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llery] 아득한 백색의 세계… 작가 이동엽

    입력 : 2011.05.27 10: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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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얗게 비워낸 캔버스 앞에 섰다. 저마다의 성격을 자랑하는 물감들의 존재도, 특정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어떤 구체적인 힌트도 없다. 습관적으로 내 시선은 키를 훌쩍 넘는 커다란 그림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작가의 표현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한다. 보통은 그림 속에 단서가 있다. 하지만 여기엔 아무것도 없다. 그저 보일 듯 말 듯 한 밝은 회색 그림자만이 이곳이 공간으로 통하고 있음을 은밀히 드러낼 뿐이다. 그것은 아주 작은 틈이며 다른 차원의 세계로 통하는 비밀스러운 경계처럼 보인다. 낯선 장소에 온 이방인처럼 나도 모르게 은밀한 회색 그림자에 이끌린다. 이 그림자를 더듬어 어떤 흔적을 찾아본다. 화가가 무언가를 그렸다면 분명히 거기엔 물감의 존재를 증명하는 작은 흔적이라도 있게 마련이니까. 부피와 질감을 가지는 그 어떤 것이라도. 그것은 이 무색무취의 낯설음을 누그러뜨려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림을 옆에서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그런 것은 없다. 붓 자국의 미세한 두께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 매끈한 표면이다. 바람마저 미끄러질 듯한 평면의 수평선이 하얗게 펼쳐져 있을 뿐.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면 환영처럼 캔버스의 평면이 시작도 끝도 없는 공간으로 변한다. 그림자 같기도 하고 그을음 같기도 한 따스한 회색의 경계는 다시 무한의 백색 공간과 만난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왈칵 안기고 싶은 존재의 커다란 품이 되기도, 그저 바람을 맞으며 멀리 날도록 펼쳐진 하늘로도 보인다. 운 좋게도 나는 비밀스러운 통로 앞에 서 있다. 등에 소름이 돋고 미풍이 불며 시간이 멈춘다. 투명하게 울리는 피아노 음과 음의 사이, 생각과 생각 사이, 먼지와 먼지 사이, 영원과 순간 사이. 신이 미처 닫지 못한 틈새의 정경은 아닐까.

    그의 작품은 매우 ‘미니멀’하다. 그러나 미니멀리즘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동엽 작가의 설명이다. 또한 그의 작품은 표현 기법상 평면주의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에 공간을 품고 있기에 평면주의의 틀에 매이지 않는다. 그보다 작가는 의식의 여백에 주목한다. 무한히 크고 따뜻한 화이트 공간에서 존재 본질의 자유로움과 평온을 만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과거의 어떤 미술사적 분류를 넘어선 결핍과 갈급의 ‘현대성’을 반증하는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정치적 이념을 담고 있는 작품이 아니면 작가적 의식과 소양이 부족한 결과로 치부되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인간 본질과 세상에 대한 철학 없이는 과잉과 혼돈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에 우리는 이제 본능적으로 그가 말하는 비움과 휴식의 고요한 메시지에 마음이 끌리고 마는 것이다. 그의 검던 머리카락은 하얀 이데아의 공간에서 싸우는 동안 희끗해졌다.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회색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그림 속 무채색과 보기 좋게 어울린다.

    홍익대학교 미술교육과 출신인 그는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천재로 인정받는 작가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추상화가인 이우환(75)씨가 단독 심사했던 제1회 앙데팡당전에서 회화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당시 일본을 비롯해 한국 미술계에 각종 담론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의 발상은 이론보다는 직감에서 비롯됐으며 독특하고 새로웠다. 당시 서양 모더니즘의 유행에 편승하기 위해 동양적인 소재로 철학 없는 흉내 내기가 난무했던 한국 미술계에 적잖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20대의 나이에 뛰어난 발상과 주목할 만한 새로움으로 일본 등 외부에서 더욱 주목받았던 천재였지만 당시 우리나라 미술계의 전반적 수용의 한계, 폐결핵과 가난,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 등으로 격변기였던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양지에서 점차 밀려나 버렸다. 같은 세대의 동기들이 미술계에서 유명해지는 오랜 시간 동안 그는 꾸준히 추운 지하 작업실에서 고통과 싸우며 꼿꼿이 비움의 그림을 말없이 그려냈다.

    그의 가치는 2002년에 이르러서야 재조명된다. 오상길 미술 평론가가 <한국 현대미술 다시 읽기>에서 이동엽 작가를 다루면서다. 이 책을 통해 오상길은 1970년대 당시의 우리나라 미술계 상황에서 그의 작품이 어떤 주체적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었는지 풀어낸다. 일반인들에게 그는 여전히 생소한 작가다. 그렇지만 미술계에서는 점차 그의 작품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최근 프랑스와 미국의 유명 미술관 등에서 조용하지만 발 빠르게 이동엽 작가의 작품을 사들이고 있다. 실제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런던 대영박물관 내부를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건축디자이너 장 미셸 빌모트(Jean-Michel Wilmotte) 또한 이동엽의 작품 수 점을 구매했다. 빌모트는 방한 당시 부산 시립미술관의 작품들을 관람한 후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이동엽의 작품뿐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난로를 지폈는데도 이동엽 작가의 지하 작업실은 계속해서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올 정도로 춥다. 작업실뿐만이 아니다. 누구라도 이동엽 작가의 삶을 본다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세상의 무심함 속에서, 이렇게 꽁꽁 얼어붙은 곳에서, 수십 년 동안 하얀 그림만 그리며 단절된 삶을 살았다는 것은 지독한 고통을 동반하는 수행이 아닌가?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는 대답한다. “흰 피. 마치 정신의 하얀 피 같았어요. 세속에 살면서 죽음과 싸우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건 내가 가진 단 하나의 확신이니까.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니까. 그래서 폐기 처분할 수는 없었어요. 말하자면 이것은, 나와 세기와의 대결입니다.” 작가 이동엽은 21세기의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그는 날아야 할 때를 알고 있다. 자신이 가진 날개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분명히 알고있다. 그것은 자신을 비워낸 ‘여백’이다. 우리의 창조적 근본을 향한 세계다.

    화면 앞에서 눈부신 공간을 다시금 바라본다. 이 공간은 이동엽 작가가 우리에게 날아가라고 펼쳐 보인 공간이다. 조용하게, 겸손하게, 더 비워내고, 더 자유로워지라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스스로의 영혼 안에 숨은 절대적인 평화의 공간을 만나보라고. 그것은 아마 고독한 비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영혼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어 너무 추운 여행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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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동엽 작가는 누구 이동엽(65)은 홍익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72년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한 제1회 앙데팡당전에서 평면일석상(평면회화 부문 1등상)을 수상하며 20대 초반의 나이로 당시 한국 화단에 반향을 일으켰다. 1975년 일본 도쿄화랑의 초대를 받아 권영우, 박서보, 서승원, 허황 작가와 함께 ‘한국 5인 작가의 5가지 흰색’전을 선보였고, 당시 한국 미술계를 주도했던 단색화의 선두주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1974년 제6회 Cagness 국제회화제 공동국가상(프랑스), 1978년 한국일보사 주최의 우수프론티어상, 1980년 제7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일본과 미국, 프랑스 등지에서 전시를 가졌고,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포스코미술관, 성곡미술관, 동경 국립근대미술관 등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박보미 / 아트 칼럼니스트·봄봄 대표 bomi1020@empal.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호(2011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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