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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교수의 중동 오디세이] (16) 큰 손으로 부상하는 이슬람금융
입력 : 2015.04.03 15: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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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쿠크 열풍이 전 세계 금융계의 화두라고 할 수도 있다. “이슬람 금융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류로 부상한 분위기”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14년 5월 보도했을 정도다.
약 2조달러 이슬람금융 세계적 금융허브가 이슬람금융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허브의 지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급성장하는 이슬람금융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10여 년간의 고유가로 중동의 오일머니가 그 위력을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금융시장은 2014년 2조달러를 넘어섰다. 2006년에는 5000억달러에 미치지 못했지만, 8년간 4배 이상 성장했다. 중동의 경제 및 금융전문 언론 자우야(Zawya)는 2018년까지 이슬람 금융시장이 3조4000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도했다.
금융기관과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슬람 금융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동 및 이슬람 국가들이 대규모 기간산업과 부동산 개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2011년 ‘아랍의 봄’ 시민혁명 이후 불안을 느낀 정부는 국민 복지를 위한 간접시설 확충에 더 많은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정부의 자금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형 헤지펀드를 포함한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수쿠크 투자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국제 정치 역학도 이슬람금융의 확대를 돕고 있다. 내전과 제재를 겪고 있는 리비아, 시리아, 이란, 이라크 등 중동의 자본이 자국에서 이탈해 이슬람금융으로 몰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유럽의 자금줄을 상실한 러시아도 최근 이슬람금융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두바이 금 시장
그동안 대부분의 수쿠크는 이슬람국가가 현지 투자자를 대상으로 자국 통화로 발행했다. 그러나 이슬람 금융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자금조달 수단으로 수쿠크를 선택하는 정부와 기업이 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이슬람국가들 외에 영국 등 서방 국가도 이슬람 금융시장 선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2년 첫 수쿠크를 발행한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리적·문화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수쿠크를 중심으로 이슬람 금융을 핵심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면세 등의 다양한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영국을 시작으로 서방과 아시아 국가가 수쿠크를 발행하면서 말레이시아의 위상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상황이다.
수표의 어원, 수쿠크 수쿠크는 이슬람법에 따르는 채권이다. 이슬람법 샤리아(Shariah)는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한다. 이를 기생행위 혹은 부당이득으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이자 대신 배당금으로 수익을 배분하는 금융 기법이 바로 수쿠크 채권이다. 그러나 현대적 일반 채권하고는 다른 점이 있다. 현재 통용되는 일반채권은 정부나 기업이 거액을 일시에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차용증서다. 계약 시점에서 원금과 이자 지급을 약정한다. 그러나 수쿠크는 단순한 차용증서가 아니라 투자금을 특정사업에 투자한 뒤 발생하는 수익을 배당금 형태로 지급하는 것이다. 물론 이슬람법에 반하는 술, 돼지고기, 도박 등에 대한 투자는 금지된다.
수쿠크는 이미 중세 이슬람 국가에서도 발행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법을 우회하면서 자금을 활용하기 위해 고안된 금융기법이다. 돈을 받고 그 대가로 돈을 주면 이자이기 때문에 중간에 사업을 끼어 넣어 투자와 이윤분배 개념으로 포장한 것이다. 이 거래에서 등장한 계약 혹은 계약서를 이슬람법에서 사크(Sakk)라고 칭한다. 수쿠크는 사크의 복수다. 사크의 페르시어 발음이 체크(Chek)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수표(Cheque)의 어원이다.
