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ealth] 휴대전화 전자파의 암 유발 논쟁의 진위

    입력 : 2011.09.15 16: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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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전화 많이 쓰면 뇌종양 걸린다는데 맞나요? 안 쓸 수도 없고 어떡해요?” 지난 6월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뇌종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발표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휴대전화의 유해성에 관한 막연한 보도는 많았지만 WHO가 공식적으로 휴대전화 사용에 따른 위험 가능성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 WHO는 그동안 휴대전화 이용과 암 발병 간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입장을 보여 왔으나 이번 연구로 이를 뒤집은 것이다.

    특히 전 세계 휴대전화 사용자수가 50억명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발표의 파장은 엄청나다. 휴대전화 전자파의 인체 유해성만 입증된다면 휴대전화 제조사에 닥칠 법적 소송만 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담배가 발암물질로 분류된 이후 대형 담배제조사들이 천문학적 수치의 소송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는 것을 보면 짐작할 만하다.

    문제는 휴대전화 전자파 이번 발표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휴대전화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암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휴대전화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전자파’가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휴대전화 전자파를 암 유발 가능성이 있음을 뜻하는 ‘발암 위험 평가 기준 2B’로 분류했다.

    발암위험 평가 기준은 총 5단계. 가장 위험한 1단계는 바로 ‘발암물질’. 흔히 알고 있는 술과 담배가 여기 속한다. X선과 자외선, 플루토늄 등도 발암물질 군에 포함된다. 두 번째로 위험한 단계(2A)는 납 합성물, 비소를 포함하지 않은 살충제, 디젤엔진 찌꺼기 등 ‘암 유발 가능성이 상당히 있는 물질’이다. 세 번째 단계인 2B가 바로 휴대전화 전자파가 속한 ‘암 유발 가능성이 있는 물질’이다. 여기에 속한 것은 휘발유, 살충제(DDT), 배기가스, 납 등 266개다. 커피와 오이피클도 여기에 속해있다. 다음으로 암 유발 가능성이 확인되지 않은 물질(콜레스테롤, 멜라민, 카페인, 페놀 등), 암 유발 가능성이 거의 없는 물질(카프로락탐 등)이 있다.

    IARC는 14개국 출신의 전문가 31명이 지금까지 발표된 휴대전화 관련 연구 논문 수백 개를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휴대전화 전자파 때문에 발암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있는 암은 신경교종양, 청각신경종양 등 두 종류”라고 전했다. IARC는 “10년 넘게 하루 30분 이상 휴대전화를 사용할 경우 뇌종양의 일종인 신경교종양 발생 확률이 40%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IARC의 연구를 이끈 미 사우스캘리포니아대 예방의학과 조너선 사메트 교수는 “휴대전화 전자파가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충분한 증거들이 있다”고 보고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휴대전화와 암 사이의 관계를 앞으로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암’ 해석은 곤란 반면 이번 발표를 두고 ‘휴대전화 많이 쓰면 암이 생긴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는 주장들도 만만치 않다. 휴대전화가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가 다수 수행됐지만 명확한 상관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는 것. WHO의 견해는 말 그대로 WHO의 견해일 뿐이란 얘기다.

    예를 들어 미국 국립보건원은 올 2월 휴대전화 전자파가 뇌의 활동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그러나 이 자극이 뇌에 끼치는 영향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보류해놓은 상태다. 거기까지는 아직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휴대전화 사용이 늘었지만 뇌종양 발병률은 오히려 하락했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인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1980년대 미국 내 뇌종양 발병률이 증가하기 시작해 1980년대 초반 100만명당 63명이 뇌종양진단을 받았다. 휴대전화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1990년에는 100만명당 70명까지 늘었다는 것.

    하지만 1991년부터는 오히려 뇌종양 발병률이 하락해 2008년에는 100만명당 65명으로 감소했다. 지난 20년간 휴대전화 사용자 수가 급증하고 사용 시간도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휴대전화 전자파 노출량이 무려 500배나 증가한 것에 비춰보면 별다른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 브라운대학 전염병학과 데이비드 사비츠 교수는 “하루 평균 휴대전화 사용량과 100만명당 뇌종양 진단건수 간 상관관계가 없다고 해서 휴대전화가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휴대전화 사용자와 뇌종양을 일으키는 전자파 노출 간 시간 지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휴대전화 사용자가 늘어난 시점과 전자파 노출시간이 늘어난 시점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전자파 관련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휴대폰으로 나오는 전자파로부터 인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인 전자파인체흡수율(SAR)를 지키면 한국에서도 휴대폰을 출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통위는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를 해마다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전국의 방송통신 기지국(5263국) 주변의 전자파를 측정, 조사한 결과 전자파 강도가 미미해 인체보호 기준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결국 이 모든 논란을 종합해보면 휴대전화가 뇌종양 발병에 영향을 주는지는 앞으로 좀 더 시간이 흘러야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예경 / 매일경제 국제부 기자 yeaky@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호(2011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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