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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프로젝트] 왕의 무덤 사이를 거닐다… 동구릉
입력 : 2011.09.15 16: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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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면적 2배, 신들의 정원
홍살문을 지나자 첫 갈림길이다. 왼쪽으로는 혜릉이고 오른쪽으로는 수릉이다. 보통 수릉 방면을 택한다. 현릉, 건원릉, 휘릉 등을 지나 다시 혜릉으로 잇는다. 능 전체를 순환하는 길이 있고 거기서 다시 샛길처럼 각각의 왕릉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다. 능의 중심으로는 물길이 지나 경관을 풍요롭게 한다. 마치 왕이라도 된 양 느긋한 걸음을 낸다. 나무는 높게 자라 그늘을 드리고 새들의 지저귐도 따른다. 삼림욕장처럼 상쾌하다.
첫 번째 왕릉은 수릉이다. 순종의 아버지 익종의 무덤이다. 그는 세자로 죽었고 아들이 왕이 된 후에 익종으로 추존됐다. 1855년 지금의 자리로 이장했고 1890년에 신정왕후와 합장했다. 하나의 봉분이지만 왕과 왕비가 함께 잠들었다. 이전과 달리 문무석인을 하나의 단에 배치한 것이 특징인데 무인들의 신분 상승을 말한다. 동구릉에 가장 늦게 들어선 능으로 비교적 소박한 풍모다. 수릉에 뒤이어 현릉이다. 현릉도 수릉과 마찬가지로 문종과 현덕왕후 권 씨의 두 위를 모셨지만 무덤의 모양은 다르다. 동원이강릉이다. 같은 원내에 따로 자리한 능이다. 두 봉분 사이에는 소나무가 푸르렀다. 현덕왕후의 무덤이 들어설 때 저절로 말라죽었다. 정자각은 두 능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능마다 그 모습에 따라 진입로와 정자각 등의 위치를 달리하니 이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현릉 다음이 건원릉과 목릉이다. 동구릉의 아홉 왕릉 가운데 귀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만 건원릉과 목릉은 꼭 들러야 할 능이다.
목릉은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 씨의 무덤이다. 동원이강릉으로 무덤이 세 개다. 정자각에서 세 개의 길이 났다. 무엇보다 동구릉에서 유일하게 무덤 바로 곁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왕릉은 무덤 앞까지 오를 수가 없다. 정자각 인근의 먼발치서 바라본다. 목릉은 가장 가까이서 무덤과 석물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다만 임진왜란 후에 조성한 능이라 다른 능에 비해 석물이 다소 초라한 것이 아쉬움이다. 그래도 터가 넓어 왕릉 주변을 걷기에는 으뜸이다.
건원릉은 조선 첫 왕인 태조의 능답게 동구릉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왕릉의 표본이다. 무덤 위에는 억새를 심은 것이 특별하다. 태조의 고향인 함흥의 흙과 억새를 옮겨왔다. 얼핏 지극한 효성인 것 같지만 숨은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태조는 계비 신덕왕후와 묻히기를 원했다. 신덕왕후를 모신 정릉에 자신의 묏자리까지 미리 마련해뒀다. 하지만 원비 신의왕후의 아들이었던 태종은 그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뿐이랴 신의왕후의 능을 도성 밖에 이장하고 석물은 광통교 공사에 사용해 사람들이 밟고 지나도록 했다. 웃자란 여름 억새에 건원릉이 위용을 더한다.
건원릉 지척에는 비슷한 사연의 원릉이 있다. 조선 최장의 재위 기간을 자랑하는 영조의 능이다. 그는 홍릉에 묻힌 원비 정성왕후와 더불어 쌍릉을 이루길 바랐다. 하지만 정조는 건원릉 서쪽에 영조의 능을 만들었다. 29년 뒤에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를 원릉의 곁에 모셨다. 반면 경릉은 보란 듯 삼연릉이다. 한자리에 나란한 세 개의 봉분이다. 조선의 왕릉 가운데 유일하다. 가운데가 왕의 무덤일 거라 여기지만 우측이 헌종의 능침이다. 그 곁이 차례로 효현왕후와 계비 효정왕후가 묻혔다. 중국과는 다른 조선 왕릉의 특징이다. 열 세 곳의 길지를 돌아다녀 찾은 명당이다.
생을 돌아보며 걷는 즐거움
[박상준 / seepark1@naver.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호(2011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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