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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러닝
입력 : 2024.02.29 15: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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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맞아 3월에만 마라톤대회 20여개
SNS타고 전국 러닝크루 “헤쳐 모여”
여의나루역은 ‘러너스테이션’ 탈바꿈“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달리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하루키는 스스로를 소설가이자 마라토너라고 소개한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 왔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꽤 진지한 러너다. 수십 년간 매일 달리기를 했고 목표를 조금씩 높여가며 달성하려고 노력했다. 20여 회가 넘는 풀코스 완주가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찬바람 불던 겨울 지나 꽃피는 계절이 돌아오니 다시금, 달리기 열풍이 불고 있다. 하루키처럼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라 말하며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이는” 이들이 무리 지어 러닝에 나서고 있다.
벚꽃 피는 계절, 다시 달리는 러닝크루6년 차 직장인 김미성 씨(27)는 직장생활 2년째에 접어든 2020년 2월 처음 러닝을 시작했다. 잦은 야근에 몸이 상했고 사회생활의 스트레스에 마음까지 지쳐가고 있었다.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마음 놓고 피트니스클럽이나 요가센터에 등록할 수 없었어요. SNS를 통해 러닝크루를 알게 됐는데 퇴근 후 시간 맞는 이들이 모여 한강변을 달립니다. 무엇보다 서로 할 수 있다고 응원하며 뛰어요. 부정보다 긍정의 마인드가 앞선다는 게 뛰는 이유죠.”
직장인 러닝크루에서 활동하는 김 씨가 한 번에 달리는 거리는 약 10㎞. 아직 마라톤 풀코스 경험이 없는 그는 3월 말 열리는 대회를 목표로 조금씩 거리를 늘리고 있다.
“꼭 풀코스에 도전하려고 뛰는 건 아닌데, 예능프로에서 기안84가 완주하는 걸 보고 호기심이 생겼어요. 나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대회 등록까지 하게 됐습니다.”
비단 김 씨뿐만이 아니다. 비슷한 이유로 달리기 시작한 MZ세대의 러닝 인구가 늘고 있다. 한 러닝화 브랜드 관계자는 “마라톤대회가 열리면 전체 참가자 중 2030세대가 절반을 넘어설 만큼 젊은 러너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함께 달리는 러닝크루 문화가 젊은 세대의 달리기 열풍을 주도했다”며 “같이 모여 혼자 뛰고 뒤풀이 없이 헤어지는 게 MZ세대에겐 익숙한 문화”라고 덧붙였다.
러닝크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하는 운동모임이다. 2010년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처음 생겨난 개념인데, 학교나 지역, 직장 등을 중심으로 구성돼 기존 동호회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다. SNS로 시간과 장소를 공지하고 시간 맞는 이들이 모이면 몸풀기 운동부터 달리기, 마무리 운동까지 함께한 후 각자의 일상으로 복귀한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해도 누구 하나 상관하는 이가 없다. 김미성 씨는 “사회생활의 연장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며 “하지만 서로 필요할 경우 소통하며 봉사활동에 나서거나 때로 크루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전국에 퍼져 있는 러닝크루들이 선호하는 코스는 강변과 운동장, 그리고 둘레길 등이다. 서울은 한강변 도로와 상암동 하늘공원순환도로, 남산순환도로 등이 달리기 명소로 꼽힌다. 오는 4월에는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일대가 러닝을 테마로 한 ‘러너스테이션’으로 탈바꿈한다. 서울시의 첫 번째 ‘지하철 역사 혁신 프로젝트’로 한강을 찾은 이들 누구나 쉽고 편하게 달릴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물품 보관함과 탈의실 등 편의시설부터 러닝 관련 정보 교환, 수준별 디지털 코칭 영상을 볼 수 있는 교육 공간 등이 자리했다.
지하철 역사 혁신 프로젝트 중 ‘러너스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될 여의나루역 콘셉트. 서울시는 전국 곳곳에서 활동 중인 78개 러닝크루와 함께 ‘릴레이 기부 챌린지 런(챌린지 런)’도 진행 중이다. 2월 13일 오후 7시부터 4월 30일까지 78일간 진행되는 챌린지 런에는 ‘WAUSAN30 러닝크루’ ‘SRC 러닝크루’ ‘240크루(제주도)’ ‘UIRC 러닝크루(의정부)’ ‘러니스(일산)’ 등 다양한 팀이 순차적으로 참여한다. 러닝에 참여한 크루가 다음 크루를 지정해 기부런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코스는 여의나루역 이벤트광장을 출발해 광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8.4㎞ 구간. 챌린지 참여인원 1명 당 840원이 적립되고 누적거리를 기준으로 1㎞당 100원씩 LG전자에서 기부금을 제공한다. 기부금은 장애인과 운동약자 등을 위한 생활체육프로그램 운영에 활용될 예정이다.
