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걷기 프로젝트] 쉼표 같은 걸음…광화문 연가의 덕수궁 둘레길

    입력 : 2011.05.20 16:42:28

  • 사진설명
    차들의 행렬이 늘어선다. 바삐 들고 난다. 도심의 대로다. 서울의 중심이다. 태평로는 이대로 광화문까지 내닫을 것이다. 덕수궁은 그 곁에서 슬며시 대한문 옆으로 돌담을 내고 사람의 걸음을 이끈다. 곧 정동제일교회 사거리에 이르겠지. 샛길로 접어들듯 미국대사관저 입구의 바리케이드를 지나 덕수초등학교를 향하겠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거쳐서는 다시 대한문에 이르려나. 오롯하지만 오롯할 수 없는 역사의 돌담, 덕수궁의 둘레길이다. 어찌 정동길이라 에둘러 말하리. 한적한 걸음이 그 절절한 사연들을 일일이 눌러 담는다. 눈 내린 돌담길 곁으로
    덕수궁 대한문 / 이영훈 노래비
    덕수궁 대한문 / 이영훈 노래비
    수문군들이 암호를 묻고 답하며 군호응대한다. 열쇠가 들어 있는 약시함을 인계하므로 초엄이다. 부신을 확인하고 수문장이 순장패를 인계한다. 중엄이다. 수문군들이 교대한다. 삼엄이다. 비로소 교대의식이 끝난다. 예필이다. 대한문 앞에서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오후 3시30분 세 차례에 걸쳐 왕궁수문장교대의식이 열린다. 걷기의 출발 시간으로 삼으면 좋다. 덕수궁 돌담길로 들어서는 마음의 의식이다. 본래는 22m 앞선 자리였어야 한다. 대한문은 1960년대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뒤로 물러났다. 그나마 1970년에야 돌담과 하나로 이어졌다. 그 이름인들. 1906년 대안문(大安門)은 대한문(大漢門)으로 1907년 경운궁(慶運宮)은 덕수궁(德壽宮)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에 관한 설들은 많지만 그 시점이 일사늑약(1905) 이듬해이고 보면야…. 역사의 상흔을 뒤로 하고 돌담을 따라 걷는다. 차도보다 넓은 인도다. 이내 목공예가 최병훈의 아트벤치다. 반듯한 사고석 돌담 아래 나선의 유형이다. 잠깐의 쉼들이 머물다 다시 걷는다. 길동무는 가로수다.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든다지. 밤에는 조명이 돌담에 어려 아름답다. 하지만 덕수궁 돌담길의 아련한 사연은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는’ 겨울에 더욱 짙다. 길 위의 어떤 표정도 여태껏 ‘연인들의 이별’이 깃든다는 낭설을 집어삼키지는 못했다. 아마도 가정법원이 있었던 탓이리라. 그리고 <광화문 연가>의 탓이리라. 타박타박 내디딘 걸음이 5분 남짓이었을까. 정동제일교회 앞 사거리에 다다른다. 가정법원은 이제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변모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가 됐다지만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사거리 한 귀퉁이에는 <광화문 연가>를 만든 이영훈의 노래비가 숨은 그림처럼 자리한다. 귀에 익은 이문세의 노래는 대게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지. 채 1㎡도 되지 않은 자리는 덕수궁 돌담길에서 가장 명징하다. 그의 얼굴이 새겨진 반석 위에 마이크 하나가 전부다. 달랑하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당신의 노래비를 세웁니다’는 말처럼 그는 우리의 일상 곁에 잠들었다. 그의 자취를 따라 걸음을 낸다. 이화여고 방면이 아니라 미국대사관저 방면이다.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를 향하는 길이다. 미국대사관저를 경비하는 바리케이드와 경찰들이 섰다만 길을 막아서지는 않는다. 덕수궁 돌담길도 나란하다. 미국대사관저의 담이 아니라면 사진촬영도 문제없다. 오롯한 덕수궁 돌담길의 멋이 살아난다. 정동길과는 다른 운치다. 이전까지의 덕수궁 돌담 구간과도 다르다. 한적하다. 느린 걸음을 내기에 좋다. 반대편의 미국대사관저 돌담의 이끼도 도드라진다. 돌담의 끝에는 나무 한 그루가 담장 밖으로 손을 뻗는다. 길을 막아섬인가? 작별의 인사련가? 아니다. 덕수궁의 잘려 나간 자리의 표식이 맞겠다. 덕수궁의 면적은 지금의 2~3배에 가까웠다. 관통도로가 나며 잘려나갔고 지금처럼 축소됐다. 지난 역사를 되새기며 돌아온 길을 바라본다. 말없는 돌담이 키를 낮춰 이어진다.

    고스란히 살아 있는 역사의 숨소리
    사진설명
    고갯마루에서 내리막 따라 구세군중앙회관과 덕수초등학교가 차례로 나온다. 구세군중앙회관은 1926년에 지어진 근대의 건축이다. 길의 볼거리다. 덕수초등학교를 지나서는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동화면세점 뒷길이다. 맛집이 많다. 거기서 다시 우측 오르막으로 접어들면 스폰지하우스 광화문과 조선일보 정동 본관 사이로 난 서학당길이다. 덕수궁 돌담길이 예스런 풍모를 가졌다면 서학당길은 도심의 아담한 뒷켠이다. 낮게 굴곡지어진 경사로는 사람의 걸음을 적당히 밀고 당긴다. 좁은 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도 맵시를 더한다. 욕심 없이 소박한 걸음으로 지나기에 그만이다. 갤러리나 카페가 있어 잠깐 쉬어가기에도 좋다. 그 끝자락은 다시 태평로에 가닿는다. 서울시의회와 성공회성당 사이다. 서울시의회는 구 부민관(府民館)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5년에 세워진 극장이다. 부민관 의거가 있었고 광복 후에는 제헌국회가 있었고, 장군의 아들 김두환이 똥물을 투척하기도 한 역사의 장소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흔적이 겹겹이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자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자성당
    맞은편의 성공회성당(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건축의 독특한 모양새만으로도 충분히 눈길을 끈다. 주황색 지붕 아래 직선과 곡선이 조화롭다. 1926년 축성식을 가졌으나 비용이 부족해, 1996년에야 설계했던 대로 ‘十’모양으로 완공했다. 서울에서도 그 양식이 독특해 주목받는다. 성공회성당은 매주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오전 11시, 오후 4시 두 차례 성당을 개방한다. 입구에서 안내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예배당 내부를 안내받을 수 있다. 성당 뒤쪽에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진원지 비와 경운궁 양이재도 있다. 이 또한 우리 역사의 한 장이다. 종교와 무관하게 성스러운 걸음이다. 성당의 남쪽 문은 다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덕수궁의 북쪽 돌담과 접한다. 태평로에서 제일화재 세실극장을 지나 영국대사관에 이르는 길이다. 비로소 덕수궁의 남쪽 돌담을 출발해 북쪽 돌담에 이른 것이다. 한 시간 남짓한 걸음이다. 거창한 산책이나 걷기는 아닐 테지만 도심에 숨은 길의 발견이다. 쉼표 같은 걸음이다. 느긋하고 다붓하다. 하지만 또 가슴 알알한 이야기들이 길의 상흔을 다독인다. 정동길이 아닌 오롯한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의 둘레를 걷는 일이다.

    [박상준 / 여행작가·<오 멋진 서울> 저자 seepark1@naver.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호(2011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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