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황금 석유가 지배하는 정치경제학

    입력 : 2014.09.12 14: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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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에 대한 이미지는 석유와 깊게 연관돼 있다. 사실 석유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걸프 국가들이 대부분 존재하지도 않았다. 유전 개발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방 정부와 기업이 유전 지역에 거주하던 최대 부족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면서 이들 부족이 후에 국가를 건설하고 정부를 구성했다. 쿠웨이트, UAE, 카타르, 바레인 등이 이런 부류의 국가들이다. 전략물자인 데다 근대화에 빠질 수 없는 에너지원인 석유로 인해 중동의 지정학적 중요성도 커지게 된다. 중동지역은 현재 세계 석유 확인매장량의 약 70%, 생산량의 약 36%, 수출량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다.

    석유는 ‘알라의 축복’? 석유는 중동에 주어진 ‘알라의 축복’임에는 틀림없다. 사막에서 낙타와 양을 키우던 사람들이 최고급 승용차에 운전사와 가정부를 두며 살고 있다. 국가는 석유 수익 덕택에 충분한 예산을 가지고 지출을 집행한다. 두바이에 세계 최고층 건물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가 들어서고 사우디아라비아의 1인당 전력 소비는 세계 1위다. 그러나 이런 알라의 축복이 수십 년간 지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아랍권 22개국에서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선진화된 나라는 찾아볼 수 없다. 돈이 많은 나라는 있지만 선진국은 없다는 얘기다.

    아랍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서구화한 곳이다. 19세기부터 유럽의 식민지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가 추진된 곳이다. 각종 제조업, 조립산업이 일찍이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막대한 석유 수출을 바탕으로 1970년대부터 엄청난 자본이 있는 곳이다. 자본주의시대에 가장 중요한 자본도 많던 곳이다. 그런데 정치적,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가 한 곳도 없다.



    아부다비의 유전 개발 사우디와 더불어 대표적인 산유국인 UAE의 아부다비 유전 개발 과정을 예로 들어 보겠다. 최근에는 사우디와 UAE도 일부 유전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70~80여 년 동안 이들 국가의 유전 개발은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유전 지역이 광구로 나뉜다. 순차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아부다비 정부가 ‘7광구’를 개발하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부다비 정부는 이 광구를 국제입찰에 부친다. 세계적 오일 메이저들이 단독으로 혹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할 것이다.

    여러 과정을 거쳐 셰브론이 이 광구의 개발권을 차지했다고 가정해 보자. 우선 광구에 대한 본격적인 탐사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이 탐사작업을 누가 할까? 셰브론이다. 탐사가 끝나면 원유가 밀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유정을 뚫는다. 이 과정도 셰브론이 담당한다. 석유 매장이 확실시 되면 시험 생산시설을 갖춘다. 유정의 경제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 시설 건설도 셰브론의 몫이다. 종합 분석 결과 유정의 경제성이 확인되면 최종 생산시설을 건설한다. 이것도 셰브론이 수행해야 하는 투자다.

    이 전체 과정에서 아부다비가 투입한 돈은 얼마인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그러면 수익 배분은 어떨까? 유전개발 계약서에 정확히 명시되고복잡한 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나라에 따라 혹은 석유의 질 즉, 중질유 혹은 경질유에 따라 다르지만 아부다비 유전의 경우 계약서에 일반적으로 50과 10이라는 숫자가 있을 것이다. 50은 기간이고 10은 셰브론의 지분이다. 즉, 50년 동안 셰브론이 원유 생산량의 10%를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셰브론은 투자비용을 보전 받고 이윤을 창출한다. 그러면 아부다비는 어떤가? 인풋은 거의 제로인데, 아웃풋은 원유 생산량의 90%를 받아가는 것이다. 너무나 쉽게 버는 돈이다. 흥청망청 쓸 수밖에 없다. 최고급 외제차에 호화로운 파티에 엄청난 낭비가 이어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부분 아랍의 산유국들은 이런 소비에 국부를 쏟아붓는 실수를 범해 왔다.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의 야경. 최근 고층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의 야경. 최근 고층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정부가 GDP의 60% 담당해 비효율 커 그러나 낭비와 과소비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같은 석유자원에 대한 전적인 의존은 아부다비 경제를 심각하게 왜곡시켜 왔다.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아부다비도 석유 및 가스 그리고 유관산업이 실질적으로 전체 GDP에서 약 60%를 차지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할 변수가 있다. 아부다비뿐만 아니라 중동국가의 유전은 모두 국영이다. 민간 유전은 단 한 곳도 없다. 유전 개발 과정과 위의 두 변수를 종합해 보면, 아부다비의 전체 GDP에서 60%를 국가가 생산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때문에 산유국의 국가 기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국가의 개념과 다르다. 소위 ‘현대 국가’ 개념에서 국가의 기능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생산의 주체인 민간의 보조역할을 한다. 생산 활동을 위해 국가는 인프라 건설과 치안 및 안보를 주로 담당한다. 대신 세금을 거둬 정부, 군대 등 국가 기관을 운용한다. 그러나 중동 산유국에서는 국가가 최대 생산자이자 최대 분배자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중동 경제의 여러 특성이 등장한다. 석유에 의존한 생산구조가 만들어낸 이런 중동 경제의 특성이 중동 저발전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국가주도형 경제 석유 의존적 경제구조의 직접적인 결과 중 하나는 정부의 경제적 역할과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더욱이 에너지 산업이 정부 재정이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서도 훨씬 높다. 전체 재정규모 중 석유부문의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90%에 이른다. 수출 비중 역시 대부분의 경우 60%를 웃돈다. 아랍 산유국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석유가 렌트(임대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가가 석유를 팔아 월세처럼 돈을 벌어들이고 이를 국민에게 배분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즉, 정부가 석유나 가스 등 천연자원을 판매하여 그 수익을 직간접적 형태로 국민에게 배분하는 것이다. 이 경우 생산, 교환, 분배의 모든 영역에서 정부가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규모 산업시설을 직접 설립하고 경영할 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인프라를 확충하고 더 나아가 정부는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최종적으로 보장하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

