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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마을의 변화…베트남 트라미사업장
입력 : 2011.07.01 1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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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받기를 희망하는 동물에 씨앗을 놓는 주민.
마을 사람들은 물소 사육의 장점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직원이 단점을 묻자 주민들은 “물소 값이 너무 비싸요”라고 답했다.
베트남 트라미 사업장의 주민 욕구 조사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한 마을. 오늘은 마을 주민들의 가축 지원에 대해 회의를 하는 날이다. 세찬 빗살은 창문을 쉴 틈 없이 때렸지만 회의장 안은 마을 개발을 위해 목청을 높이는 주민들 소리로 가득했다. 회의라곤 하지만 서로 안부를 묻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 마치 잔칫집 같다. 사업장 직원이 흰 도화지를 펼치니 종이 위에 표가 그려져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익숙한 듯이 빈 칸에 동물 이름을 적고 그 동물 이름 아래에 장단점을 각각 적어 나갔다. 무슨 일인지 마을주민들의 손마다 씨앗이 10개씩 쥐어졌다. 직원의 설명을 들은 주민들은 각자 지원 받길 원하는 동물 이름 위에 씨앗을 올려놓았다. 모든 주민들이 씨앗을 놓으니 금세 동물 인기투표가 끝났다. 첫 조사 결과 1위는 35개의 씨앗이 몰린 물소였다.
“이번 사업 분기에 지원 가능한 물소는 세 마리입니다. 물소로 정해지면 어느 가정에서 지원 받을지 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이른바 현실성 검토 시간이다. 직원은 각 가축별로 지원 가능한 숫자를 말했고 또 각 가축 사육의 장단점을 주민들끼리 토론케 했다. 다시 씨앗을 나눠주고 조사를 하니 이번에는 1위가 황소로 바뀌었다. 이렇게 진행하는 회의 방식이 ‘10 씨앗 기술(10 seed skill)’이다. 이 방식으로 트라미 사업장은 벼농사 교육 및 씨종자 지원, 연못·가축·묘목 지원, 식수 사업 등 모든 사업을 결정·실행하고 있었다. 후원자들의 소중한 후원금이 진정 주민들이 원하는 곳에 쓰일 수 있도록 고안된 방식이다. 이처럼 사업장은 할 수 있는 사업 위주가 아닌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 위주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트라미의 모든 사업은 주민들의 머리와 입을 통해 시작돼 그들의 손과 발을 통해 실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날 즈음,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태평양을 건너간 한국 고교생의 용돈, 주부의 쌈짓돈이 소로 변하는 조용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변했다, 마을이 변했다… 트라 탄 마을아동 영양실조율이 줄어든 마을에 주는 정부 상장. / 아동케어센터에서 영양식을 조리하는 엄마들.
혜택 받은 가족은 형제만이 아니었다. 뒷집에 사는 린반 티우(27)도, 그 이웃들도 농업 교육, 잉어 연못, 자몽·바나나·오렌지 지원 및 교육을 받았다. 트라미 사업장은 오렌지 나무를 한 집에 각각 15그루씩 지원했다. 쌀 종자는 1년에 2회 10kg씩 지원했다. 이 모든 것이 회의의 결과였고 후원자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린반 티우는 “사람들이 변했고, 마을이 변했다”고 했다. “전에는 잘 몰라서 계절이나 시기에 상관없이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피곤하면 쉬었는데, 교육을 받고 나니 언제 심고 언제 추수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는 습관이 생겼다”며 “지금은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옆에 있던 린반 누안(41)도 거들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저처럼 일하는 습관이 바뀌었어요. 농부로 일하는 아빠들만 변한 게 아니에요. 엄마들도 변했어요. 5년 전에 개설된 영양클럽 덕분에 엄마들은 이제 아이들을 더 잘 보살피고 있어요. 우리 마을에서 영양실조로 고생하는 아이들 숫자가 줄었는걸요.” 말을 듣는 순간 마을 회관에서 회의 할 때 걸려 있었던 상장이 떠올랐다. ‘영양대회상장’. 정부가 아동 영양실조율이 가장 많이 줄어든 마을에 주는 상이었다. 엄마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영양클럽으로 발길을 옮겼다.
엄마들이 웃는다, 마을이 웃는다… 트라코이 마을 방 안에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엄마들은 노래를 부르며 신문지로 둥글게 말은 공을 돌리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신문지 공을 받은 한 엄마가 신문지를 한 장 벗겨냈다. 안에는 작은 메모지가 있었다. 엄마는 메모지 안에 써진 내용을 큰 소리로 읽었다.
“아이가 열이 날 때는 어떻게 하죠?”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들이 쏟아져 나왔다. “애들에게 옷을 너무 많이 입히면 안돼요.”, “열이 내려가도록 씻겨줘야 해요.” 보건 봉사자는 엄마들의 대답을 듣고 부족한 것을 보충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인형을 놓고 한 엄마와 아이 씻기는 시범을 보여줬다. 방 안에 가득했던 웃음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실내는 강의실처럼 조용해졌다.
“수건을 쓰세요. 따뜻한 물에 담근 수건으로 아이를 닦아 주세요. 먼저 얼굴을 닦고 귀, 겨드랑이, 사타구니 순으로 아이 피부 온도가 내려갈 때까지 씻어 주세요. 그리고 반드시 보건소로 데려 와야 합니다.”
시범이 끝나자 다시 노래 부르며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노래가 멎고 한 엄마가 메모를 쑥스러운 듯 읽었다. 친구들은 박수를 치며 부추겼고 메모를 받은 엄마는 모델의 포즈를 취하며 회의장 안을 걸었다. 벌칙에 걸렸던 것이다.
영양클럽은 2004년 처음 생겼다. 첫 해 트라미 사업장은 약 160여 명의 엄마들에게 영양식 조리법과 자녀 양육법을 교육했다. 2006년부터는 아동케어센터(이하 케어센터)를 지어 그곳에서 5세 미만 아이들에게 영양식과 탁아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 트라미 사업장에는 총 33개의 영양클럽이 있고, 각 클럽마다 15명에서 30명의 어머니들이 모인다. 갓 결혼한 새댁부터 임산부와 5세 미만의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각 마을의 케어센터에 모여 아이 돌보는 법과 가족들의 건강식 조리법을 배운다. 엄마들은 아침마다 7시가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케어센터에 온다.
구엔 티 레(22)는 “전에는 아기를 맡길 데가 없어 아기를 데리고 밭에 갔다”며 “아기가 뙤약볕 아래에 있거나 비를 맞으니 쉽게 아팠는데, 지금은 케어센터에 아기를 맡길 수 있어 맘 놓고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가족들 수입도 늘었고 아이들이 늦은 아침, 점심, 이른 저녁까지 먹고 오고 영양식이라 건강도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 중에는 영양실조를 극복한 아기도 있었다. 보 티 투이(20)는 “겨우 두 살 된 아기가 날이 갈수록 살이 빠져 이상하게 여겼다”고 했다. 아기가 영양실조에 걸렸던 것이다. 봉사자의 몸무게 측정 덕분에 아기가 영양실조라는 것을 알고 케어센터로 데리고 왔다. “케어센터에서 비타민 먹이고 단백질, 설탕, 지방, 미네랄, 소금으로 영양식을 조리하는 법을 배웠어요. 센터와 집에서 8개월 동안 열심히 먹여서 아기가 정상체중으로 돌아왔어요.” 마음 고생했던 엄마는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고 아기들은 옆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월드비전 홍보팀 www.worldvision.or.kr│사진 = 유별남 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호(2011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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