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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석의 클릭 차이나] ⑰ 성인용품과 현지처 농민공들의 사생활
입력 : 2013.07.15 09: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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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면적을 가진 중국에서 농민공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기차나 장거리 버스로 며칠씩 걸리는 경우가 보통이다. 또 오랜만에 고향으로 한번 돌아가려면 여비는 물론이고 식구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 역시 농민공들의 임금 수준으로는 커다란 부담이다. 그러다 보니 1년에 한 번조차 고향에 돌아가기가 쉽지 않아 가족과 함께 있을 기회를 포기하고 몇 년씩 부부간 별거 생활을 하는 농민공들이 적지 않다.
많은 농민공들에게 있어서 강도 높은 노동과 적은 임금보다도 오히려 부부 별거에 따른 생활환경 불안감이 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중국 도시에서 성인용품 상점들이 번성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다. 중국에서 공안당국이 매매춘을 엄격히 단속하는 이른바 ‘싸오황(掃黃)’ 캠페인을 자주 벌이지만 매매춘 현상이 쉽사리 근절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거대한 농민공 규모와 부부 별거 현상의 보편성 정도에 비하면 지금까지 중국사회에서 강간 등 성범죄 현상이 발생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농민공들의 성생활 문제는 중국 사회의 도덕 수준과 안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요한 문제이며 향후 중국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시진핑 지도부가 창도하는 ‘신형 도시화’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바로 어떻게 농민공들을 완전히 시민으로 정착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도시 시민으로의 정착이야말로 농민공 부부들의 별거 현상을 종식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 개최된 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는 수억 명의 농민공 이익을 대표해 31명의 농민공 대표가 참석했다. 5년 전의 11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처음으로 3명의 농민공 대표가 참가했던 것에 비하면 크게 증가한 셈이다. 이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선출됐고 또 과연 어떤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떠나서 이번 대회 기간에 이들의 언행이 언론의 주목을 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 농민공 대표들 가운데는 안후이(安徽)성에서 발마사지 업에 종사하던 리우리(劉麗)라는 여성 농민공 대표가 있었는데 그가 기자회견에서 한 즉석 발언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는 정부가 농민공들의 부부간 별거 생활 문제에 관심을 돌릴 것을 촉구하면서 장기간의 별거 생활 때문에 농촌 이혼율이 급증하는가 하면 이미 결혼한 농민공들 가운데서 이른바 ‘임시 가정(臨時夫妻)’ 현상이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고 폭로했다.
‘임시 가정’ 현상이란 당사자들이 모두 고향에 가정과 심지어 자식들도 있지만 장기간 외지 별거 생활의 고독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로간의 가정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당분간 동거생활을 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중 아무 때나 헤어질 수 있는 잠시적인 동거관계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동거 중에 감정이 생겨 결국 각각 원래의 배우자와 이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소식은 순식간에 언론 매체들을 통해 국내외에 전파되면서 많은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임시 가정’ 현상은 당사자들이 가정에 대한 책임을 망각한 비도덕적 행위라고 비판하는 의견들이 물론 주류이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동정론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처럼 중국 사회는 지금 윤리도덕과 현실 사이의 모순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든지 ‘임시 가정’ 당사자들이 원래의 가정을 배반했다는 도덕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 문제는 현재 중국 경제 발전의 중요한 방식의 하나인 농민공 제도가 이러한 ‘임시 가정’ 현상 발생에 중요한 환경조건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데 있다. 시골에 있는 농민들이 소득증대를 위해 고향을 떠나 도시에 와 일자리를 찾는 것은 어느 개발도상국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유독 중국만이 농민들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혼자서 일하다가 나이가 되면 시골로 다시 내려갈 수밖에 없는 농민공 제도가 있다. 그 배후에는 도시에서 농민을 정식 시민으로 받아주지 않는 악명 높은 ‘호구(戶口)제도’와 농민을 농업에 종사하도록 농촌에 얽어매어 두는 농촌토지의 집단 소유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우선 호구제도하에서 농민공들은 도시 호구를 취득하지 못한 이상 도시 주민으로서의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릴 수 없고 심지어 소득도 도시 주민보다 크게 낮을 수밖에 없다. 또 현재 높은 도시주택 가격 때문에 대부분의 농민공들은 가정과 함께 도시에 집을 사거나 집세를 내면서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경제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다음으로 고향에 있는 농민들의 경작지는 개인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팔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권을 양도할 경우에도 양도 가격이 매우 낮다. 또 농민들의 개인 주택은 택지가 집단 소유로 되어 있기 때문에 외지인들에게 판매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 모두 농촌을 떠나 주택이 빈집 상태로 남아 있다가 붕괴될 경우 택지는 자동적으로 반납하기로 되어 있다. 결국 농민들은 도시로 일하러 나가더라도 노인이나 혹은 배우자들을 자녀와 함께 농촌에 남겨 두어 집을 지키게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현재 농민공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임시 가정’ 현상은 한편으로 중국사회에서 윤리도덕이 와해되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1억5000만명 이상에 달하는 농민공들의 부부생활 권리와 자녀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중국 농민공들 가운데 존재하는 ‘임시 가정’ 현상과 유사한 현상들이 한국에 단신으로 돈 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존재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중국에서 ‘호구제도’ 때문에 농민공들의 처지가 한국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유사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사례이다.
[한홍석 LG경제연구원 중국연구소 소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4호(2013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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