    사우디나 UAE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데도,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보다 더 강력한 국가의 기능과 역할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국가주도형 경제가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이보다 더 강력한 국가의 기능을 가진 중동 경제가 성공하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중동 지역에서 이러한 정부의 과도한 경제적 개입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최대 생산자이자 최대 분배자인 국가의 역할로 인해 국민들은 정부에 의존하며, 생산적 활동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못해 왔다.

    즉, 강력한 국가주도형 경제는 궁극적으로 민간부문의 성장을 위축시켜 경제의 활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국가주도로 민주화 뒤처져 천연자원에 대한 의존으로 대표되는 중동의 지대추구형 국가 모델은 아랍의 뒤처진 민주화의 원인이기도 하다. 근대 민주주의의 역사는 산업혁명으로 시작된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 수단을 갖게 된 민간이 전체 국가의 부를 상당부분 생산하게 된다. 이들 신흥 상공 세력이 국가 권력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생산의 주체인데 주권이 군주 개인에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것이다. 권력의 분배를 요구하게 되고 결국 주권이 국민에게 이전되면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유럽의 경험과 역사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민간의 생산능력이 국가보다 절대적으로 커야 한다. 그런데 중동 산유국에서는 아직도 국가가 최대 생산자이자 분배자다. 천문학적인 오일머니가 산유국의 정부 요직을 담당하고 있는 왕족 혹은 소수 권력층에게 집중되어 있다. 가장 강력한 부족 혹은 가문이 국가의 지배층이 되는 세습왕정 정치제도에서 국가의 재정수입은 우선적으로 왕족의 손을 거치게 된다. 사우디, UAE, 쿠웨이트 등 주요 산유국 왕족은 석유 자원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아 왔다. 석유를 이용해 권력을 더욱 강화해 온 것이다.

    국가의 최대 생산 수단인 석유를 독점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국가와 국민을 통제해 왔다. 농업 등 다른 생산 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막 지역에 사는 일반 국민들은 석유를 장악한 국가에 도전하기가 어렵다. 결국 지배층의 재화 분배에 의존하게 된다.

    현재까지 걸프 왕정국가는 비교적 안정적인 왕정을 지속할 수 있었고 민주화를 거부해도 큰 정치적 도전을 받지 않아 왔다. 국가 내에서 경제적 종속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고유가로 인한 막대한 원유수입이 아직도 왕족에 의해 좌지우지되어도 큰 정치적 소요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왕족들이 엄청난 개인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왕족인 아닌 일반인이 큰 사업에 성공한다는 것은 자금원인 왕족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중동에서 성공하려면 힘 있는 왕자를 잡아야 한다’고 우리 건설업체 관계자들도 자주 말하곤 한다.

    쿠란은 눈으로만 감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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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 및 이슬람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쿠란이다. 가정에도, 사무실에도, 그리고 무슬림 개인의 가방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디자인이 화려하고 예쁜 겉표지를 가진 쿠란을 보면 호기심이 생긴다. 만지고 싶고, 이국적인 아랍어로 쓰인 내용도 들여다보고 싶다. 하지만 비무슬림이 쿠란을 만지작거리는 것에 현지인들은 편치 않다. 특히, 더러운 손이나 왼손으로 쿠란을 만지면 화를 낼 수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쿠란을 소각했을 때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살해당한 적도 있다.

    쿠란은 타종교의 경전과는 다르다. 기독교의 성경도 인간에 의해 집필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슬람 종교의 경전인 쿠란은 알라의 계시 그 자체다. 인간이 전혀 손댄 것이 아니다. 천지를 창조한 알라가 인간에게 내린 우주를 다스리는 질서의 최종 완결판이다. 이 완결판의 계시를 받은 인물이 사도 무함마드다. 따라서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를 ‘마지막 사도’라고 칭한다. 더 이상의 계시는 없다는 의미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던 무함마드의 입을 통해 내려온 알라의 계시라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신성하다. 비무슬림이 이 신성한 쿠란을 함부로 다룬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8호(2014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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