나만의 달리기 조력자, 러닝앱오롯이 홀로 달리는 상황을 즐긴다면 러닝앱이 좋은 친구다. ‘런데이’는 달리기 초보를 위한 앱이다.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달릴 때 페이스 조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보이스 코치 기능이 있다. 특히 ‘30분 달리기 도전’ 프로그램이 널리 알려져 있다. ‘맵마이런’은 경로 기록에 유용한 앱이다. 거리, 페이스, 고도 등을 추적하고 사용자들끼리 공유할 수도 있다. 유료 코칭 기능을 사용하면 보폭, 지면 접촉 시간, 착지각도, 발이 땅에 닿는 횟수 등 세밀한 데이터 측정과 분석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뉴욕마라톤대회 ‘스트라바’는 자신의 수준을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앱이다. 이 앱의 코스 기록 메뉴에선 같은 코스를 달린 이들의 기록을 순위별로 확인할 수 있다. 코스 추천 기능을 사용하면 자신이 있는 장소의 주변 코스를 추천받을 수 있다. 여행 시 별다른 검색 없이 주변 코스를 확인하고 달릴 수 있다. ‘나이키 런 클럽’은 게임하듯 달릴 수 있는 앱이다. 누적 거리에 따라 레벨업이 진행되고 특정 목표를 달성하며 다양한 배지를 획득할 수 있다. 사용자들의 인증샷을 보며 서로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나는 어떤 러너?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과연 뛰기 위한 준비 단계 중 첫번째로 어떤 점이 선행돼야 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우선 자신의 상황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쉽게 말하면 자신이 어떤 러너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초보자를 위해 달리기와 걷기를 번갈아하는 ‘런-워크(Run-Walk) 프로그램’을 창시한 제프 갤러웨이는 5단계로 러너를 구분했다. 우선 ‘초보자(Beginner)’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는 사람, ‘조거(Jogger)’는 달리는 매력에 빠져 거의 매일 달리기를 해야 하는 상태, ‘경쟁자(Competitor)’는 남보다 빨리 달리고 싶고,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은 경쟁심에 강박 관념까지 지니게 된 상태, ‘선수(Athlete)’는 자신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단계, ‘러너(Runner)’는 달리기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단계다.
러너이자 정형외과 전문의 남혁우 박사는 저서 ‘달리기의 모든 것’(매일경제신문사)에서 “알맞은 운동 강도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려면 마땅한 기준이 필요한데 최대심박 수의 70~80% 강도가 적당하다”고 조언한다. 여기서 최대심박수란 운동 강도가 높아져도 더 이상 오르지 않는 심박수다. 천천히 뛰다가 전력을 다해 달려도 더는 올라가지 않는 심박수의 마지노선이다. 남 박사는 “이러한 강도의 운동은 산소를 이용해 몸속에 축적된 지방을 연소하고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된다”며 “체중 감량에 달리기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다”고 덧붙였다.
러닝화 시장도 들썩달리기는 여타 다른 운동과 달리 많은 장비가 필요치 않다. 굳이 장비라고 하면 달랑 운동화 하나뿐이다. 그런데 러닝화라고 통칭하는 이 운동화, 역할이 만만치 않다. 체중을 견뎌내는 쿠션부터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반발력까지 기능이 천차만별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이들부터 러닝이 취미인 이들까지 달리기 인구가 최대 1000만명까지 늘었다”며 “엔데믹 이후 오프라인 행사와 마라톤 대회가 늘어나며 러닝화 시장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나이키 ‘알파플라이3’ 나이키가 공개한 새로운 러닝화 ‘알파플라이 3’는 최근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마라톤 세계기록보유자 엘리우드 킵초게의 ‘알파플라이 넥스트% 프로토 타입’에서 진화했다. 나이키 측은 “러너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는 그대로 유지하고 가벼움, 안정성, 편안함, 추진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집중했다”며 “이를 위해 나이키 에어줌을 탑재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마라토너들이 선호하는 하이-스택 줌×폼 미드솔이 적용돼 마라톤 시작부터 후반부까지 긴 거리를 달릴 때 가벼운 쿠셔닝을 경험할 수 있다. 역대 알파플라이 모델 중 가장 가벼운 러닝화다.
지난해 뉴욕마라톤에서 우승한 셰런 로케디와 언더아머의 ‘UA 플로우 벨로시트 엘리트’ 지난해 11월 열린 뉴욕마라톤 대회에서 여자부 우승을 차지한 셰런 로케디의 러닝화는 언더아머의 ‘UA 플로우 벨로시트 엘리트’ 시제품이었다. 언더아머 측은 “이 러닝화는 푹신한 미드솔 폼 덕분에 걸을 때마다 더 많은 에너지가 반환돼 폭발적인 추진력을 선사한다”며 “WARP 2.0 어퍼가 적용돼 통기성이 뛰어난 것도 특징이며 경쾌하고 매끄러운 러닝을 지원해 신축성과 충격 완화 기능을 모두 갖춘 운동화를 찾는 러너에게 적합하다”고 소개했다. 로케디가 착용한 ‘UA플로우 벨로시티 엘리트’는 오는 3월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의 ‘2000s Running’ 컬렉션 오즈밀렌(Ozmillen) 아디다스 오리지널스는 최근 ‘2000s Running’ 컬렉션을 선보였다. 오즈밀렌(Ozmillen), 아디스타 쿠션(Adistar Cushion), 리스폰스 CL(Response CL) 등 세 가지 디자인으로 구성된 이번 컬렉션은 2000년대와 현재를 가로지른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을 담아냈다.
[안재형 기자 ·사진 각 브랜드]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