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vel] 인도가 흘린 한 방울의 눈물 ‘스리랑카’

    입력 : 2011.06.17 1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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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론티의 매력은 은은함이다. 커피처럼 강렬하지도, 전통차처럼 묽지도, 마시는 물처럼 밍밍하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여운은 길다. 인도의 눈물, 스리랑카의 다른 이름이 바로 실론이다. 그래서일까. 스리랑카 투어는 실론(홍차)의 향처럼 은은하다. 그 맛은, 즉각 와 닿지 않는다. 오래 우려낸 실론처럼 길게, 진하게, 잔잔하게 번진다. 끊을 수 없는 건 더 낭패다. 나른한 아침나절 실론티 한 잔이 생각나 듯 불쑥 스리랑카의 기억이 떠오른다. 기분 좋은 중독이다. 200m 바위산에 남은 왕조의 역사
    스리랑카 누와라엘리야
    스리랑카 누와라엘리야
    스리랑카 중독의 시작은 시기리야다. 아누라다푸라·폴론나루와·캔디 등의 고도(古都)가 역삼각형을 그리는 문화 삼각지의 첫 관문이다. 스리랑카의 중심지 콜롬보에서 동북쪽 166㎞ 지점. 새벽같이 차로 이동한다. 까무룩 잠이 들었을까. 갑자기 차 안이 소란스럽다. 눈을 뜨자마자 시선을 휘어잡는 웅장한 바위 하나. 놀랍다. 세계문화유산이면서 스리랑카 최고의 명소인 시기리야 록(Sigiriya Rock)이다. 명칭은 바위지만 이곳은 ‘성(城)’이다. 규모부터 상상초월이다. 해발 370m 지점에 나홀로 놓인 바위. 그 바위 높이가 또한 200m다. 그 위에 난공불락의 궁전을 건설한 거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 바위 위의 궁전이 세워진 시기는 기원전 5세기. 주인공은 카샤파 왕이다. 아버지(다투세나 왕)와 천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카샤파 왕은 배 다른 정실 소생 목갈라나와 왕위 경쟁을 벌인 끝에 부친을 살해한다. 그 뒤 아누라다푸라에서 시기리야로 궁전을 옮겨 버린 것. 흡사 호주 바위산 에이어스록 정상에 고풍스러운 유럽 성을 올려놓은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성의 형체가 없다. 그 터만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정상까지는 험한 길이다. 바위산 아래 궁전 정원과 석굴 사원을 지나면 암반 중턱에 놓인 철재 바닥을 타고 20여분을 더 올라야 마지막 성의 입구에 다다른다. 그 곳엔 장정 10명 정도 크기만한 거대한 사자 발톱이 궁전 입구를 지키고 있다. 그 살벌한 사잇길로 다시 철재 데크 계단을 따라 15분 쯤 오르면 마침내 정상이다. 지상 600m의 초대형 바윗돌 위. 아찔한 발아래가 세상이다. 부친을 죽인 뒤 쫓겨 온 카샤파는 공포심을 쫓기 위해 음주가무에 매달렸을 것이다. 배드민턴 코트만한 거대한 침실, 수영장, 무도장 등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은 고스란히 그 절박함을 간직하고 있다. 왕권에 눈먼 패륜은 결국 동생 목갈라나 군대가 몰려왔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어느 역사나 마찬가지다. 복수나 공포가 걸작을 만들어 내는 법이다.

    ‘부처님의 치아’를 보셨나요
    스리랑카 갈 바하라 사원의 누워있는 불상
    스리랑카 갈 바하라 사원의 누워있는 불상
    시기리야에서 탄 미니버스는 40분 정도를 달려 담불라에 들른 뒤 다시 남으로 3시간을 내리 달려 호반의 도시인 캔디에 닿는다. 부처의 치아 사리가 보관된 불치사(佛齒寺·달라다 말리가와)가 있다는 곳. 보지 않고 가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곳이다. 불치사는 스리랑카 내에서도 가장 신성한 곳이다. 매일 기도를 하려 몰려드는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곳엔 드레스 코드도 있다. 신발은 반드시 벗어야 하고 무릎 위로 오는 반바지도 입을 수 없다. 행사도 연일 이어진다. 매년 7~8월이면 화려한 장식을 한 코끼리가 등에 모조 불치를 싣고 행진하는 페라헤라 축제가 열린다.

