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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미국,특허괴물과의 전쟁 나섰다
입력 : 2013.07.15 09: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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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특허괴물은 스스로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면서 남의 아이디어를 지렛대 삼거나 가로채 돈을 뜯어낼 궁리만 한다”며 행정명령 5건을 무더기로 발동시켰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꺼번에 쏟아낸 5가지 행정명령은 △특허 기능 청구범위 강화(모호하거나 지나치게 포괄적인 특허 청구 제한) △특허 소유자에 대한 투명성 강화(특허괴물 소유 특허권 명시) △개인 및 영세·벤처기업 등 최종 사용자에 대한 특허소송 남용 금지 △특허제도 개선 방향 연구 △미국 특허 침해 수입품에 대한 처리 간소화 등이다. 특허괴물의 위력을 떨어뜨리는 내용들이다.
본래 특허괴물(Patent Troll)이란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생산하지 않고 특허 등 지적재산권을 헐값에 사들인 후 이를 침해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거액의 로열티나 배상금, 합의금 등을 챙기는 특허관리전문회사(NPE, Non-Practicing Entity)들을 말한다. 사실 그동안 특허괴물은 지적재산권 거래시장의 ‘필요악’ 정도로 여겨져 왔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설립된 헤지펀드가 전체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높여 놓듯 특허괴물도 지적재산권의 가치 거래를 활성화해 시장을 키우는 촉매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도 특허괴물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던 것이 지적재산권 시장이 커지고 특허관리전문회사가 늘어나면서 폐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허괴물들이 닥치는 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하면서 기업들이 연구 및 기술개발보다는 특허 방어와 인수합병 방지에 더 많은 돈을 쏟아 붓도록 만든 것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특허괴물에게 지불된 금액은 지난 2011년에만 총 290억달러(3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 전체 특허소송에서 특허괴물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62%에 달해 2006년(19%)의 3배를 넘어섰다.
특히 특허괴물들이 중소기업들을 특허소송의 제물로 삼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미국경제를 망치는 주범’으로까지 지목되는 분위기다. 중소기업들 입장에서는 자칫 특허소송에 패소했다가는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으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법률적 방어능력이 떨어지고 자금력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특허괴물 입장에서는 손쉬운 먹잇감이었던 셈이다.
백악관 대변인 제이카니가 ‘Innovation, Not Litigation’이라고 적힌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난해 피터 디파지오 민주당 하원의원이 제출한 ‘특허괴물 퇴치법안’은 특허소송을 제기한 특허괴물이 소송에서 졌을 경우에는 소송비용을 물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아니면 말고’식 특허소송을 막기 위한 장치다.
특허괴물 퇴치에 관해서는 미국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불문하고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태다. 특허괴물은 생산시설도 없고 고용규모가 크지 않으며 세금도 많이 내지 않는다.
게다가 어지간한 지역구에는 특허괴물 때문에 고통 받는 중소기업들이 수두룩하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 입장에서는 ‘다수의 경제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것만큼 매력적인 명분이 없다. 이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4호(2013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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