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oking] “에이, 바지락칼국수가 뭐 이래”

    입력 : 2011.05.27 10: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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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에 소래포구에 가면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왕년의 명동처럼, 사람에 떠밀려 시장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어떤 친구는 혀를 차면서 “수학여행 가서 석굴암을 그렇게 보고 난 뒤 사람에 밀려서 무빙워크를 걷는 신세가 되는 건 처음일세”라고 했다. 날이 풀리면 변변한 좌판 평상도 얻지 못해 축대 가에 비닐을 깔고 앉아 회를 몇 점 먹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나마 썰물이 아니면 멀리서 고깃배들이 간혹 깃발을 펄럭이며 입항하는 게 구경거리다. 친구에게 “소래 가서 사람에 치여 구경도 어렵더라”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래에 가면 아무개 칼국수 집에 가보지 그래. 특히 봄이면 말이지.”

    객들이 몰리는 시장의 주 통로를 벗어난 곳에 그 칼국수 집이 있었다. 대충 합판으로 엮어 놓은 대문이 이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동행인의 입맛을 돋우게 했다.

    “자고로 문짝이 이렇게 엉성한 집일수록 맛 하나는 확실한 경우가 많아. 사람도, 식당도 허우대로 볼 일이 아니야.”

    술집이 아닌데도 둥그런 스테인리스 드럼통에서 국수를 먹는 것도 신기했다. 이른 점심에 주문을 넣자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식욕에 모두 침을 흘려야 했다. 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허름한 부엌-이랄 수도 없는 간이 요리대-에서 풍기는 냄새가 맛을 미리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른한 봄에 바닷가에서 바람을 불어보고, 우리들은 구미를 온통 끄집어내고야 마는 조개 삶는 냄새에 취해버린 것이었다. 지상의 모든 것들은 출산과 산란을 앞두면 살을 찌운다. 좋은 것을 먹어 자식에게 자양을 주려는 어미의 본능이다. 수컷 역시 자식을 위해 몸에 영양을 가득 갖게 된다. 봄의 조개가 최고의 맛을 몸 안에 들이는 이유다.

    아아, 그러나 한겨울에는 소래 아니라 서해안 어디 할애비라도 맛있는 바지락칼국수는 맛이 별로 없다. 겨울은 바지락이 진흙 속에 파묻혀 잠을 자는 시기이고, 이때는 먹이활동이 적어 살에 맛이 적다. 그러니 ‘에이, 바지락칼국수가 뭐 이래’ 하지 말아야 한다. 달이 지구를 돌듯, 썰물과 밀물이 들듯 바지락의 맛도 그렇게 자연의 일부여서 아무 때나 속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겨울 민어나 멍게를 먹고, 그 맛이 없다고 타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사람이 공들여 기르므로 철이 없어 보이는 쇠고기나 돼지고기조차 철이 있어 맛이 달라지는데 오직 바다에 몸을 맡기는 조개에 있어서랴.

    그 소래포구의 칼국수집은 바지락의 맛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기술을 가졌다. 바지락 살은 연해서 설핏 잘못 삶으면 제 맛을 다 버린다. 다른 고명이라고는 호박과 당근밖에 없다. 바지락 맛으로 그냥 승부를 건다. 바지락 하나만큼은 제대로 삶을 줄 아는 집인 것이다. 바지락이 열기를 만나 막 입을 벌리고 제 속의 국물을 토해내면 8할이 익었다. 연이어 속살이 촉촉하게 부풀어 오르면 젓가락을 들어도 된다는 신호다.

    나는 경상도 내륙 출신의 부모를 두고 서울에서 자라 바지락칼국수 맛을 몰랐다. 어른이 되어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 맛을 알게 됐다. 경상도에서는 건진국수라고 하여 콩가루를 섞어 반죽한 면을 소 사골 국물에 넣어 먹는다. 서울에서도 사골칼국수다. 어떤 서울의 미식가가 바지락칼국수는 칼국수 축에 못 낀다고 하는 글을 읽었을 때, 나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가 서해안 출신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칼국수의 새로운 경지를 엿보게 된 것이다. 봄에 바지락이 최선의 맛으로 바짝 터질 때 먹는 바지락칼국수 맛은 맛의 어떤 지극함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갓 캐내어 해감을 한 바지락으로 끓인 조개탕도 일품이지만 묘하게도 바지락과 탁한 국수 국물이 만나 절대적 상승작용을 일으킨다고나 할까. 면의 밀가루 성분으로 농도를 한껏 올린 국물이 진하게 입에 휘감기고 나면 연이어 바지락 특유의 농도 강한 감칠맛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친구의 바지락칼국수 맛있게 먹는 법 강의가 이어진다.

    “나는 김치 맛있는 칼국수 집이 최고라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김치 맛이 너무 달고 강해서 바지락이나 사골의 순한 맛을 다 삼켜버리니까 말일세.”

    그는 그래서 아무리 김치가 맛있어도 국수를 모두 먹고 국물까지 알뜰하게 마신 후 한 쪽, 헹구듯 입에 넣어 씹을 뿐이다. 그마저도 맛있게 먹은 국수의 여운을 즐기기 위해 생략할 때가 많다. 칼국수 한 그릇 먹는데 뭐 그렇게 기제사 지내듯 절차를 따지냐고 할지 모르겠다. 장담하건대 당신이 올봄에 소래포구든 저 서해안의 어느 포구든 칼국수를 한 그릇 시켜서 이 글을 떠올린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서해안에 꼭 굴이나 대하, 새조개와 주꾸미 축제처럼 요란하고 화려한 맛만 있는 것도 아니다. 소박하지만 진짜 서해안의 갯벌 맛을 다부지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칼국수가 아닌가 싶은 마음이다.

    서해안의 위 아래로 차를 달리면 봄에 바지락을 캐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널을 타고 힘들여 갯벌을 저어가는 아낙들을 보면 그 바지락 맛이 더 고마워진다. 가장 흔해서 제 이름값을 널리 알리지 못하는, 그렇지만 서해안의 진정한 보물은 갯벌 속의 수수한 바지락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박찬일 / 라꼼마 셰프 chanilpark@naver.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호(2011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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