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민 교수의 중동 오디세이] (13) 지도자가 죽어야 바뀌는…아랍의 정권들 아랍에는 왜 민주화한 국가가 없나?

    입력 : 2015.01.08 15: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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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8월 21일 북서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 국가 모로코에서는 큰 축제가 열렸다. 국왕 무함마드 6세의 생일이었다. 국경일이자 휴일이었다. 필자가 방문한 주요 도시의 거리 곳곳에는 국기가 게양됐고 ‘국왕의 장수와 영광’을 기원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밤에는 네온사인 축하 전광판들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수많은 공연과 파티도 열렸다. 지중해 연안 상공에는 에어쇼가 펼쳐졌다. 전통 축제와 각종 문화공연도 왕의 생일을 축하하고 그간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 일색이었다. 대부분 정부 소유의 주요 언론도 왕의 치적을 치켜세우는 특집기사로 장식되었다. 2014년의 생일 축제는 왕의 이모가 서거하면서 ‘아쉽게도’ 취소되었다. 무함마드 6세는 1666년에 시작된 모로코의 알라위트 왕조 제18대 왕이다. 1961년 즉위한 아버지 하산 2세가 38년을 통치하고, 1999년 7월 폐렴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왕위를 이어받았다. 입헌군주제 전통에 따라 헌법이 보장하는 절차에 의거해 국가 최고지도자에 오른 것이다. 국왕은 삼권을 초월하는 절대 권력을 갖는다. 군통수권, 의회해산권, 법률공포권, 조약비준권, 사면권, 비상사태 선포권 등을 모두 가지고 있다. 특히 군 참모총장을 겸직하며 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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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집권은 당연, 부자세습은 선택 무함마드 6세는 35세에 왕위에 올랐다. 현재의 추세라면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최고지도자로 남아 있을 전망이다. 아랍의 다른 왕정, 즉 사우디아라비아, UAE, 오만, 쿠웨이트, 요르단, 카타르, 바레인 등에서도 왕위는 아들 혹은 형제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한 가문이 한 국가를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통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왕정체제에 대한 심각한 내부적 도전이 없어 왕위계승은 지배가문이 알아서 결정한다. 2013년 카타르 국왕 하마드는 건강상의 이유로 왕위를 아들 타밈에게 넘겨주었다. 당시 아들의 나이는 33세였다.

    왕정뿐만이 아니다. 공화정을 채택하고 있는 아랍국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사망하거나 혁명으로 쫓겨나기 전까지는 권력을 놓지 않고 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지도자는 1969년에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하고 42년을 통치한 후 2011년 반군에 사살됐다. 옆 나라 이집트의 후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1981년 취임한 후 2011년 시민혁명으로 퇴진했다.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리흐 대통령도 1978년부터 2012년까지 집권하고 혁명세력과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물러났다.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아랍의 대부분 국가는 ‘죽어야 바뀌는’ 장기 정권 체제다.

    혁명으로 축출된 정권의 공통점은 공화정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려 시도했던 정권들이다. 부자세습에 성공한 시리아도 현재 내전에 직면하고 있다. 1971년에 정권을 잡아 2000년까지 29년을 통치한 하피즈 알-아사드 대통령은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에게 대통령직을 넘겼다. 바샤르는 영국에서 의학공부를 하던 중 아버지의 죽음으로 급작스럽게 귀국해 대통령이 되었다. 정치 경험도 전혀 없던 그는 아버지 측근의 도움으로 정권을 유지해 왔고, 현재 4년째 지속되는 내전 속에서도 20만 명 이상을 학살하며 권력을 쥐고 있다.

    부패한 정권과 이슬람주의 야권의 부상 아랍의 장기집권 현상에 가장 고통 받는 대상은 당연히 국민이다. 왕족, 지배가문, 군사정권 하에서 국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장기집권은 부패를 낳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 국가에서 왕족과 대통령 일가 혹은 측근은 무소불위의 권력과 부를 차지하고 있다.

    왕족과 대통령 일가가 정부의 주요 부처 그리고 최대 정부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의사결정 과정도 불투명하기만 하다.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집권층의 부와 이익을 위한 정책이 난무한다. 아랍에서 수주하기 위해서는 왕족과의 커넥션이 필요하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수조 달러에 달하는 오일머니를 가지고도 아랍의 산업과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직 정치의식이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랍의 상당수 국민은 자국의 장기집권 현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수십 년간 똑같은 지도자를 바라봐야 하고 강성해지지 못하는 국력과 경제를 지켜보면서 아랍의 거리에는 반정부 감정이 가득 차 있다. 이들 반정부 세력을 대변하는 것이 이슬람 세력이다. 물론 세속적 반정부 운동도 있지만, 국민 다수가 믿는 이슬람 종교를 이념으로 하는 반정부 이슬람세력이 더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극소수는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대부분 이슬람운동은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라는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테러를 감행하는 과격세력이 등장한 것도 아랍의 비민주화와 관련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본부를 둔 알-카에다는 사실 아랍 각국의 독재정권을 피해 도피한 이슬람주의자들의 모임이다. 사망한 전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과 현 지도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각각 친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출신이다. 이들에게는 야권을 탄압하는 자국의 독재정권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이 모두 적일 수밖에 없다.

