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 헤드라인을 보는 것이 망설여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자연 재해들과 희귀한 현상 소식을 접하고 있자면 재난 영화나 공상 과학 영화가 현실로 나타난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두려움이 앞선다. 사실 우리가 거대한 자연의 횡포를 막는 건 불가능하지만 이 모습을 관망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와인이다. 와인의 진정효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와인 속 엘라진산이라는 성분이 긴장을 35%까지 감소시켜 심신을 편안하게 한다. 게다가 이런 과학적 기능뿐만 아니라 지난 세월과 함께한 연륜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혹은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와인이 있다.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한 요즘 희망의 와인과 함께 기분을 새롭게 전환해보자.
샤또 샤스 스플린 Chateau Chasse Spleen
1. 샤또 샤스 스플린 / 2. 폴로져 뀌베 써 윈스턴 처칠
와인 애호가들의 필독서이자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도 소개된 바 있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이 와인을 마시고 슬픔을 떨쳐버려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뜻의 이름을 샤또에 헌정했다는 스토리가 유명하다.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와인 전문가 로버트 파커는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그랑크뤼 클라쎄 3등급에 필적할 만한 우수한 퀄리티를 지닌 와인이 샤또 샤스 스플린이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이웃집 웬수들>에서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과 헤어지면서 슬퍼하지 말고 힘내라며 건네주는 와인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샤또 샤스 스플린은 메독(Medoc) 지역에서 유일하게 전 공정에서 여과를 하지 않고 생산하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와인 제조를 하고 있다.
메독 지역의 그랑 크뤼 와인의 등급을 조정한다면 단연 1순위로 등급이 오를 수 있는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진한 붉은 빛으로 스파이시한 향신료와 민트, 나무 계열의 향과 스모키한 향이 돋보이는데, 매끈한 타닌과 부드럽게 잡힌 구조감이 특징이다. 괴롭고 힘들었던 과거를 잊고 새롭게 출발하고자 할 때, 그 시작을 함께 할 와인은 단연 샤또 샤스 스플린일 것이다.
샤또 샤스 스플린 레이블 문구
“마음 속 깊이 스며드는 이 서글픔은 무엇 때문인가?”
샤또 샤스 스플린 2004 레이블에 적혀 있는 19세기 프랑스 상징파 시인인 베를렌의 시구. Quelle est cette langueur. Qui penetre mon cœur? - Verlaine, Romances sans paroles.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이 서글픔은 무엇 때문인가?” 매년 삽입되는 시구는 바뀐다.
폴로져 뀌베 써 윈스턴 처칠 Pol Roger Cuvee Sir Winston Churchill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 처칠은 강인한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서 근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샴페인 사랑은 특별했는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아무리 위기와 재난이 계속된다고 해도 나에게는 언제나 샴페인 한 잔 마실 잠깐의 여유는 있다”며 낙관적인 자세를 지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는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패배했을 때 역시 샴페인이 필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승리를 축하할 뿐 아니라 실패했을 때에도 사기 진작을 위해 샴페인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이 말처럼 어려운 시기에 기운을 북 돋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샴페인이다.
폴로져 샴페인은 1944년 윈스턴 처칠이 어느 파티에서 처음 마셔보고 매료되어 폴로져 신봉자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 후 폴로져 가문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은 처칠은 자신의 경주마 이름을 당시 폴로져의 안주인 이름인 ‘오데트’로 지어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
노후에 건강이 악화돼도 매일 샴페인을 마시던 처칠을 위해 폴로져에서는 본래 병 사이즈인 750ml보다 적게 마실 것을 권장해 500ml 병을 별도로 제작해 그에게 보내기도 했다. 91세의 나이로 처칠이 세상을 떠나자 폴로져는 검은색 띠를 레이블에 부착해 그의 서거를 알리고 조의를 표했다.
1975년 처칠 사후 10주년을 기념해 샹파뉴 폴로져는 고인의 생전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탄탄한 구조감과 중후한 성숙미가 돋보이는 최고의 샹파뉴를 탄생시킴으로써 그와의 추억을 되살리기로 결심했다. 이 최고급 샹파뉴의 정확한 양조법은 아직까지도 외부에 누출되지 않고 가족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비밀이다. 블랜딩 비율은 처칠의 굴하지 않는 꿋꿋한 정신과 캐릭터를 반영했다는 수준에서만 알려져 있다.
산페드로 레이트 하비스트 San Pedro Late Harvest
산페드로 레이트 하비스트
레이트 하비스트(Late Harvest)는 포도의 당도가 더 높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늦게 수확한 포도로 만든 달콤한 와인을 말한다. 높은 당도와 기분 좋은 과일향을 지닌 화이트 와인으로 디저트와 함께 즐기기에 적합하다. 칠레의 대표 와이너리 산페드로에서 탄생한 산페드로 레이트 하비스트는 레이블의 나비 디자인이 독특하다.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제 곧 먼 여행을 떠날 사람과 함께 레이트 하비스트 와인을 마시면서 소원을 속삭이면 이루어진다는 나비 설화다. 특별한 일이 있거나 새롭게 시작하는, 행운을 기원하기 위한 자리에서 마시는 와인으로 유명하다.
