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마지막 황금시장…미얀마가 열리다

    입력 : 2013.08.09 1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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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19일 미얀마 수도인 네피도.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미얀마 대통령궁에서 테인 셰인 대통령을 만나 대규모 투자를 골자로 한-미얀마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제1차 한-미얀마 경제협력 공동위원회’라는 타이틀이 걸린 이날 행사에는 현 부총리 외에 15개 부처 차관과 국실장 등이 참석했다. 현 부총리는 현지 한국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지원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미얀마는 개발 초기 중국과 같은 모습입니다. 주요 선진국들의 각축장이지요. 이번 한국-미얀마 공동위를 계기로 미얀마 개발 초기에 시장을 선점해 한국식 개발모델이 채택되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아시아 마지막 황금의 땅’이라 불리는 미얀마에 한국이 본격 진출한 역사적인 장면이다. 1인당 GDP가 855달러에 불과한 이 나라가 황금의 땅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은 2011년 2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테인 셰인 대통령이 미얀마 연방 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날이다. 그는 앞서 국회 표결에서 전체 659표 중 408표를 얻었다. 군부의 지원을 받은 통합단결발전당(USDP)이라는 비판이 거셌지만 표면적으로 군사정권이 종식된 셈이었다.

    이후 미얀마는 개혁 개방의 길을 걸었다. 테인 셰인 대통령은 보란 듯이 개혁을 추진했다. 수치 여사 감금을 해제했고 국민들의 해외 활동을 허용했으며 반체제 인사 블랙리스트를 없앴고 언론 검열도 철폐했다.

    경제적으로는 시장환율제도를 받아들였다. 이에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전격 방문했고 이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미얀마를 방문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성장이 멈춰선 미얀마가 본격적인 기지개를 편 날이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미얀마는 1960년대 동남아 부국에서 2000년대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아픔을 겪었다. 잘못된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으로 장기간 마이너스 성장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1차적인 원인은 1948년 의회 주도로 경제개혁을 실시하다 쌀 수출량이 3분의 2, 광물 수출량은 96%가 각각 감소한 데 있었다.

    경기를 급격히 띄우고자 시중에 돈을 풀었지만 오히려 인플레이션만 초래됐다. 2차 원인은 1962년 버마식 사회주의에 있었다. 당시 독재 정권은 본격적인 계획경제를 시행했는데, 농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을 국영화했다. 그 사건으로 미얀마는 세계 최 빈곤국 중 하나로 전락했다.

    어쨌든 전 세계가 미얀마를 주목하고 있는 까닭은 단순히 성장 잠재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도차이나반도에 있는 미얀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그 중요성이 유독 남다르다. 서쪽으로는 인도,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북쪽으로는 중국이 있다.

    또 동쪽으로는 라오스와 태국과 국경을 마주한다. 그리고 남쪽은 인도양이다. 인도로서는 동남아와 연결할 수 있는 요충지이고, 중국으로서는 인도양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인 셈이다. 일본은 필리핀-태국-미얀마를 연결해 옛 대동아공영권을 재현하고 싶은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

    때문에 강대국들은 미얀마 진출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21세기 판 신(新)식민지 건설 지형이 바로 미얀마인 셈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미얀마가 위치한 인도차이나반도에 경제 회랑(回廊) 건설에 유달리 적극적이다.

    얼마 전 중국은 라오스에 체육관을 건립해 주는 대신 차이나타운 부지를 보장 받았고, 중국 건설사들이 공사를 맡는 조건으로 중국 쿤밍에서 라오스 비엔티안까지 고속철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또 중국은 미얀마에서 화교(華僑)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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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 경제특구인 짜욱퓨(Kyauk Phyu)에 파이프라인을 연결하고 병원과 학교를 건설해 주겠다는 약속을 공언했다. 이러한 중국의 미얀마 중시 전략은 수치로 입증된다. 올 2월 현재 미얀마의 외국인 투자액 중 절반이 중국이다. 142억달러로 34%다. 만약 홍콩까지 포함하면 외국인 투자액 중 절반이 중국으로 채워진다. 그만큼 자본력 면에서 중국을 따돌릴 만한 세력이 없다.