    (왼쪽)아부다비 힐튼 호텔 정문에 장식된 왕족의 사진, (오른쪽)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2005년 대선 선거 포스터
    (왼쪽)아부다비 힐튼 호텔 정문에 장식된 왕족의 사진, (오른쪽)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2005년 대선 선거 포스터
    이슬람이 비민주화의 원인? 장기집권에 대한 누적된 불만으로 반정부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현 독재정권들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등장한 이슬람운동을 역으로 권력유지에 이용하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아랍 각국은 ‘안정’을 위해 민주적인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알제리 내전을 그 예로 제시한다. 동구권의 민주화 이후 국제사회의 압력이 고조되자 알제리 정부는 1991년 말 자유로운 총선을 허용했다.

    이슬람정당이 압승했다. 그러자 알제리 군부는 내부 쿠데타를 일으켜 총선 결과를 취소했다. 군부의 움직임에 이슬람세력이 반발하면서 1999년까지 내전이 이어졌다. 10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도 유사한 현상이 이어졌다. 2005년 1월 이라크 총선에서는 시아파 정치연합이,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는 이슬람정치세력 하마스가 승리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에도 튀니지, 모로코, 그리고 이집트 총선에서 이슬람세력이 승리했다. 이집트에서는 집권한 무슬림형제단에 대해 결국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다시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선거=이슬람세력 승리’ 공식에 대한 두려움으로 상당수 아랍 국가는 자유선거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오만, UAE, 사우디 등에는 아예 의회선거 자체가 없다. 정당도 허용하지 않는다. 자유화 혹은 민주화에 대한 공포증이 아랍 정권의 자발적인 정치개혁에 발목을 잡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 종교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장기독재정권에 도전하는 이슬람정치세력에 대한 공포감이 민주화를 더디게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왼쪽부터)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거리에 걸린 카다피 사진, 사우디 관공서 전면에 부착된 국왕 사진, 모로코의 길거리 상인도 국왕 가족사진 액자를 좌 판에 올려놓고 장사를 한다.
    (왼쪽부터)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거리에 걸린 카다피 사진, 사우디 관공서 전면에 부착된 국왕 사진, 모로코의 길거리 상인도 국왕 가족사진 액자를 좌 판에 올려놓고 장사를 한다.


    민주화의 적은 미진한 사회경제 발전 아랍은 결코 ‘민주화 과정’에서 뒤처진 곳이 아니다. 민주화를 위한 시도는 우리보다 훨씬 빨랐다. 19세기부터 유럽의 식민지 하에 있으면서 많은 유럽의 정치제도와 사상이 전파되었다. 이집트 등 일부 나라에서는 이미 1920년대부터 의회선거가 치러졌다. 문제는 국민의 정치의식이라는 인프라 없이 ‘위로부터’ 도입된 개혁조치였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독립해 공화정을 선포한 많은 국가들이 서양의 모델을 적용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대부분 권위주의 정권은 선전 수단으로 ‘민주화’를 주창했을 뿐이고, 가난과 실업에 시달리던 국민들은 무관심으로 따랐을 뿐이다. 비산유국 공화정들의 경우 대부분 국민의 상당수가 생활고에 직면해 있다. 하루하루 연명하기에 바쁜 삶 속에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빠르게 확산하지 못했다.

    산유국들의 경우에는 오일머니를 장악한 지배세력 왕족이 대부분의 정치권력도 독식할 수 있었다. 각종 복지혜택을 통해 정통성과 지배권을 국민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세금을 내지 않는 국민들이 권리를 주장하며 권력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면서 정부 혹은 왕족에 도전할 수 있는 민간의 신흥 상공세력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경제·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왕족 혹은 정부와 타협하고 협력하는 것이 가장 빠른 성공의 조건이 된 셈이다.

    걸프 왕정국가의 국민들은 결국 풍족한 삶을 살고 있으나 제대로 된 산업 및 시민사회의 발전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부적인 요인도 있다. 시리아와 이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랍의 독재왕정과 군사정권은 미국 등 서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은 반미지만 이들 정권은 서방의 정치적 지원을 받고 있다. 사담 후세인보다 더 오래 독재를 행해온 아랍국가가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정권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실질적인 민주화 압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많은 아랍의 독재정권들은 서방의 정치적 지지와 군사적 지원을 정권유지와 강화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중동 미니상식 기다림은 미덕이다! ‘알-사브르 자밀(al-Sabr Jamil).’ 아랍인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 ‘인내는 아름답다’라는 의미다. 거칠고 황량한 사막의 힘든 삶 속에서 등장한 마음가짐을 일컫는 말이다. 서두른다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유목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더불어 뜨거운 날씨에 지친 삶 속에서 느긋해진 자신들의 행동방식을 다소나마 위안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따라서 아랍에서는 상당히 많은 것들이 천천히 진행된다. 그것이 바로 이들의 삶의 패턴이기도 하다. 종교적으로도 알라가 정해준 운명에 따라 사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다. 약속을 잡으면 바로 ‘인샬라(In Sha Allah)’라고 답한다. ‘알라가 원하신다면’이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기에 알라의 뜻에 맡긴다는 것이다. 약속에 늦었다고 화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도를 위해 상담 자리를 비우고 늦게 온다고 해서 이를 두고 비난하거나 짜증 내는 사람도 없다. 특히 종교적인 이유로 늦거나 기다리게 한다면 웃으면서 ‘잘 다녀왔느냐’고 따뜻하게 말한다면, 친분은 더욱 두터워질 것이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2호(2015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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