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기 프로젝트] 왕의 무덤 사이를 거닐다… 동구릉

    입력 : 2011.09.15 16: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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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왕릉은 40기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그 가운데 태조의 능을 비롯한 아홉 개의 능이 한자리에 모였다. 구리시 동구릉로에 위치한 동구릉이다. 도성의 동쪽에 있는 능이란 의미다. 능이 다섯일 때는 동오릉, 일곱일 때는 동칠릉이라 불렸다. 마지막으로 수릉이 옮겨진 후 동구릉이라 부르게 됐다. 능은 유적이지만 거대한 숲이고 길이다. 당대 최고의 조경가와 예술가의 손길이 닿았다. 굳이 경건을 강요하지 않아도 평온하게 내딛는다. 짙은 녹음은 아비의 어진 마음처럼 걸음을 어루만진다. 더없는 걷기의 명소다.

    여의도 면적 2배, 신들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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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와 나무의 무리 사이로 반듯하게 열린 길이다. 녹음이 짙어 푸르다. 여름의 뜨거운 생명력을 대변한다. 홍살문이 없었다면 어느 수목원이라 여겼겠다. 홍살문은 능이나 궁전, 관아 등의 앞에 세운 붉은색의 나무문이다. 악귀를 쫓는다. 문의 기능보다는 상징성이 크다. 비로소 조선 왕릉을 실감한다. 유럽의 조경 전문가들은 ‘신들의 정원’이라 불렀다지. 그럴 만하다. 조선 왕릉은 당대 최고의 조경이 스몄다. 건국의 첫 건축으로 궁궐보다 종묘와 사직단을 먼저 지은 조선이니 제례의 의미도 각별했으리. 하물며 왕가의 능이다. 석물의 조각 하나에도 당대 최고의 석공들이 참여했겠지. 명당의 풍수와 지리인들. 그 가치는 해외에서도 극진히 대접받는다. 조선 왕릉은 지난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한 왕조의 500년 역사를 고스란하게 담아낸 왕가의 무덤은 다른 나라에도 많지 않다. 그 중 동구릉이 갖는 의미는 한층 각별하다. 1408년 조선의 첫 임금 태조가 묻혔다. 1890년에는 문조익황제의 수릉을 이전했다. 간격을 두고 그 사이로 문종, 선조, 현종 등 시대별 일곱 개의 왕릉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왕릉이 총 40기고 9기가 동구릉에 있다. 왕과 왕비를 합쳐 17위가 잠들었다. 조선 왕릉군 가운데 최대 규모다. 면적만 191만5891㎡다. 여의도공원의 두 배다. 형태도 다채롭다. 삼연릉, 합장릉, 쌍봉, 동원이강릉 등 그 생김과 배치에 따라 여러 가지다. 그 이면에 담긴 사연을 쫓아 걸으면 한층 풍요롭다. 무엇보다 걷기 위한 길 그 자체로도 손색이 없다. 역사나 문화 기행이라면 동구릉문화제가 열리는 5월 말이 좋겠다만 여유로운 걸음을 내기에는 이 맘 때가 낫다.

    홍살문을 지나자 첫 갈림길이다. 왼쪽으로는 혜릉이고 오른쪽으로는 수릉이다. 보통 수릉 방면을 택한다. 현릉, 건원릉, 휘릉 등을 지나 다시 혜릉으로 잇는다. 능 전체를 순환하는 길이 있고 거기서 다시 샛길처럼 각각의 왕릉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다. 능의 중심으로는 물길이 지나 경관을 풍요롭게 한다. 마치 왕이라도 된 양 느긋한 걸음을 낸다. 나무는 높게 자라 그늘을 드리고 새들의 지저귐도 따른다. 삼림욕장처럼 상쾌하다.

