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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8기 3중전회’ 고강도 개혁 추진…“개혁개방 없으면 죽는 길 밖에 없다”
입력 : 2013.12.12 14: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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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지난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열린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18기 3중전회)’는 중국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8기 3중전회’는 중국을 지배하는 공산당의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가 시진핑 체제를 탄생시킨 뒤 3번째로 개최하는 회의다. 이 중앙위원회는 중앙위원 205명과 후보위원 171명으로 구성돼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당 총서기)과 리커창 총리를 비롯한 당 정치국 상무위원(7명)과 위원(상무위원 포함 25명)은 물론이고 당 주요 간부와 국무원 각부 장관, 주요 국유기업 대표 등이 모두 이 중앙위원들 중에서 선출되거나 임명된다. 13억5000만명 인구의 중국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핵심 중의 핵심 인사들이 바로 이들 중앙위원이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5년 임기 중 7차례 회의를 갖는다. 지난해 11월 당 대회에서 선출된 18기 중앙위원회의 경우 당 대회 직후 한 차례,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직전에 한 차례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회의를 가졌다.
개혁방안 확정한 회의 이번 회의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지난 3월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회의이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은 전통적으로 이 세 번째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새 지도부의 개혁방안을 공식적으로 확정한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이 확정 발표된 것도 지난 1978년 개최된 ‘11기 3중전회’였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이해가 쉽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이번 ‘18기 3중전회’에서 시진핑 지도부는 35년 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에 버금가는 개혁안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지도부가 이번 개혁안에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가는 개혁 문건 전문(全文)에 첨부돼 있는 시 주석의 별도 설명에 잘 드러나 있다.
시 주석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고, 인민생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오직 죽는 길밖에 없다”는 덩샤오핑의 발언을 언급하면서 고강도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오는 2020년을 개혁 완료 목표일로 정하고 있는 이번 ‘시진핑 집권 10년의 개혁 청사진’을 보면 중국이 어떤 미래를 추구하고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번 개혁안에서 드러난 중국 지도부의 개혁 방향은 일반적으로 관측돼오던 것과 달리 경제 개혁보다 오히려 사회 개혁 쪽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개혁 문건을 찬찬히 분석해보면 중국 지도부는 민생 개선과 사회 개혁을 통한 체제 안정에 국정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지도부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중국에서 미래에 위기가 발생한다면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불만에 따른 내부 동요에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양극화 해소 위해 사회개혁 중국에서는 지난 35년간 개혁개방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소득·계층·지역 간 양극화와 인권 경시 풍조, 사법적 불공정성 등 고질적인 사회 문제가 누적돼 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공산당 지배체제를 안정되게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3중전회를 계기로 각종 사회 개혁을 통해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면서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 언론들도 30년 이상 유지돼온 한자녀 정책 폐기와 농민공들의 삶의질 개선을 위한 호적제도 개혁, 인권 탄압 논란의 핵심이었던 노동교화제 폐지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사회 개혁안에 보다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
중국인 개인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개혁안으로는 1979년부터 유지해온 한자녀 정책을 완화한 것이다. 부모 중 한 명만 독자여도 자녀를 두 명까지 낳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사실상 두자녀 정책을 허용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결혼 적령기 젊은이들이 거의 독자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대부분의 부부가 자녀를 2명까지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조치는 자녀 수 통제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해소하는 역할 이외에 중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를 늘리는 경제적 효과도 상당할 전망이다.
호적제도 개혁은 중국 사회 최대 소외 계층인 농민공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은 중소형 도시에서는 호적제를 철폐하고, 대도시에서는 호적 취득 조건을 완화해 나가기로 했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나온 2억6000만명 이상의 농민공들이 도시민과 똑같은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농민공들이 도시 호적을 취득하지 못해 아이를 낳아도 학교를 보내지 못하고 시골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이런 조치는 농민공들의 소득을 높여 중국이 소비주도형 경제로 전환하는 데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도 최장 4년간 인신 구속을 할 수 있는 노동교화제를 철폐하고, 법원과 검찰의 독립을 통해 사법체계의 공정성을 높이기로 한 것은 인권과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엄격한 언론 통제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의 발달로 억울한 피해 사례들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면서 인권과 사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중국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 중 하나로 꼽혀 왔다.