    일본은 이를 만회하고자 안간힘이다. 올 1월 1989억엔을 미얀마에 사실상 무이자로 빌려주고 그 대신 중국 정부가 기획했던 미얀마 산업단지 건설 수주를 따냈다. 일본은 자국이 구축한 동남아 전진기지인 필리핀, 태국에 이어 미얀마로 그 경제 영역을 확대하려는 계획이다.

    특히 일본의 강점은 미얀마 최대 채권국(총 5020억엔)이라는 점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일본은 ‘All Japan(모두 일본)’이라는 기치아래 작년 9월 부처별로 지원 방안을 마련했고 10월에는 민관협의회를 창설했다.

    또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주도로 30명이 넘는 인력이 양곤도시개발위원회(YCDC)에 파견돼 미얀마 주요 도시인 양곤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보다 열세에 놓인 점을 감안해 기업별로도 대책 수립에 분주하다.

    미즈호 코포레이트은행은 주재원사무소를 개설했고 도쿄증권거래소는 미얀마 중앙은행과 ‘증권거래소 설립과 자본시장 육성지원’ 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와이셔츠 공장
    와이셔츠 공장
    지난 6월 테인 셰인 미얀마 대통령과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지난 6월 테인 셰인 미얀마 대통령과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후지제록스는 주재 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복사기와 프린터 시장에 대한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물론 마루베니, 미츠이물산, 스미토모상사, 미츠이상사, 이토츄상사 등 대다수 일본 상사들이 미얀마에 둥지를 틀었다. 세계 최대 패권국인 미국은 뒤늦게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작년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를 방문해 향후 2년간 미얀마 정치개혁 진전 여부에 따라 총 1억7000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지금껏 미국은 미얀마 경제 봉쇄를 주도했지만 상황이 급격히 반전되면서 작년 말 이후 2억4400만달러어치 기업별 투자 건수를 승인하기도 했다.

    인접국인 인도는 미얀마 개발과 인도 북동부 4주 개발을 연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코트라에 따르면 작년 5월 맘모한 싱 총리가 인도를 방문한 이래 미얀마 서부지역의 전력망 확충과 송전선 설치, 전력케이블 공장 건립을 위해 총 8400만달러에 달하는 지원책을 발표했다. 이웃나라로서 일본과 중국에 뒤처질 수 없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적극적인 공세에도 미얀마는 한국에 유달리 우호적이다. 그 성과는 지난 6월 ‘제1차 한-미얀마 경제협력 공동위원회’에 잘 나타난다.

    우리 정부는 2018년까지 미얀마 3대 투자국으로 부상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걸맞는 협상을 미얀마 정부와 진행했다.

    대표적인 사업이 한국형 산업단지 조성과 우정의 다리 건설이다. 우리 정부는 양곤시 양곤강에 한국-미얀마 우정의 다리를 건설하기로 약속했다. 위치는 양곤시 중심부에서 양곤강 남부 달라(Dala)섬까지다.

    이 강의 폭은 1㎞ 정도. 정부는 이를 위해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을 활용해 약 1억4600만달러를 투입할 방침이다. 우정의 다리는 양곤강에 차량 통행이 가능한 첫 교각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남다르다.

    또 구체적인 위치에 대해선 확정을 안했지만 달라섬에 한국형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우리 정부가 돈을 들여 산업단지를 조성하되, 우리 기업에 우선 입주권을 보장받겠다는 약속이다.

    현재 미얀마는 물가와 임대료가 큰 폭으로 오른 데다 인프라스트럭처마저 부족해 한국 기업들이 둥지를 트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일본은 먼저 산업단지 조성에 착수한 바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 혜택은 일본기업이 갖는다. 때문에 우리 기업은 입주권을 얻기가 힘들다.