산페드로 레이트 하비스트는 꿀, 파파야, 모과향, 열대과일이 가진 달콤한 향이 강하게 느껴지고 부드러운 피니시를 지닌 달콤한 맛으로 기분 좋은 와인이다. 특히나 여성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기호에 따라 레몬즙과 함께 스위트 와인에 레몬을 반으로 잘라 즙을 짜서 넣으면 손쉽게 칵테일을 즐길 수 있으며 얼음을 몇 조각 넣어 곁들여 시원하게 마시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트라피체 브로켈 Trapiche Broquel
안데스 산기슭 멘도사에 위치한 ‘트라피체’는 가장 자연적이면서도 깨끗한 환경 속에서 청정 와인을 생산해 낸다. 이곳의 포도나무는 따뜻하면서도 건조한 산악성 기후 속에서 안데스 산맥의 눈이 녹아 흐른 물을 흡수하며 자란다. 또한 건조한 공기는 곰팡이나 균의 서식을 막아 자연 친화적인 유기농법으로 포도 재배를 가능하게 한다. 아르헨티나, 특히 트라피체 와인은 그 청정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특징 외에도 여기서 생산하는 트라피체의 브로켈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 이름에 있다. 왕족이나 귀족 가문의 안녕을 기원하며 수호한다는 ‘칼’과 ‛방패’라는 뜻의 ‘브로켈’은 모진 풍파에서도 굳건히 지킬 수 있는 힘을 주는 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브로켈 까베르네 소비뇽, 브로켈 말벡 등 두가지 품종의 시리즈가 있다.
1. 브로켈 까베르네 소비뇽 / 2. 브로켈 말벡
까베르네 소비뇽은 2004년 영국과 일본,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 등 전 세계에서 베스트 아르헨티나 까베르네 소비뇽 트로피를 수상한 와인이기도 하다. 짙은 적색으로 검은 딸기류의 향을 지니고 있으며 부드러운 잔향이 오래 지속되는 특징을 지녔다. 브로켈 말벡은 초콜릿 느낌의 과일 아로마로 까베르네 소비뇽보다 달콤한 풀바디 와인이다. 사선으로 빈틈없이 병을 감싼 레이블 디자인이 병 안에 담긴 와인을 보호하는 든든한 후원자 같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와인이라면 ‘방패’라는 의미와 같이 어떠한 위기 상황도 슬기롭게 해결하도록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루피노 산떼다메 끼안티 클라시코 Ruffino Santedame Chianti Classico DOCG
루피노 산떼다메 끼안티 클라시코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탈리아 와인 브랜드 루피노의 산떼다메 끼안티 클라시코는 경건한 느낌을 지닌 와인이다. 산떼다메 포도원은 13세기에 작은 예배당이 있던 자리로 마렘마와 까말돌리 지역을 여행하던 순례자들의 안식처로 유명하다. 이 유명한 예배당을 아름다운 프레스코 레이블에 형상화해 옮겨 놓았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요한과 베드로의 모습 뒤로 보이는 작은 예배당이 바로 산떼다메 에스테이트다. 레이블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은 이 와인을 음미하는 내내 지속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키안티 지역 내에 황금 분지(Conca d’oro)로 불리는 카스텔리나 구릉지대인 이곳은 깨끗한 공기와 긴 일조량 덕에 가장 신선하고 잘 익은 산지오베제의 수확이 가능하다.그래서 파워풀하고 깊이감 있는 와인을 탄생시키기에 이상적이다. 키안티 지역 산지오베제 품종의 전형적인 향인 옅은 스파이시 향과 바이올렛, 달콤한 딸기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길고 부드러운 피니시가 특징이다.
미켈레 끼아를로의 ‘레 오르메’는 ‘발자취’란 뜻으로 미켈레 끼아를로가 처음 생산한 바르베라 와인에 대한 개인적인 열정과 애착을 담아낸 이름이 돋보인다. 미켈레 끼아를로 와인들 중 가장 많이 판매되는 와인으로 2008 빈티지부터 바르베라 다스티가 DOC에서 DOCG로 승격하는데 1등 공신을 한 와인이 바로 바르베라 다스티 레 오르메다.
특히 2006 빈티지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BIG4 와인 매체인 'Wine Spectator', 'Robert Parker', 'Decanter', 'Gambero Rosso'에서 동시에 ‘BEST BUY’로 선정됐다. 이는 이태리 와인 중 최초의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산딸기향와 민트향이 우아한 아로마를 형성하며 전체적으로 구조감이 잘 잡힌 드라이 와인이다. 출시된 다음 해부터 음용이 가능하고 빈티지에 따라 수년간 보관 및 숙성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