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홍석의 클릭 차이나] ⑯ 견고한 관료등급제 사회불만 불씨 키워

    입력 : 2013.06.07 14: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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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처럼 관료조직의 규모가 방대하고 등급제 구조가 복잡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는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땅이 넓고 인구가 많다 보니 정부 관료계층의 규모가 늘어나고 등급과 역할도 세분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원인은 중국이 장기간 사회주의 계획경제 제도를 실시하다가 개혁개방 이후 점차 시장경제 제도로 진화하는 과정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데 있다. 신제도경제학의 분석 틀에 따르면 희소한 자원의 사용권을 취득하는 경쟁 규칙 성격에 따라 경제제도의 유형이 결정된다. 자산소유에 따라 자원사용 권리를 결정하는 제도는 사유재산권 제도(혹은 자본주의 제도)이고 등급에 따라 자원사용 권리를 결정하는 제도는 공유재산권 제도(혹은 사회주의 제도)이다.

    사유재산권 제도하에서는 대통령이나 시골 농민이나 관계없이 돈만 있으면 시장에서의 가격경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절대 대부분의 상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 관료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사회적 등급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역할만 하게 되고 관료들의 특권도 크게 제한되어 있다. 반면에 공유재산권 제도를 실시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정치사회적 등급제의 의미와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 제도하에서 국민들은 비록 명의상으로 국유자산을 공동 소유하고 있지만 누구도 독립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시장가격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정부가 배급제를 통해 소비재를 배분하게 되어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공유재산권 시장기능 작동 못해 그러한 사회에서 등급이 높은 권력자는 수입품을 포함한 고품질의 상품 및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이나 심지어 공짜로 이용할 수 있지만 사회 최하층 등급의 일반 백성들은 목숨을 연명할 식량마저 정부가 발급한 쿠폰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등급의 차이가 빈부격차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공유제도의 사회주의 사회는 이론적으로 인간의 평등권을 주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등급제 구조와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 역사가 잘 증명하고 있다.

    1978년 이후 중국은 농촌에서의 ‘가정경영책임제’를 시작으로 점차 개인의 자산권리를 보장하고 확대하는 제도개혁의 길을 걸어 왔다. 따라서 명의상에는 여전히 전 국민 혹은 집단의 공동소유이지만 실제로 개인이 사용권과 수익권 및 양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분야가 점점 늘어나면서 점진적으로 사유재산권 제도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현재 도시주민들의 개인주택은 국유택지 사용권을 70년간 임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아직 철저한 사유 재산이라고 할 수 없지만 민영기업은 이미 철저한 사유재산권 제도를 기반으로 설립되고 운영되고 있다.

    중국이 아직 사유재산권 제도가 완전히 확립된 시장경제국가가 아니고 공유재산권(국유경제) 제도가 상당부분 남아있다 보니 과거 등급에 따른 자원사용 권리 방식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중국에서 민영화 개혁이 본격화되던 90년대 초에 이른바 ‘샤하이(下海)’ 열풍이 불어 많은 정부관료와 직원들이 ‘철밥통’을 버리고 개인 사업에 뛰어 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그중에는 자신의 능력보다도 기존의 인맥과 현 정책의 허점을 이용해 손쉽게 원래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와 보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어쨌든 그 당시 관료 등급제가 매력을 잃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후진타오 시대에 정부관료 권한과 국유기업 영향력이 확대되는 이른바 ‘국진민퇴(國進民退)’ 현상이 나타나면서 중국에서의 관료 등급제는 또다시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매년마다 수십만 명의 대학 졸업생과 기업 화이트 칼러들이 안정적인 직장과 높은 대우 및 관료 출세의 꿈을 안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고 있는데 합격률이 2001년의 13.7%에서 2012년의 1.9%로 내려가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 지는 상황이다.

    중국에서 정부 관료의 권한과 차별적인 대우에 기초한 관료 등급제는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등급에 따라 임금이나 의료대우는 물론이고 재직 소비 표준과 퇴직 후 대우에도 큰 차이가 있다. 물론 현재 중국의 관료 등급제하에서는 능력과 성과에 따라 지역이나 분야에 관계없이 승진할 수 있는 기능도 있는데 이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해당 분야 관료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격려하는 인센티브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관료 등급제도는 관료계층의 특권을 보존 확대하고 심지어 일부 야심가들이 승진을 위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부정부패의 원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데 유명한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기구 직원 총 6000만명 달해 중국의 관료 등급제하에서 최고급인 1급은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최고 지도자, 정치국 상무위원 등 최고급 직위 담당자에 해당하고 2급은 국가 부주석, 정치국 위원, 국무위원 등 직위 담당자들의 몫이다. 3급은 각 성, 시, 자치구의 주요 책임자, 국무원 각 부의 부장(장관), 군대의 군단장 직위를 가리키는데 이들을 중국에서는 습관상 ‘성·부·군급(省部軍級)’ 주요 책임자라고 칭한다. 3급 관료들의 보조역할을 하는 담당자들은 4급 관료들이다.

    5급은 보통 성, 시, 자치구(국무원 각 부서도 포함)의 청장(국장)급, 성 이하 주요 도시의 주요 책임자, 군대에서의 사단장 직위를 가리키는데 중국의 습관상 ‘청·국급(廳局級)’ 혹은 ‘지·사급(地師級)’ 주요 책임자라고 칭한다. 중국에서는 5급 이상의 직위에 있는 담당자들을 특별히 ‘고위관료(高級幹部)’라고 칭하고 있다.

    그 이하의 등급으로 6급은 5급 관료의 보조역할을 하는 부국장, 부시장, 부사단장 등 직위와 일치한다. 7급은 상급 정부기관의 ‘처(處)급’ 부서나 현(顯)급 지방정부의 주요 책임자 및 군대의 연대장(團長) 직위에 해당되고 8급은 그 직위의 보조역에 있는 부처장, 부현장, 부연대장 급이다. 9급은 말단 행정기구인 향(鄕), 진(鎭)의 주요 책임자, 10급은 그 보조역할 담당자, 11급은 당 조직과 정부기관의 일반 정식직원(말단 공무원)들에 해당되는 직급이다. 물론 같은 등급 내에도 담당 지역과 분야의 중요 정도 및 근무연한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그에 따라 보수나 대우가 다른 것은 물론이다.

    중국 관료제도의 비대화는 언제나 일반 백성들의 불만의 대상이다. 현재 중국의 각급 관료들의 총 규모가 1000만명을 초과한다는 통계가 있다. 일명 사업단위라고 하는 준(準)정부 기구의 직원들까지 합치면 무려 6000만명의 인원들이 정부재정 지출에 의존하고 있다. 심지어 시진핑 지도부가 구정 전에 관료들의 과소비를 억제하는 지시를 내리자 음식업 등이 큰 영향을 받아 14분기 GDP 성장률을 0.2% 포인트 정도 끌어내렸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다.

    지난 3월 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폐막하는 국내외 기자회견 자리에서 리커창 신임총리는 정부 관료조직과 관련 경비지출을 축소할지언정 절대 확대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적이 있다. 비대해진 관료조직을 축소하고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줄여 중국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는 것이 시진핑 지도부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다.

    [한홍석 LG경제연구원 중국연구소 소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3호(2013년 0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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