    한국형 산업단지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우리 정부는 한국형 산업단지에 인접한 진입 도로나 배전, 배수 등 기반시설을 함께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밖에 양곤시에는 한국-미얀마 비즈니스센터가 들어선다. 미얀마 산업부와 한국 KD파워, 기업은행 등이 출자한 조인트벤처사가 총 5500만달러를 투자해 기업 사무와 교육, 훈련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우리 정부는 미얀마가 국제 입찰을 붙인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구애 중이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양곤 북동쪽 약 60km 지점에 신설될 제2양곤 공항인 한따와디 공항 사업이다. 미얀마를 방문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따와디 신공항 프로젝트를 한국 기업이 수주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장관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연간 이용객은 약 1200만명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수요가 인정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천공항공사 주도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뛰어든 상태다. 이 사업을 따내면 최대 50년간 공항 개발과 운영에 대한 권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미얀마가 한국에 우호적인 까닭은 우리나라가 최빈국에서 주요 20개국(G20)으로 부상한 몇 안 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적으로 본받을 점이 많다는 미얀마 수뇌부의 인식이 강하다. 이번 공동위에서 새마을운동을 도입하게 된 점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동위에서 미얀마는 새마을운동을 받아들였다. 미얀마판 새마을운동은 종전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종전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이 지도자 양성을 중심으로 했다면 미얀마에선 1~2개 시범지역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단기간에 성과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지역에 전기와 도로 등 인프라스트럭처까지 우리가 지원한다.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주도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미얀마에 진출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얀마 정부는 미얀마에 미얀마개발연구원(MDI)을 설립하면서 한국에서 청사 건설은 물론 인력 파견, 소프트웨어까지 지원 받기로 했다.

    현오석 부총리는 이를 이렇게 평가했다. “한국이 1970년대 경제 개발과정에서 도로와 철도, 항만, 공항을 빠른 시간 내에 건설해 경제 발전을 일궈 낸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점은 미얀마 경제 개발에 참가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장점입니다. 미얀마 입장에서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 모델보다는 개발도상국 모델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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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미얀마가 모두 장밋빛인 것만 아니다. 개발 열풍이 곳곳에 불어닥치면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양곤시는 불과 2009~2013년 4년 사이 최대 4배나 폭등했다. 또 미얀마 인구는 5516만명으로 한국보다 많지만 전체 인구 중 65%가 농업에 종사할 정도로 제대로 된 숙련공을 기대하기 힘들다. 또 기타 동남아 국가들이 대규모 투자에 대해 무상 토지 임대, 간접시설 무상설치, 인력교육 등 혜택 제공을 보장하는 것과 달리 미얀마는 경우에 따라 비싼 토지 임차료만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인식적 측면에서 여전히 사회주의 노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코트라는 저임금 노동력을 토대로 한 업체에 한해 진출을 권유한다.

    미얀마는 생산직 근로자 평균 임금이 월평균 90~110달러로 인접국인 베트남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물론 노동 생산성은 베트남 대비 80%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임금대비로 따지면 노동생산성이 베트남보다 1.6배 높다. 여기에 더해 문맹률이 낮고 민족성이 근면해 우리나라의 한계 업종이 진출한다면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부문이 바로 CMP(Cutting·Making·Packing)다.

    아울러 향후 국민소득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일찌감치 프랜차이즈 사업체는 노려볼 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 4월 진출한 롯데리아는 1일 평균 매출액이 국내 A급 매장 2배를 넘어설 정도로 현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성민 코트라 양곤 무역관은 “미얀마는 우리와 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 역사적으로 높은 유사성을 갖고 있어 중국 일본 등과 비교해 한국인에 대해 친근해 한다”면서 “언어 또한 티베트 미얀마어계로 우리와 어순이 같고 조사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중국, 인도 등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몽고, 영국, 일본의 식민지 경험과 49년간 군부통치를 경험한 점도 한국과 비슷해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얀마 = 이상덕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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