    첫 번째 왕릉은 수릉이다. 순종의 아버지 익종의 무덤이다. 그는 세자로 죽었고 아들이 왕이 된 후에 익종으로 추존됐다. 1855년 지금의 자리로 이장했고 1890년에 신정왕후와 합장했다. 하나의 봉분이지만 왕과 왕비가 함께 잠들었다. 이전과 달리 문무석인을 하나의 단에 배치한 것이 특징인데 무인들의 신분 상승을 말한다. 동구릉에 가장 늦게 들어선 능으로 비교적 소박한 풍모다. 수릉에 뒤이어 현릉이다. 현릉도 수릉과 마찬가지로 문종과 현덕왕후 권 씨의 두 위를 모셨지만 무덤의 모양은 다르다. 동원이강릉이다. 같은 원내에 따로 자리한 능이다. 두 봉분 사이에는 소나무가 푸르렀다. 현덕왕후의 무덤이 들어설 때 저절로 말라죽었다. 정자각은 두 능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능마다 그 모습에 따라 진입로와 정자각 등의 위치를 달리하니 이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현릉 다음이 건원릉과 목릉이다. 동구릉의 아홉 왕릉 가운데 귀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만 건원릉과 목릉은 꼭 들러야 할 능이다.

    목릉은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 씨의 무덤이다. 동원이강릉으로 무덤이 세 개다. 정자각에서 세 개의 길이 났다. 무엇보다 동구릉에서 유일하게 무덤 바로 곁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왕릉은 무덤 앞까지 오를 수가 없다. 정자각 인근의 먼발치서 바라본다. 목릉은 가장 가까이서 무덤과 석물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다만 임진왜란 후에 조성한 능이라 다른 능에 비해 석물이 다소 초라한 것이 아쉬움이다. 그래도 터가 넓어 왕릉 주변을 걷기에는 으뜸이다.

    건원릉은 조선 첫 왕인 태조의 능답게 동구릉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왕릉의 표본이다. 무덤 위에는 억새를 심은 것이 특별하다. 태조의 고향인 함흥의 흙과 억새를 옮겨왔다. 얼핏 지극한 효성인 것 같지만 숨은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태조는 계비 신덕왕후와 묻히기를 원했다. 신덕왕후를 모신 정릉에 자신의 묏자리까지 미리 마련해뒀다. 하지만 원비 신의왕후의 아들이었던 태종은 그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뿐이랴 신의왕후의 능을 도성 밖에 이장하고 석물은 광통교 공사에 사용해 사람들이 밟고 지나도록 했다. 웃자란 여름 억새에 건원릉이 위용을 더한다.

    건원릉 지척에는 비슷한 사연의 원릉이 있다. 조선 최장의 재위 기간을 자랑하는 영조의 능이다. 그는 홍릉에 묻힌 원비 정성왕후와 더불어 쌍릉을 이루길 바랐다. 하지만 정조는 건원릉 서쪽에 영조의 능을 만들었다. 29년 뒤에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를 원릉의 곁에 모셨다. 반면 경릉은 보란 듯 삼연릉이다. 한자리에 나란한 세 개의 봉분이다. 조선의 왕릉 가운데 유일하다. 가운데가 왕의 무덤일 거라 여기지만 우측이 헌종의 능침이다. 그 곁이 차례로 효현왕후와 계비 효정왕후가 묻혔다. 중국과는 다른 조선 왕릉의 특징이다. 열 세 곳의 길지를 돌아다녀 찾은 명당이다.

    생을 돌아보며 걷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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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릉과 경릉 사이에는 오롯한 걷기의 즐거움도 있다. 동구릉 자연학습장에 이르는 길이 열린다. 왕릉을 잇는 통로가 아니라 숲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동구릉숲길이라고도 불린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봄직하다. 다만 오후 4시까지만 개방하니 참고하라. 동구릉숲길을 나와서는 숭릉이다. 헌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쌍릉이다. 이 밖에도 경종의 비 단의왕후 심씨의 혜릉과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휘릉 등 여왕들만 따로 묻힌 능도 자리한다. 부러 신경 쓰지 않아도 걸음은 차분하다. 맘대로 서두르지도 늦추지도 않는다. 결국 모든 사람의 끝은 죽음이다. 그것이 왕이라 한들. 그러므로 생 앞에 겸허하다. 노송의 그늘 아래 잠깐 쉬어가며 땀을 씻는다. 다시 걷는다. ■ 삼성카메라 WB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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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출시된 따끈한 신제품이다. 스마트 줌을 1.33배 적용해 24배 파워 줌 효과의 고배율 촬영이 가능하다. 광각 24mm 슈나이더 렌즈로 단체사진, 풍경 촬영, 공연장 등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풀 매뉴얼 컨트롤 기능으로 노출, 측광, 색온도, 셔터속도 등을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다. 가격 37만9000원. ※ 카메라 협찬 = 삼성 WB700

    [박상준 / seepark1@naver.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호(2011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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