두바이 내셔널 뱅크 사옥, 두바이 이슬람은행, 두바이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 내 금 자판기
거래형태별로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이자라 수쿠크다. 이자라 수쿠크는 부동산 등의 자산을 특수목적회사(SPV)에 임대한 후, 여기서 나오는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한다. 실물자산을 담보로 거래하는 것이다. 원금은 실물자산을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재매입하게 만들거나 일반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회수한다. 다른 한 가지의 거래방식은 무라바하 수쿠크다. 일종의 외상거래다. 증권 인수대금으로 취득한 자산을 차입자에게 전매하고, 전매차익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형태다. 주로 상품을 이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수쿠크는 고정적인 이자개념 없이 건물 등 기초자산의 처분 결과에 따라 수익을 나눠 갖는다. 시장 상황이 나빠져 투자자산의 가격이 하락하면 수익률이 뚝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투자은행들이 지난 10여 년간의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수익률 변동폭이 우려만큼 크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커졌다. 실물자산을 담보로 발행되기 때문에 투자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수익률은 미 국채 등 안전자산에 비해 높다. 보통 2%가 넘는다.
간과할 수 없는 블루오션 금융 선진국들이 수쿠크에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중동의 막대한 자분을 유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중동의 국부펀드 규모만 해도 약 2조달러에 달한다. 국가별 국부펀드 규모 상위 10개 국가 중 4개가 중동에 있다. 1000억달러 이상 운영하는 소위 슈퍼 세븐(Super Seven) 중 4개가 UAE,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그리고 카타르 국부펀드다. 지난 10년간 중동 국가가 미국과 유럽에 투자한 금액이 각각 5600억 그리고 2700억달러다. 여기에 금융시장이 글로벌화하면서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목적도 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에서 나타났듯이 한 국가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금의 다변화에 나선 것이고 그 주요 대상이 오일 달러다. 유럽 국가는 물론 남아공, 일본, 홍콩, 호주 등도 세법 등 국내법을 고쳐 오일 달러의 유치를 시작했다. 우리 정부도 이슬람금융 도입을 시도했었다. 자금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중동진출 시 다양한 금융기법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기획재정부는 2009년 수쿠크의 수익도 일반 외화표시채권처럼 이자소득으로 간주해 법인세를 면제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수쿠크 채권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자산의 매매’가 이루어지고, 특수목적회사라는 ‘법인’이 등장함에 따라 취득세, 등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의 세금이 함께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계와 일부 정치권의 반대로 아직 법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크게 3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수쿠크에 대해서 과세 특례를 주는 것은 이슬람 투자자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으로 다른 금융상품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둘째, 이슬람자금을 도입하는 국가에는 ‘샤리아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데, 이것이 국내법과 충돌할 수 있고, 또 이 기구가 이슬람포교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셋째, 이슬람 금융은 수익의 2.5%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규정하기 때문에 이 자금이 테러단체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내내 핵심적인 에너지 자원, 석유 및 가스를 바탕으로 한 중동경제와 이슬람금융은 급성장할 것이다. 블루오션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파란바다’에서 헤엄치기 싫다면, 민물에서만 놀아야 한다.
중동 미니상식 비즈니스 약속은 철저히 중동 사람들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나 서양인들보다는 약속에 잘 늦는 편이다. 더운 곳이기에 좀 느긋하게 행동한다. 또 알라가 정해 놓은 운명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기에 낙천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생활습관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중동인들은 1분이라도 먼저 가기 위해 급하게 운전한다. 경적도 수시로 누른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것이라면 상당히 신속하게 움직인다. 돈 받을 것이 있다면 수시로 재촉한다. 관심이 있는 아이템이라면 한국까지도 달려온다. 부지런하다. 공무원이면서도 사업을 하는 사람도 많다. 대부분 국가에서 법적으로 이를 허용한다. 정부기관의 일에는 느리지만, 자신의 사업에는 적극적이고 빠르다. 따라서 비즈니스 관련 약속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늦는 것이 현지에서 일상적인 일이라고 해서 외국인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약속을 어기는 외국인은 신뢰받지 못한다. 한 번 신뢰가 무너지면 그 소문은 아주 빠르게 현지 업계에 퍼진다.
중동은 연줄로 서로 얽혀 있는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가진 곳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5호(2015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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