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욕의 화신으로 찍힌 그가 소통을 시작했다…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

    입력 : 2013.07.15 09: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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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월가에서 최고 연봉을 받은 금융기관 수장은 누구일까? 바로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다. 블랭크페인 회장은 지난해 2600만달러(293억원)의 보수를 거머쥐며 월가 연봉킹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골드만삭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데다 주가도 3년래 가장 큰폭인 41%나 급등한 덕분이다.

    지난 2006년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 수장자리에 오른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정부 공적자금을 받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블랭크페인 회장은 JP모건 제이미 다이먼 회장과 함께 월가를 대표하는 금융황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자는 지난 5월 23일 솔트레이크시티 골드만삭스 연례주주총회 현장에서 블랭크페인 회장을 만나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기자에게 주총 취재를 위해 먼 곳까지 와줘 고맙다는 덕담까지 할 정도로 스스럼이 없었다. 주총장에 모인 주주들과도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거들먹거리는 전형적인 월가 금융기관 수장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 1년 여간 블랭크페인 회장이 많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지난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블랭크페인 회장은 언론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고 공적인 자리에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등 비밀주의를 고수했었다. 소통보다는 은둔형 CEO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같은 은둔의 틀을 깨고 대외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것은 지난해 3월 터진 고객 ‘봉’(Muppet) 사건이다.

    당시 골드만삭스 중간급 임원이었던 그렉 스미스 유럽중동지역 파생투자 담당 이사가 뉴욕타임스에 ‘골드만삭스를 떠나는 이유’라는 제목의 사퇴의 변을 기고형식으로 올렸다. 이글에서 스미스 이사는 골드만삭스가 고객은 뒷전이고 회사 이익만 우선적으로 챙기는 것은 물론 심지어 고객을 ‘봉’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렇지 않아도 월가탐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던 차에 이 같은 내부자 폭로까지 터져 나오면서 골드만삭스는 월가의 대표적인 탐욕의 화신으로 찍히는 상황에 직면했다. 회사 평판이 날개 없는 추락을 할 위기에 빠진 뒤 블랭크페인 회장이 꺼낸 카드는 바로 소통강화였다. 지난 2006년 CEO가 된 뒤 단 3차례만 인터뷰를 했을 정도로 언론을 꺼렸던 블랭크페인 회장은 지난해 4월부터 CNBC, 블룸버그 등 언론과 잇따라 인터뷰를 하는 등 대언론 접촉을 대폭 확대하고 골드만삭스 홍보맨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비밀주의가 대중의 혐오를 키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각종 포럼, 컨퍼런스 등에도 얼굴을 적극적으로 들이밀기 시작했다. 올 1월 말에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발길을 끊었던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패널 토론자로 참석하는 등 대외 활동을 확 늘린 상태다.

    솔트레이크시티를 제2의 골드만삭스 고향으로 고객 봉 논란 이후 땅에 떨어진 기업의 평판 개선을 위해 그동안 돈을 얼마나 벌어다줬는지에만 초점을 맞춘 임직원 성과보상 시스템도 확 바꿨다.

    최근 블랭크페인 회장은 미국 월가에서 서쪽으로 3600km나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사업장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몇 년 새 직원 숫자를 크게 줄였다. 지난 2010년 3만5700명에 달했던 전체 임직원 수가 지난해 말 현재 3만240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솔트레이크시티 직원 수는 지난 5년간 세 배나 늘어 올해 말 1700명까지 확대된다. 직원 수와 사업이 확대되면서 솔트레이크시티는 골드만삭스 본사가 위치한 뉴욕·뉴저지 지역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사업장이 됐다. 지난 5월 23일 솔트레이크시티 222 사우스 메인스트리트에 위치한 22층짜리 골드만삭스 솔트레이크시티 사업장에서 주주총회를 열기도 했다. 골드만삭스가 뉴욕·뉴저지 이외 지역에서 주총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블랭크페인 회장이 솔트레이크 사업장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골드만삭스는 솔트레이크시티를 저비용·고효율 효과를 창출하는 고부가가치지역(High Value Location)으로 평가하고 있다. 주정부가 매기는 법인세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각종 기업유치 인센티브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고 저렴한 생활비와 탁월한 인재풀을 구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솔트레이크시티 주민의 절반은 모르몬교들이다. 모르몬교도들은 교육열이 강해 교육수준이 높고 근면하면서도 충성도가 높다. 또 모르몬교도 상당수가 세계 각지에서 2년간 선교활동을 하기 때문에 외국어 구사능력이 뛰어나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글로벌 사업을 펼치는 골드만삭스 입장에서 국제화된 인력풀은 상당한 매력이다. 실제로 골드만삭스 솔트레이크시티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인력의 80%가 제2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블랭크페인 회장이 솔트레이크 사업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난 2000년 골드만삭스가 솔트레이크시티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만 해도 사업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았다. 거만하고 출세 지향적이며 탐욕적인 월가 이미지와 검소하고 가족중심적인 솔트레이크시티 문화가 충돌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미국 경제 낙관…채권값 하락 경고 블랭크페인 회장은 지난해부터 줄곧 채권값 하락(채권금리 상승)을 경고해왔다. 사상 초유의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 연준이 양적완화와 제로금리라는 공격적인 경기부양 조치를 내놓은 것 자체는 지지하면서도 양적완화로 인해 금리가 과도하게 낮은 상태에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리가 오름세로 돌아서면서 1%대에 있던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2%대로 상승했지만 이정도 수준도 아직 정상적인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블랭크페인 회장은 지난 1994년 갑작스레 금리가 폭등하면서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던 상황이 재연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박봉권 매일경제 뉴욕특파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4호(2013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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