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누는 여러 기준 가운데 하나로 통계를 들 수 있다. 선진국일수록 충실하고 정확한 통계를 생산해낸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은 ‘통계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하루에도 수십수백 가지 통계 수치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집계하지 않는 통계가 있다. 바로 미국 경찰의 총기 사용(Police Shootings)과 관련된 통계다. 1930년대 이후 미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이 집대성되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범죄 신고 양식에도 경찰관이 연루된 총기 사건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래서 현재 미국에서는 매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경찰관이 쏜 총에 다치고 목숨을 잃는지에 대한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편한 진실에 대해 그 누구도 접근하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는 약 1만8000개의 법 집행기관(law enforcement agencies)들이 활동하고 있다. FBI 같은 연방조직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방 자치단체에 소속된 지역 경찰들이다. 이 가운데 1만 곳 정도가 경찰의 총기사용 사건에 대해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나머지 8000곳은 아예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NYPD(뉴욕경찰), CPD(시카고), 필라델피아 경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실 미국 경찰의 총기 사건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 데는 나름대로 복잡한 사연이 있다. 지역경찰 당국뿐만 아니라 경찰 노조들이 총기 사용 기록 보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탓이다. 경찰의 비상식적인 총기 사용이 드러나면 해당 경찰관이 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 경찰 당국도 시민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게 된다. 게다가 요즘처럼 여론이 안 좋을 때는 퍼거슨 시가 당했던 것처럼 FBI로부터 ‘민권 조사’라는 명목으로 경찰 업무 전반에 대한 감사를 받을 수도 있다.
이 밖에 중앙정부가 지역경찰 업무와 관련된 통계를 작성하는 것을 ‘관할권 침해’로 여기는 문화도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역 경찰에 문제가 있다면 해당 지자체 스스로 해결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8월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을 백인 경찰관이 사살해 촉발된 ‘퍼거슨 사태’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유사한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지난 3월 위스콘신 주 매디슨에서 비무장 흑인 청년 토니 로빈슨(19)이 백인 경찰관의 총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지난 4월 7일에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노스찰스턴에서 검문 도중 겁에 질려 달아나던 흑인 남성 월터 스콧(50)이 경찰관이 쏜 총에 목숨을 잃었다. 특히 스콧의 경우에는 백인 경찰관이 등 뒤에서 8발을 난사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힌 동영상이 공개돼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결국 변화의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최근 미국 워싱턴DC 소재 조지타운 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지난 여름 퍼거슨 시에서 인종 폭동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참모들에게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경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지에 대한 통계 자료를 요청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이와 관련된 추세와 정보였지만 결국 얻을 수 없었다”며 FBI 범죄 정보 수집 체계에 대한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에릭 홀더 미국 법무장관도 경찰 총기사용 통계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는 지난 1월 마틴 루터킹 목사 추도식에 참석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경찰의 총기 사용 때문에 발생하는 부상 및 사망사건에 대한 기록을 보존해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다”며 “나 역시 관련 당국자들에게 개선책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구금중 사망자 보고 법안’(Death in Custody Reporting Act)을 개정하기도 했다. 연방정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는 지역 경찰들은 구금중 사망하는 피의자에 대한 내용을 연방정부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것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천방지축’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지역 경찰을 견제하는 장치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전문가들은 경찰 총기사용 통계가 제대로 마련되려면 앞으로 수년이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유일한 방법은 연방법을 별도로 제정해 경찰의 총기 사건을 FBI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강제하는 것뿐이라는 충고다. 연방 의회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경찰당국, 경찰노조 등을 일일이 설득하고 필요한 예산이 마련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 작성의 필요성이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는 반응이다. 경찰 총기 사용에 대한 통계가 필요한 이유는 정확한 실상을 파악해야 필요한 개선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이유로 경찰이 총을 사용하며 어떻게 사후 처리가 이뤄지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다. 현재 미국에선 경찰의 공정한 총기 사용을 위해 보디 카메라 의무화,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설치, 경찰관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제도 개혁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찰 총기 사용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