    불치사를 찾는 이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평화롭고 경건하다. 평등을 상징하는 맨발과 흰 옷. 한 손에는 어김없이 부처께 바치는 꽃이 담긴 접시가 들려 있다. 불치사 한 가운데에 있는 치아함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하루 딱 세 번, 시간에 맞춰 공개된다. 그러니 치아함을 보려면 몇 달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몇 달, 길게는 1년을 넘게 기다려야 비로소 볼 수 있다는 부처님 치아 사리. 스리랑카인들은 이를 어깨 너머로 스쳐만 봐도 생애 최고의 영광으로 여긴다.

    불치사 바로 옆이 19세기 건설했다는 인공호수 캔디호다. 여기서 페라헤라 축제가 펼쳐진다. 이 기간 동안 캔디와 불치사는 영험함과 신성함을 느낄 수 있는 행사들로 들썩인다. 2주간 이어지는 열정이요, 신비다.

    ‘빛의 도시’ 누와라엘리야 이제야 실론티를 맛본다. 실론의 고향 땅에서 자란 바로 그 실론이다. 티는 스리랑카 여행의 알파고 오메가다. 영연방 시절, 스리랑카의 이름은 ‘실론’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972년에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란 뜻의 스리랑카로 바뀌었다.

    스리랑카 차의 원산지가 ‘빛의 도시’ 누와라엘리야다. 콜롬보 동쪽 100㎞ 지점, 실론섬 중앙 산지인 피두루탈라갈라산(2524m) 남서쪽 기슭이다. 이곳은 날씨부터 다르다. 해발 1830m인 고원 지대. 푹푹 찌는 폭염, 반팔을 입고도 덥다는 스리랑카의 기온은 이곳에서 가을로 둔갑한다. 평균 온도는 13~15도. 밤에는 난방이 필수다. 이곳에서 1박을 한 기자 역시 밤새 뜨끈뜨끈한 전기장판에 몸을 지졌을 정도. 사실 이 곳은 식민지 시절부터 영국인이 즐겨 찾던 고원 휴양지다. 아직도 이곳엔 제국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도심 곳곳엔 튜더와 조지아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 즐비하다. 분홍빛 벽돌이 어우러진 우체국이나 장미넝쿨로 가득 찬 정원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이곳 식물원과 차 농장 관광은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찻잎을 말리는 과정과 분리하는 모습, 실용적인 용기에 담는 과정까지 한자리에서 견학할 수 있고 직접 시음도 한다. 노벨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차를 노래한 곳도 여기다.

    어찌 네루다뿐이겠는가. 스리랑카 여행을 끝낸 지금도 기자에겐 스리랑카 해변의 바다와 실론의 향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여전히 끊을 수 없는, 아니 끊기 싫은 기분 좋은 중독이다.

    ■ How to get there? 교통 한국에서 스리랑카로 가려면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싱가포르까지 5시간30분 걸린다. 싱가포르항공이 싱가포르~스리랑카 간 직항편을 매일 운항한다. 3시간35분 정도 걸린다. 안전 스리랑카 내전이 종식되면서 주요 여행지의 안전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콜롬보는 여전히 경계가 삼엄하다. 기후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온이다. 콜롬보는 연평균 27도 정도. 화폐인 루피는 스리랑카 공항에서 환전하면 된다. [콜롬보, 캔디(스리랑카) = 신익수 / 매일경제 여행전문 기자 soo@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호(2011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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