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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ation]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의 변화가 필요해요”
입력 : 2011.06.17 16:3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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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 받는 알레미뚜 / 마을의 샘물이 충분치 않아 건설 중인 대형 물탱크
“책걸상이 없어서 아이들은 바닥에 앉아서 수업을 받았어요. 바닥에는 먼지진드기, 벼룩 등이 있어 아이들은 몸을 긁느라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죠. 교실은 물론 교무실에도 책상이 없었습니다.”
식수 사정도 비슷했다. 더러운 강물을 마셔야 했기 때문에 장티푸스와 아메바(대소변이 식수로 유입돼 생기는 수인성 질병, 장염의 일종으로 심할 경우 간도 손상된다) 등의 질병에 자주 걸렸다. 부모들은 물을 긷느라 일도 못할 정도였다. 후원 아동 페이사의 엄마인 타델루 씨는 “무거운 물통을 어깨에 메고 왕복 두 시간 정도 물을 길어 오면 힘이 다 빠져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화장실 역시 있을 리 만무했다. 대소변이 곳곳에 버려져 있었고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의 찢어진 발 사이로 병균이 침투했다.
7년 전의 노노가 그랬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마을 곳곳에서도 아이들은 마치 언제 꺾일지 모르는 꽃과 같았다. 하지만 그때까지였다. 2002년 10월 2000명의 마을 아이들이 월드비전의 결연 아동으로 등록됐다. 그리고 마을에도 아이들의 삶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공부도 하고 우유도 먹어요!” 아무도 후원이 뭔지 몰랐다. 말은 들었는데 도통 감이 오지 않는 표정이다. 에티오피아 시골에 사는 부모님들에게 ‘후원프로그램’이란 단어는 낯설기만 했고 ‘외국에 사는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우리 가족을 돕는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월드비전이 아이들을 잡아다 외국에 팔 거라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알레미뚜가 결연 아동이 된 건 여섯 살 때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월드비전 결연 담당자의 설명을 여러 번 듣고 고심 끝에 아이의 결연을 승낙했다. 그리고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보고 의심을 접었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원자가 보낸 선물과 편지를 받았다. 자신을 한국에 사는 군인이라고 소개한 박수민 후원자는 사진과 크레파스, 스케치북 그리고 장난감을 보내왔다. 어린 알레미뚜는 기뻐했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가족들도 기뻐했다. 아버지는 후원 아동 부모 대상 직업교육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가축 사육법, 야채, 사과 재배법 등을 배웠다. 그리고 2년 전에 월드비전으로부터 소를 받았다. 알레미뚜는 이후의 상황을 기억했다.
“아버지가 소를 받기 전에는 전통 빵인 인제라와 케따만 먹었어요. 반찬도 없었어요. 하지만 집에 소가 생기고 난 후부터 우유와 요구르트를 먹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좀 지나서 밥상에 채소와 감자, 토마토도 올라왔어요.”
아이 아버지는 “예전엔 끼니 걱정을 했는데 지금은 소 덕분에 한 달에 600비르(미화 20달러)를 더 법니다. 정부 공무원보다 더 많이 벌고 있죠. 믿어지세요? 가난한 농부였던 제가 이만큼 번다는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이렇게 혜택을 받은 가정이 알레미뚜네만은 아니다. 현재까지 30개 가정이 소를 받았고 248개 가정이 가축 사육 훈련을, 714개 가정이 채소 재배 교육을, 558개 가정이 과일 재배 교육을 받았다. 알레미뚜의 집에는 3개월마다 한 번씩 봉사자가 온다. 알레미뚜의 생활에 불편한 것은 없는지, 건강은 어떤지 확인하러 오는 것이다. 알레미뚜는 청각장애를 앓고 있지만 결연프로그램의 특별자금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알레미뚜는 웃으며 말한다. “후원은 제게 끊임없이 선물을 가져다주는 마법 상자예요.”
“전 대학 교육을 받았지만 교육 혜택을 받은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에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이곳에 고등학교도 없었고 낡은 교실에서 공부했어요. 하지만 제 동생은 새 교실에서 공부합니다. 때로는 동생이 부럽기도 해요.” 동생 에스크다르는 학교에 갔다고 했다. 학교에 가보니 깨끗한 교실에서 70명의 아이들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어요. 마을의 풍습이 바뀌었어요”노노에서는 건기때 식량난이 심각했다. 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장은 관개수로를 짓고 있다.<br>주니어 변호사 헤녹과 아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br>샘터에서 세수를 하는 워르키
아이 아버지가 이야기를 거든다. “보건소도 생겼어요. 예전엔 마을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들것에 환자를 뉘고 마을 남자들이 어깨에 짊어진 채 다섯 시간을 걸어갔습니다. 지금은 보건소가 생겨 25분이면 기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막내 압디도 식수시설이 생기기 전에 설사병에 걸린 적이 있었는데 보건소에서 무료로 치료제를 받아 나았습니다.”
워르키가 아팠던 동생들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후원자님은 우리를 모르잖아요. 하지만 우리를 도와주세요. 그리고 제가 할 수 없는 동생들의 치료까지 해주세요. 보이지 않는 엄마 같아요.”
후원자의 사랑 덕에 샘이 두 개나 생겼다. 하나는 마을에 생긴 깨끗한 샘물이고, 다른 하나는 워르키 마음에 솟아나는 사랑의 샘이다.
인프라 구축, 미래를 꿈꾸는 노노 지금 노노는 미래를 일구는 공사가 한창이다. 노노의 미래를 어깨에 짊어진 사업장 책임자 버하누씨가 말했다. “우리는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 마을의 인프라를 구축해 왔습니다. 이제 반을 왔습니다. 하지만 만족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학교와 교실들이 생길 겁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라서 10년 후에 이렇게 말하길 바랍니다. ‘그 때 노노가 있어 꿈을 꿀 수 있었다’라고.”
월드비전은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1억 명이 넘는 지구촌 이웃들과 함께 긴급구호, 지역개발, 옹호사업을 펼쳐가는 세계 최대의 국제구호개발기구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부인과 고아들을 돕기 위해 미국인 선교사 밥 피어스(Bob Pierce)와 한경직 목사가 설립, 한국에서 첫 사업을 시작한 월드비전은 전 세계 100여 국의 파트너십이 함께 하는 국제적인 구호개발 NGO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월드비전은 1991년까지 해외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오다 ‘사랑의 빵’, ‘기아체험 24시간’ 등의 자체적인 모금활동을 통해 도움을 주는 나라로 전환,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아동들을 돕고 있습니다. 월드비전 해외아동후원 02-784-2000 www.worldvision.or.kr [월드비전 홍보팀 www.worldvision.or.kr│사진 = 유별남 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호(2011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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