소득 분배 개선과 사회 안전망 강화 조치도 이번 개혁안의 핵심이다. 현재 상하이 시와 충칭 시에서만 시범 적용되고 있는 부동산세 도입 지역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지방정부 재정을 확충하는 목적도 있지만 분배의 공평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농민들에게 토지 재산권을 강화해 토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공동 소유한 집체토지를 시장 가격으로 매각할 수 있도록 한 조치는 농민의 소득 증대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양한 노후 보장 방안을 추진한 것도 체제의 안정적 유지와 관련이 깊다. 퇴직 연령 연장과 사회보장제도 강화가 대표적이다. 퇴직 연령은 매년 3개월씩 연장하는 방식이 유력하고, 사회보장은 보험료를 낮춰 가입 대상자를 확대하는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마땅한 재테크 수단이 없는 국민들에게 금융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방안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된다.
시진핑 국가주석(왼쪽)과 리커창 총리
다만 국가 안보와 함께 생태 안전, 국가적 중대 산업, 전략적 자원 개발, 중대한 공공이익 관련 업종 등의 경우는 여전히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런 조치는 자원을 배분하는 데 있어서 시장이 과거처럼 ‘기초적’ 역할이 아니라 ‘결정적’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당국 방침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다.
중국이 소비주도형 경제로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투자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경제적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투자에 대한 정부 감독이 줄어들면 단기적으로는 특정 업종으로 투자가 몰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염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에도 철강과 시멘트, 선박 등 일부 업종에 투자가 집중되면서 부실기업이 양산된 것이 경제 최대 불안 요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 이들 기업의 실적 악화로 인해 은행의 부실채권이 늘어나는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또한 외자기업이 중국에 투자할 때 적용되는 각종 제한 규정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또한 외자기업에 대한 내국민 대우를 명시해 국내기업과 외자기업에 동일한 법률과 법규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외자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때 예측 가능성을 높여 외국인직접투자(FDI)를 활성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와 동시에 금융과 교육, 문화, 의료 등 서비스업을 순차적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교육과 양로, 건축설계, 회계, 물류, 전자상거래 등에 적용되는 외자 진입 제한도 완화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민간자본이 중소형 은행 등 금융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위안화 환율과 금리의 시장화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기득권층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던 국유기업 개혁도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오는 2020년까지 국유기업이 거둔 이익의 30%를 공공분야에 지원토록 한 방안이 돋보인다. 국유기업들이 현재 이익의 5~20%를 공공부문에 지원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원 규모를 최대 6배까지 늘리는 계획으로 평가된다.
국유기업을 통해 조달한 공공자금은 사회보장기금에 출연되는 등 주로 민생 개선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국유기업이나 국유자본에 민간자본의 지분 참여를 허용하는 등 국유자본 경영체제 개혁도 시도된다.
“개혁 반드시 실행” 의지 드러내 이번에 제시된 개혁안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 2개의 국가조직을 신설하기로 한 것도 큰 변화다. 바로 전면심화개혁중앙영도소조와 국가안전위원회다. 두 조직 모두 시진핑 국가주석이 총괄 책임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면심화개혁중앙영도소조는 개혁의 총체적 설계와 운영에 대해 총괄 책임을 지면서 개혁 실행을 관리 감독하는 기구다. 중국에서 개혁개방 노선이 시작된 지 35년이 됐지만 개혁을 총괄하는 사령탑이 구성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당 지도부가 개혁을 말로만 하지 않고 반드시 실행에 옮기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다.
미국의 국가안보회의(NSC)를 본뜬 국가안전위원회 설립은 중국의 대내외적인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시 주석은 위원회 설립 배경과 관련해 “국가안전 업무를 담당할 ‘강력한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중국은 대내적으로 정치와 사회 안정을 유지하고, 대외적으로는 국가 주권과 안전을 수호해야 하는 두 가지 압력에 직면해있다”고 밝혔다.
이를 감안할 때 국가안전위는 농민 시위와 사회불만 테러, 신장위그루자치구와 티베트자치구 등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운동 등 내부 문제는 물론 동중국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 등을 비롯한 외교 문제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위원회가 국방과 안보, 사회, 경제분야를 포괄하는 새로운 권력기구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혁훈 매일경제 베이징 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9호(2013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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