제일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김 작가가 외치듯 대답한다.
“연애요!”, “다리 예쁜 여자와 연애요”라고 조금 작게 덧붙인다. 이어 “사실 여태껏 나이 먹도록 짝사랑만 주구장창”이라며 고개를 떨군다. 캠핑카를 몰고 아름다운 곳 찾아다니며 살아볼까 하는 로맨티스트. 머리 하얀 할아버지 할머니 되어도 둘이서 손 꼬옥 잡고 서로만 바라보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는 다정함이 병인 이 남자. 어디 모셔갈 다리 예쁜 여자분 없으신지?
■ 작가 김성용은 누구…
[박보미 / 아트 칼럼니스트· 봄봄 대표 bomi1020@empal.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호(2011년 07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